갸륵한 가우디

바르셀로나 2

by 최열음

바르셀로나에 오면 꼭 해야 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가우디 투어.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가우디 씨. 그는 건축가로서 독특하고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을 많이 선보였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는 아주 거대한 성당이 압도적인데, 여전히 공사 중인 곳이다. 우리 숙소도 이 근처다. 그래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이 성당을 본다. 집 앞이 사그라다 파밀리아라니.

사그라다 파밀리아

아침부터 가이드님을 만나러 부랴부랴 뛰어갔다. 처음으로 환승을 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여기는 교통비가 되게 비싸다. 한 번에 3500원 정도? 무료 환승도 아니면서... 투어에서 만난 사람들은 차갑기도, 귀엽기도, 따뜻하기도 했다. 날이 좋지 않아 흐린 하늘만 봤지만, 흐린 날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이어간다.


하루 종일 가우디의 건축물을 졸졸 따라다닌 결과, 그는 엄청난 신앙심 하나만 가지고 산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든 건물에 십자가와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있다. 곡선의 형태는 유려하다. 확실한 계획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는 마치 사랑받기로 계획된 사람 같았다. 그의 진짜 삶에는 하나님 말고 아무도 없었지만.


카사 밀라라는 곳이 있다. 말린 미역 모양의 조형물들이 창문에 붙어있는 사유지다.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너 어디 살아?’ ‘아, 나 가우디가 만든 집’. 이런 느낌인가. 졸업하는 가우디에게, 당신이 광인인지 천재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했댔다. 조금은 미쳐야 천재가 될 수 있나 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주 제정신인 것 같다.

카사 밀라

가만히 앉아있는 노숙자들이 간간이 있다. 그런데 꼭 강아지를 안고 있다. 어떤 삶이든 함께 하겠다는 걸까. 이곳은 예술의 도시 같아서, 길거리에 비치된 피아노에서도 일반인이 연주를 한다. 원하는 자라면 누구나.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인터스텔라의 ost가 많이 들린다. 고등학교 음악실에서 친구들이 연주하던 것과 비슷한 레퍼토리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진짜 아무개다. 점심에 우리 옆 테이블에서 타코 먹던 언니도 연주했다. 다들 별 고민 없이 뛰어드는 것 같다.


투어를 마치고 집에 갈 때쯤 되니, 가이드님이 묘하게 신나 보인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 마치고 알짜배기 맛집 정보까지 공유해 주셨다. 한국에서 패스츄리 파티시에로 살다가, 바르셀로나가 좋아 이곳에 정착해 일하고 계신다는데. 이곳에서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용감무쌍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유럽까지 와서 살 정도면 보통은 아닌 거겠지.


가우디로 하루를 꽉 채우고 보니, 온 생을 다해 무언가를 사랑하는 그의 순종이 남는다. 사랑과 믿음이 아니면 그렇게 치열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혼자 살다가 사고를 당했던 말년이 불행해 보일지 몰라도, 독신으로 가족 하나 없던 평생이 애잔해 보여도, 그는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라고 본다. 극심한 고통 속에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결국은 평안을 찾았으리라고. 그건 답이 있는 행복이니까.

한 끼는 사 먹고 한 끼는 해 먹는 하루다. 점심은 타코벨, 저녁은 누룽지와 라면과 장조림. 외국 라면은 국물이 하얗다. 처음으로 해 먹는 밥인데, 둘이서 누룽지는 하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곳에 와서 위가 좀 줄어든 것 같다. 맨날 빵과 면 혹은 튀김이라 자연히 식욕이 감퇴하는 걸까. 나랑 현아는 아주 지극한 한식녀들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입맛이 이래서 큰일이다. 우리 아직 3/86일 차인데.


젤라또는 두 가지 맛 하나를 사서 나눠먹는다. 어떻게든 소비를 줄여야 여러 가지를 맛볼 수 있기 때문. 넉넉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로 신경 쓸 게 많다. 그럼에도 이곳 스파 브랜드에서 원피스 하나 체인백 하나를 구매한다. 저렴한 것에 유독 과감한 나지만 후회는 없다. 평소부터 갖고 싶었던 스타일이었고, 진짜 저렴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냄새가 독한 편이다. 무엇이든 진한 향을 풍긴다. 하수구든, 석회수든, 향수든, 방이든. 어느 곳이든 들어서면 냄새가 먼저 올라온다. 향기일 때도 있지만 주로 냄새다. 처음에는 곤혹스러웠지만 이제는 방에 들어오면 진한 냄새와 함께 조금은 안정감을 느낀다. 휴식의 냄새니까. 결국 집 같아질 줄 알았다. 냄새와 위생만 아니면 이곳에 살아볼 만할지도. 그런 데 민감한 나지만, 분명 살아볼 만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