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비빔밥 저녁은 타파스

바르셀로나 3

by 최열음

오늘은 주일, 한인교회에 가기로 한다. 바르셀로나에는 두 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그중 친구의 사촌오빠가 다니는 교회로. 점심이 비빔밥이라고도 했다. 절대 그것 때문에 가는 건 아니다.

시내로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이다. 완전히 다채롭고 골목골목 사람들의 흔적이 느껴진다. 누군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 느껴지는 곳. 일요일은 바르셀로나의 많은 상점이 문을 닫는다. 마트도 카페도 식당도. 그래서 거리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모든 사람이 햇빛을 받으러 밖으로 나오는 느낌. 이런 빛이라면 저절로 치료되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믿게 됐다.


아무리 눈이 부셔도 선글라스를 쓰기보다 세상을 똑바로 보고 싶다. 그만큼 선명하게 아름답다. 많은 것들을 눈에 꼭 담는 연습을 한다. 어떤 것들은 잊고 싶지만 어떤 것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져서. 하지만 좋은 기억도 잊히기 마련이니까 사진은 꼭 찍는다. 혹시 모르니까 꽤 많이 찍는다.


시차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11-12시면 취침하게 돼서 남자친구와 전화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가 퇴근하면 내가 아침이고, 내가 잘 때쯤 그가 일어나는 식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맞춰 가며 목소리를 듣는다. 듣기만 해도 한국의 여러 곳들이 생각나는 목소리다. 전화를 끊고 주위를 보면 다시 안 믿긴다. 내가 바르셀로나라고?

다시 교회 얘기로 돌아가서, 교회는 소박하고 귀여웠다. 왠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갈급해 보였다. 바르셀로나의 한인교회라니, 분명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 사정들을 듣고 싶어졌다. 처음 교회에 들어온 우리에게 ‘여행 오셨어요?’라고 묻는 안내팀이 있었다. 이렇게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대체로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괜히 귀여워진다.


목사님은 사랑이 많은 분이셨다. 나와 남과 세상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말씀은 한나와 브닌나의 이야기다. 한나는 자식이 없으나 남편의 사랑을 받았고, 브닌나는 자식은 있지만 사랑을 받지 못했다. 한나는 결핍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갔고, 브닌나는 결핍을 들고 사람을 쫓아갔다. 결국 한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고 바로 근심을 내려놓았다.


새로운 교회를 방문하면서 우리 교회의 새신자들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낯섦과 두려움을 자주 잊고 살았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먹는 쌀과 나물과 고추장의 맛… 고추장을 감히 다섯 바퀴나 둘러 버렸다. 이것저것 물어봐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점심이었다. 동시에 평생 다시 보지 못할 교회라고 생각하니 아득해지기도.

친구네 사촌오빠와 타파스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전에 몬주익 성을 가고 싶었으나 일요일 마라톤으로 인해 교통이 마비됐다. 결국 시내로 이동해서 햇빛을 받으며 오래 걸었다. 길을 아는 사람이 있으니 맵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거리를 온전히 둘러볼 수 있어서 이완된 채로 걸었다. 누군가의 인도 안에 있으니 너무 편안했다.


그리고 작은 카페에서 코르타도를 먹었다. 한국 스벅 리저브에서 먹어봤었는데 여기는 진짜 크기가 작다. 그래서 더 맛있는 것 같기도. 커피 맛집이라고 들었는데, 우연하게도 직원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전성기 시절과 닮았다. 로컬 카페도 너무 좋다. 이제 익숙한 스타벅스만 쫓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다.

3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야외 타파스를 먹기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 동안 이것저것 먹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우리 옆자리 사람들은 계속해서 일행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아주 크게 웃었다. 유럽 사람들은 웃음 장벽이 꽤 낮다고 한다. 별 것 아닌 슬러시를 먹다가도 자지러지게 웃는다고. 친구의 사촌오빠에게 많은 우려와 잔소리를 들었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인의 걱정이 싫지 않았다. 작은 사랑과 격려라는 걸 실감한다.


오늘은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이고, 친구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가기로 한다. 나는 스벅에서 글을 쓰기로 하고. 둘의 방향이 이렇게 갈린다. 내일 또 짐을 챙겨야 하니 캐리어를 재정비한다. 계속 이동하다 보니 캐리어에서 짐을 마구 꺼낼 수가 없다. 마음껏 헤집을 수 없는 게 여행자의 불안정한 삶이구나. 딱 쓸 만큼만 적당히 꺼내두었다가 그대로 넣어갈 것이다.

스벅에서 이름을 물으면 썸머라고 하기로 했다. 그런데 동양인이라 그런지 숨머? 하고 되묻는다. 그럼 그냥 예스,라고 하고 만다. 테이크 히어,라고 해도 투고 컵에 준다. 이런 배 째라는 마인드, 남 일 같고 좋다. 혼자 있다 보니 위축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기도. 썸머라고 해도 숨머라고 써주는 바리스타처럼 느긋하게 생각하자.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 마지막 카페, 마지막 스타벅스. 내일은 그라나다로 옮긴다. 따뜻하고 느긋하고 냄새나고 세련됐던 바르셀로나.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