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와 추

뮌헨

by 최열음

오늘은 현아와 둘이서 뮌헨에 왔다. 잘츠부르크에서 1시간 반이면 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독일 땅을 밟으러 온 것이다. 한빈이는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나는 어제 입었던 편한 상하의를 입고 왔다. 독일에서 유명하다는 슈바인학센, 소시지, 무슨 도넛, 프레즐을 다 먹어볼 요량이었다. 요즘 살이 좀 붙은 것 같았지만 외국에서 외국 빵을 먹는 게 가장 기쁜 일이었으므로 포기할 수 없다.


유럽에 오고부터 빵을 거의 매일 먹고 있다. 빵이 고유어가 아니라는 사실에 매번 놀란다. 빵이라고 불리는 외국어가 있다니, 너무나도 우리말 같은데. 매일 아침이나 점심이나 저녁이나 간식 중에 빵을 곁들인 결과, 얼굴이 빵빵해지고 있다. 다이어트하기 전에 매일 보던 턱이 하나 더 생겼다.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 겹쳐지는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 사진을 잘 안 찍게 된다. 거울 사진을 찍다가 자꾸 턱선이 날렵해 보이는 쪽으로 구도를 바꾼다. 카메라를 끄고부터는 스스로가 자꾸 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와 추 중에서. 미의 기준이라는 건 사회적인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타인에게는 그 기준에 매이지 말라고 말하면서, 스스로에게는 마음껏 너그럽지 못하는 게 현실 아닌가. 그래도 독일까지 왔으니 새로운 음식에 인색하지 않기로 한다.

도착하자마자 슈바인학센을 먹으며 독일 가족들을 만났다. 그리고 혼자 도넛을 먹다 만난 독일 가족들도 있다. 당연히 여행객일 줄 알고 웨어 아 유 프롬, 하고 물었더니 모두 여기 산다고 한다. 우리가 현지인 맛집을 제대로 찾아왔나. 그치만 현지인이 없을 수 없을 만큼 사람이 꽉 찬 식당이었다. 우리를 포함한 모두가 합석 중인 것 같았다. 우리는 코리아에서 왔다고, 작고 예쁜 국가니까 한번 와 보라는 얘기를 대충 덧붙였다. 영어로 멋지게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말의 1/10도 표현되지 않아서 자꾸 입을 다물게 됐다.


축구가 가장 좋은 현아와 빵이 가장 좋은 나는 각자의 취향대로 여행하게 됐다. 알고 보니 오늘은 분데스리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던 것. 언제 다시 이 경기를 보게 될지 모르므로 현아는 기회를 잡기로 했다. 나는 그 대신 빵을 열심히 먹고 혼자 구경하다가 커피를 마실 예정이었다. 각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여행이 될 것이다. 오늘은 서로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겠지만 좋았다는 감정만은 비슷할 거였다.


혼자 먹은 독일 도넛은 최고였다. 갓 튀겨준 쫀득한 호떡 같았기 때문이다. 설탕을 한 면만 묻혀주는데, 너무 적절한 양이라서 좋았다. 포장해서 길빵 할까 고민하다가 앉아서 먹겠다고 했다. 커피는 더 맛있는 카페에서 먹고 싶으니 빵만 열심히 먹었다. 혼자 오신 유럽 할머니 옆에서 사진도 찍고 감탄해 가며 빵을 즐겼다. 슈바인학센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뮌헨에는 영국 정원이라는 곳이 있다. 어째서 뮌헨에 영국 정원이 있나 싶은데 아직도 답은 모른다. 그냥 아름답다고 하니까 따라가 봤다. 광활한 잔디 위를 저벅저벅 걸어 다니면서 생경함을 느꼈다. 혼자서 걸으니 더 완벽한 외지인이 된 기분으로 불안정하고 자유로운 산책을 했다. 의식적으로 구글맵을 열지 않고 걸었다. 이 정도 산책을 했으니 빵을 좀 먹어도 되려나, 잡다한 생각들이 오갔다. 무엇보다 독일 땅을 밟을 때 생각나는 두 얼굴이 있었다. 한 명은 독일에 오래 살았다는 언니, 한 명은 독일어를 전공한 나의 절친. 절친에게 전화를 걸기로 한다.


나는 오후 4시쯤이었지만 한국은 거의 밤 12시일 것이었다. 한 시간 정도 통화하는 동안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반쯤 이해하고 반쯤은 흘리면서도 그냥 웃기고 힘이 났다. 얘는 잠잘 때쯤이라 그렇다 쳐도 나는 왜 잠꼬대를 하는 것 같았는지 모른다. 아무튼 얘 앞에 가져가니까 갑자기 모든 게 웃기고 가벼워진 기분이다. 외국에 오고부터 남자친구가 아닌 친구와는 딱히 오래 통화한 기억이 없다. 한 시간쯤 통화를 하고 나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좀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다. 뿌연 기분으로 커피를 마셨다.


현아를 기다리면서 랄프 커피에 들어왔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카페 같아서 궁금했는데, 그냥 엄청난 체인점이었다. 폴로 랄프로렌에 딸린 카페였다. 어쩐지 다들 좀 품격 있어 보이더라. 다들 한껏 명품 쇼핑을 마친 것 같아 보였다. 쇼핑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 특유의 얼굴이 있다. 승자의 미소다. 내가 가진 샛노란 에코백에는 뭐가 들었더라. 굴하지 않고 가장 저렴한 마끼아또를 시켰다. 커피만 맛있게 마시면 됐지.

내일이면 잘츠부르크를 떠나 프라하로 넘어갈 예정이다. 현아의 폭풍 서치 덕분에 집 앞에 봉고가 와서 우리를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라는 도시까지 태워다 준다고 한다. 그 생소한 도시에서 우리는 7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별 것 없는 일정이지만 꽤나 기대가 된다. 뮌헨도 특별하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건축물과 당당해 보이는 사람들, 시내보다 더 컸던 야외 정원, 아무 데나 널려있는 프레즐, 왠지 구슬픈 버스킹 공연까지.


언젠가 베를린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었고, 아직도 유효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서 베를린에 대한 글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언젠가 독일어를 전공한 친구와 함께 베를린에 올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 친구가 독일어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동안 나는 프레즐을 열심히 사 먹어야겠다. 그 호떡 같은 도넛도 꼭 다시 먹고 싶은데. 또 먹을 생각만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유럽 여행을 하는 동안은 살이 붙을 수밖에 없겠다. 찌든 말든 별 상관 않고 여행하고 싶다. 하면 할수록 많은 걸 상관하지 않고 싶은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