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일

체스키크룸로프

by 최열음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체코의 작은 도시에서 청년 다니엘기도회 말씀을 들었다. 주일마다 한인교회를 가기 여의치 않아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난주는 비엔나로 가는 기차 안에서 예배를 드렸고, 이번주는 체스키크룸로프의 카페에서다. 체코에도 다니엘 기도회에 참여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이 카페에서 예배를 드리는 건 아주 처음이고 고귀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비전을 가지고 살아오신 한 강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설교라기보다 말씀이 녹아있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런 게 좋다.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자연히 드러나는 이야기,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모두의 불신을 먹고 자랐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현실을 깨부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나에게도 같은 비전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 어쩐지 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강렬한 사랑 같은 게 있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사명을 품었다. 그러나 순전히 개인의 편의와 안락이 우선시 되는 흐름 속에서 나의 비전도 희미해졌다. 흐름을 거스르는 건 아주 귀찮은 일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커질수록 남은 작아지기 마련이다. 내 삶에 나만 중요해져서 사랑은 밀려났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친구들과 돈을 내고 적성 테스트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우선시하는 가치를 막대그래프로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내게 봉사와 희생 같은 키워드는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나의 성공과 자아만 생각하던 때였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그러나 지금 여행을 하면서 확실히 느낀 건 세상에 오직 나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어떤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지. 그걸 보는 눈을 조금 갖게 됐다. 나 하나만으로는 너무나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생판 외국인을 보면서 그들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짐작하게 됐다. 나의 세계가 얼마나 비좁았는지, 앞으로 얼마나 확장되어야 할지 아득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일평생 모르고 지나갈 세계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겸허해야 할 것이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고 느꼈다. 언제나 비전은 타협이 필요하지 않은 영역이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 사람을 구하는 사람. 내 글들을 통해 그런 고귀한 일을 하고 싶었다. 교만하게도 이미 스스로 그런 일은 어려울 거라고 단념했었다. 신앙적인 글을 쓸 것도 아니고, 항상 희망적인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내 글에는 슬픔이 많은데 내가 어떻게 사람을 살릴 수 있겠냐고, 그런 건 이미 어려운 일일 거라고 단정했다. 쉽게 단정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나 내게 그러한 비전이 있다면, 그리고 그 비전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면 정말 어려울 일은 하나도 없다고 느낀다.


너희는 잠잠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볼지어다. 나는 잠잠히 기다리는 법을 몰랐다. 늘 행동이 앞서고 결단이 앞서고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가는 충동적인...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는 건 결코 미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오늘 배웠다. 오히려 그게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 사람을 살리는 길이고 나를 살리는 길이다.

오늘 아침, 잘츠부르크에서 체스키크룸로프로 건너오면서 생각했다. 내게는 주변 사람들을 품을 만큼 넓은 마음이 있는지, 넘치는 사랑이 있는지. 내게 사랑이 없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품지도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결국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생인데,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어쩌면 철저한 비교 의식 속에서 우리가 버텨낼 수 있는 건 사랑뿐이다. 내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어떤 사랑을 더 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내가 가득한 글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어서 나의 이야기가 확장되고 사랑이 전이되기를 바라고 있다.



2023.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