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1.
유럽 도시엔 광장이 꼭 있다. 어느 도시든 모이는 게 익숙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어디서든 흩어지기 바쁜 것 같은데. 여기는 앉을 곳이 없어도 만들어서 앉는다. 작은 공원이라도 있으면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우리 셋은 대개 빠른 걸음으로 그들 앞을 지나쳐간다. 아직 오늘치 관광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광객과 여행객의 차이는 자유로움에서 온다고 들었다. 지도를 따라 걷느냐, 주변을 돌아보면서 내키는 대로 걷느냐. 우리는 전자이기도 하고 후자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와서 꼭 봐야 한다는 곳을 가보지 않으면 손해인 것 같아서, 다음 날이면 잊어버릴 법한 관광지들도 자주 찾아가는 편이다. 사실 2개월쯤 여행하면서 기억에 크게 남는 관광지는 잘 없다. 오히려 로컬스러운 곳, 예상치 못했던 곳, 계획에 없던 곳이 더 인상적이다.
오늘도 광장을 찾아 열심히 걷다가 지쳐버렸다. 아무래도 진짜 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해서 그런 것 같다. 금방 지쳐버린 나는 애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카페로 피신을 왔다. 미리 찜해뒀던 곳인데 숙소와는 거리가 있어서 못 갈 것 같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기회가 내게 온 건지 내가 기회를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 문을 열자마자 로컬스러운 분위기와 온도가 너무 좋아서 사장님께 여기 너무 나이스하다고 바로 말해버렸다. 냅다 고백해 버린 게 민망했지만 괜찮았다. 아마 이 카페도 오래 기억될 것이라 첫눈에 직감했다.
오늘은 프라하에서 관광하는 두 번째 날이다. 어제는 그 유명하다는 프라하 성과 그 안에 있다는 스타벅스, 까를교 등을 둘러보았다. 천천히 걸어보는 동안 아름다움에 쉽게 흡수되었다. 조금만 높이 올라가도 프라하 전경이 훤히 보였다. 이곳은 피렌체를 능가할 만큼 풍경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피렌체에서는 거의 등산을 해야 했는데 여기서는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웅장한 뷰를 볼 수 있었다. 무려 가성비도 좋다.
프라하 성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체코의 mz들이 릴스를 찍는 현장을 목격했다. 거리마다 악기를 들고 나와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멜로디만으로도 너무 웅장하고 가슴 뛰게 만드는 노래들이었다. 여행지를 여행지답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여유와 정취를 느꼈다. 그렇지만 너무 차가운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는 추위에 약한 코리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 날씨는 자주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이제 적응할 때가 되기도 했다. 오늘 조깅을 할 때도 무릎까지 오는 바이크 팬츠에 반팔티를 입고, 겉옷까지 챙겨서 다녀왔다. 나는 해가 있을 때 그 정도로 입고 뛰었는데, 해가 없는 시간에도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조금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우리와 살가죽의 두께가 다른 건가. 어떤 추위에 익숙해하며 살아온 걸까.
지금 한국은 벌써 여름만큼 더워졌다고 들었다. 5월 초에 낮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가는 게 괜찮은 일인지 모르겠다. 점점 더 빨리 더워지고 추워지는 건 아주 의심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사계절을 가진 국가라고 말하기도 민망하게. 10년 뒤에는 봄이나 가을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애들이 없으면 어쩌지. 그 애들이 봄이나 가을을 제대로 누려볼 수 없다면 아주 슬플 것이다. 여름을 좋아하는 나라도… 5월부터 여름이 오는 건 좀 부담스럽다.
영어 닉네임을 썸머라고 정한 것도 여름이 좋아서였다. 이 여행을 올 때도 반팔을 잔뜩 챙겨 왔는데 아직 딱 한 번밖에 못 입고 말았다. 어제 프라하 성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민진이라는 닉네임의 파트너를 만났다. 그는 내게 썸머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민진이라는 이름은 한국인 같다고 했더니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는 몽골리안이라고 했다.
어쩌면 몽골에도 수많은 민진이 있을지 모른다.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는 비슷한 민족이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민진으로 인해 몽골이라는 나라에 또 한 번 사실감이 부여되었다. 많은 것에 사실감이 부여되는 여행이었다. 내게 사실인 것들이 많아질수록 내 이야기는 더 풍성해질 것이었으므로 기뻤다. 이제 나는 몽골이라는 나라와 전혀 무관하지 않게 됐다.
2.
다음날은 쉬는 날로 지정해 두었다. 이틀 동안 관광객으로서 도리를 다했으니 이제는 여행객이 될 시간이다. 한 도시에 하루라도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나는 주로 카페를 가는데, 동네 카페를 찾아다니는 게 여행에서 가장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설레하는 포인트들이 참 다른 여행이다. 나는 빵집이나 카페, 현아는 운동장이나 축구 경기, 한빈이는 랜드마크인가. 사실 한빈이는 무얼 제일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곧 파리에 간다는 사실이 걔를 가장 설레게 한 것 같다.
쉬는 날 아침 우리는 각자의 침대에서 노닥거리다가 한국식 중식을 먹으러 가기로 한다. 아메리칸 차이니즈와는 격이 다른 음식이다. 잔뜩 기대와 설렘을 안은 채로 짬뽕을 상상하며 걸었다. 우리가 같은 설렘을 공유하는 흔치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먹은 짬뽕은 한국의 이비가 짬뽕과 아주 비슷했다. 적당히 불맛이 나고 적당히 자극적이며 볶은 채소와 해물 건더기가 잔뜩 씹히는 맛이었다. 짬뽕밥을 시켜서 쌀을 반이나 남기고 나왔지만 너무 든든하고 힘이 나는 식사였다.
그리고는 아주 정중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한인마트에 들렀다. 한식으로 부른 배를 안고 다음 한식을 생각하며 걸어온 길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외국 음식으로 만족하려면 빈도수를 잘 조절해야 할 거라고 말하면서. 이미 짬뽕이 속에 가득했기 때문에 한인마트에서는 치즈 불닭볶음면만 하나 집어왔다. 너무 잘 정돈된 그 마트에서는 음식보다, 그 사장님이 어쩌다 이곳에 정착하게 됐는지가 더 궁금했다.
타지에 적응해 가며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애환 같은 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다가 이미 조금은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스스로가 외지인이라는 감각은 쉽게 잊힐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언어와 민심 속에 산다는 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몇 배로 수고로운 일일 테니까.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에 살아도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다 표현되지 않는 삶이다. 이곳에서 복잡한 마음 같은 건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비엔나의 한식집 앞에서 울던 여자가 며칠째 생각나고 있다. 우리 엄마나 이모 같은 또래셨는데, 우리가 라면과 초밥과 치킨 같은 걸 시켜서 먹는 동안 그 식당 앞에서 소리를 높여가며 울었다. 대사관에서는 대체 무얼 하는 거냐며, 우리 아들이 나 때문에 죽은 거면 어떻게 하냐고. 언니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나 좀 도와달라고, 한인회는 한인을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니냐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힘주어 말하면서 엉엉 울었다. 어른이 목 놓아 우는 일은 흔치 않았으므로 우리는 밥을 먹다가 말을 멈추게 됐다. 누군가의 엄마가 서럽게 우는 걸 듣기만 했다. 위로를 할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없었다. 모르는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조용히 밥을 먹었다.
속 편히 타지를 여행하고 있는 우리는 절대 모를 만한 애환이었다. 감히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아픔일 것이었다. 모두에게는 얼마나 깊은 사정이란 게 있는가. 보이는 건 얼마나 얕고 가볍기만 한가. 그럼에도 우리는 왜 타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갈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서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쓴다. 어쩌면 한 사람을 이해하는 건 전 생애를 다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무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나는 게 인생 아닌가. 그저 겸손을 떨면서 살아야 할 수밖에.
나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 많은 걸 내려놓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다. 힘을 주는 것보다 빼는 데 더 많은 의식이 필요하다. 더 편한 표정을 짓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한 손에 강아지를 데리고 담뿍 웃으며 대화하던 누군가를 떠올린다. 온 얼굴을 쓰면서 웃는데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외국 언니를 보면서 웃음의 근원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어떻게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지, 나는 가끔 내 웃음이 아주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웃고 있는데도 얼굴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마도 가짜 웃음이었던 것 같다.
별로 웃기지 않을 때도 웃음을 방어막으로 삼고 살았다. 그렇게 가짜로 많이 웃다 보면 진짜 웃는 걸 잊게 되기도 한다. 그걸 알았다면 굳이 가짜 웃음 같은 건 짓지 않았을 텐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서, 무엇보다 내가 상처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하면 병이 나기 마련이다. 이제는 어떤 종류의 거짓도 신물이 나곤 한다. 웃는 척하며 실은 비꼬는 말도,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표정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위선도. 웃고 싶지 않으면 웃지 않는 것… 나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투명해져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