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오늘은 어떤 부분도 왜곡하지 않고 꾸며내지 않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만 담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면서 살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진실은 혼자 간직하고 싶을 때가 있다. 퍼뜨리지 않음으로써 그 무게를 지켜내고 싶을 때가 있다. 매일 글을 쓸 생각만으로도 조금 가벼운 사람이 된 것 같다. 진짜 쓸 수 있는 것과 차마 쓸 수 없는 것들이 자주 뒤섞이고 있다.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늘로 런던에서 4일째 여행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유럽 여행지 중 1순위를 고르라고 한다면, 그런 건 없다고 얼버무렸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내 베스트 여행지는 런던이다. 이 대도시스러움 속에 느껴지는 주민들의 정서가 좋다. 화려한 쇼핑거리나 차이나타운보다 노팅힐, 첼시 같은 작은 동네에 더 마음이 간다. 그것 말고도 좋았던 건 신사와 뮤지컬이다.
애석하게도 런던에서 처음 탄 지하철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어쩌면 외지인인 우리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걸 수도 있지만 그런 건 최소한 왕 크게 표시라도 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절대 외국인인 우리도 찾을 수 있어야 진짜 유효한 게 아닐까. 아무튼 각각 28인치 캐리어를 들고 지하철 계단 앞에 선 우리는 아주 난감한 표정이 됐다.
그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를 지나쳐가던 남자 두 명이 갑자기 짐을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쫀득한 영국 억양을 쓰면서. 이들은 우리를 속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캐리어를 들고 튀기엔, 너무 지난한 계단이었다. 두 명의 젠틀맨 중 한 명이 나의 캐리어를 먼저 들어 올리자 다른 한 명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친구의 캐리어를 들어줬다. 땡큐 쏘 머치보다 더 강력한 감사를 하고 싶었는데 그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둘은 일행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저 지하철을 타고 온 두 현지인일 뿐. 드라마 브리저튼에서 봤던 신사적 마인드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영국의 어른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구나. 사람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또 배웠다. 첫인상부터 성공적이다.
숙소에 짐을 놓자마자 샌드위치를 사들고 맘마미아를 보러 뛰어갔다. 사실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뛰어갔다. 애들은 레미제라블, 나는 맘마미아를 선택했기 때문에 수상하고 배고픈 사람이 되어 외롭게 달렸다. 덕분에 내 여행의 뿌리인 맘마미아를 처음부터 즐길 수 있었다. 사람이 용기를 한번 내려면 수많은 빌드업이 필요하다. 나를 이 기나긴 여행에 초대한 것은 맘마미아와 연금술사, 그리고 나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었다.
그래서인지 맘마미아를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났다. 스스로가 너무 주책맞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 피곤해서 나는 눈물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행복하다는 자각이 있었다. 댄싱퀸을 부를 때, 맘마미아를 노래할 때마다 현실을 자꾸 부여잡았다. 너무 행복해서 여기저기 떠다니는 마음을 쉬이 추스르면서 뮤지컬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노팅힐. 영화 노팅힐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곳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도시였다. 한 건물로 낮고 길게 이어진 집들이 모두 다른 파스텔 톤을 입고 있었다. 여기서 살면 진짜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다가 행복은 건물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노팅힐엔 빈티지 상점들이 아주 많았다. 갑자기 물성을 지니게 된 누군가의 추억들이 비밀스럽게 느껴졌다. 여행지의 신비 덕분인지 누군가 입고 쓰던 걸 다시 입고 쓰는 데 괜히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여행은 괜한 일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이윽고 우리는 길거리에 있던 폴로 마켓에서 대규모 소비를 하고 말았다. 결제를 할 때마다 마이 달링, 마이 러브라고 말해주는 멋진 영국 언니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산 옷보다 그 언니의 말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티비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언어였다. 스무스한 미국어와는 완전히 다른, 각진 억양이 너무 탐났다. 글에는 나의 평범한 억양이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첼시. 동생의 축구 유니폼을 사러 갔다. 사실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가, 유난히 일찍 일어난 아침에 갑자기 가게 된 곳이었다. 아주 귀찮은 마음으로 출발했으나 동생한테 고마워질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별 것 아닌 사람들의 일상이 눈앞에 펼쳐져서 그걸 열심히 담으려고 노력하다가 끝난 것 같다. 유명한 부촌이라서 그런지 괜히 나까지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던 노래인 첼시 로저가 자꾸 생각났다. 그 경쾌한 비트에 맞춰, 심란한 마음으로 스타벅스로 출근하던 길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래서 지금은 런던, 그것도 첼시에 있다는 사실을 되뇌었다. 어째서인지 런던은 가장 실감이 나지 않는 여행지다. 동유럽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고 와서일까. 주말에도 쉬지 않는 곳을 너무 오랜만에 봐서일까. 가장 서울과 비슷한 이곳이 오히려 가장 낯설게 느껴진다니.
오늘 주일 설교를 듣다가 감사와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게 됐다. 너무 명료해서 앞으로의 삶을 단숨에 바꿔버릴 만한 말씀이었다. 행복의 문은 감사를 통해 열리고 불평을 통해 닫힌다는 것. 그러니 계속해서 감사 회로를 돌리자는 것. 정신 승리라고 생각하나. 만약 감사하는 대상이 없고 진심도 없으면 그건 정신 승리지만, 근본적으로 왜 감사해야 하는지 알면 그냥 다정한 삶의 지혜가 된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영감으로 먹고사는 엔프제가 분명하다. 강호동 씨처럼 명언 하나에 감동받고 하루를 살아갈 기운 같은 걸 얻는다. 명언은 흔하지만 그걸 보고 힘을 내는 건 흔하지 않다. 흔한 걸 보고도 흔하지 않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영감을 주는, 부지런하고 건강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결과로 증명하지 않아도 이미 마인드가 된 사람, 그런 사람의 태도가 영감이 된다. 오늘의 영감은 감사다. 감사할 줄 아는 것도 연습과 숙련이 필요하다. 평생 불평하던 사람이 갑자기 감사를 달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좋은 게 왜 좋은지 말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웃음이 헤프지만 명료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좋은 것만 볼 줄 아는 미련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바로 이전 글에서 쓸데없이 웃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변덕 역시 불안한 인간의 미덕이다. 런던이 왜 좋은지 진실되게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마무리할 쯤에 청바지에 라떼를 쏟았지만 별로 열받지 않았다. 런던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사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일말의 짜증도 나지 않고 그냥 웃겼다. 일단은 그 정도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