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서

by 최열음

점심으로 너무 짜고 너무 단 떡볶이를 먹었다. 덕분에 종일 물을 마시는 중이다. 유난히 더웠던 날씨가 아직 몸에 남아있다. 서울은 청주보다 그늘이 없고, 그래서 길을 걸을 때 좀 더 헤매는 느낌이다. 서울에 산다면 어떨까, 가끔 생각해본다. 친구들이 이곳에 정착하고 삶을 꾸린 것처럼. 그리 멀지 않은 미래 같다가도 당장은 아주 멀게 느껴져서 그만둔다. 보통은 시외버스를 탄 후에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멀게 느껴지는 일이 내게는 많다.


일주일 만에 서울에 온 것이다. 지난주에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의 소규모 강연에 채택되었고, 이번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 그 작가님이 온다고 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사운드는 되게 약했고, 사회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만 했으며, 연사들은 아주 멀리 보였다. 얼굴과 입모양을 보지 않고 열심히 귀로만 들었다. 하나의 감각만을 사용하는 일이 너무 어색해서 자꾸 집중력을 잃었다. 그러나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대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말고도 유명한 번역가와, 더 유명한 작사가가 있었다. 그 작사가님은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남기는 것들이 각각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책을 많이 보라고, 그게 인생을 구원하더라고도 말했다. 조금은 구원받은 표정 같았으나, 대체로 쿨해보이는 그 이미지가 신비로웠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같았는데 그가 드러내지 않는 많은 것들이 쌓여서 아주 진귀한 가사들이 탄생하는 것 같았다. 나도 좀 드러내지 말고 살아볼까. 감정이든 생각이든 기분이든 자주 드러내며 사는 내게, 무언가 쌓일 틈이란 게 있는지 조금 의심스럽다.


이번 일정은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투성이였다. 페이보릿 작가님, 페이보릿 친구들, 페이보릿 북들… 아빠 돈으로 책을 네 권이나 사버렸고, 같은 돈으로 친구들과 세 번의 식사를 했다. 세 번의 커피도. 내 것이 아닌 돈으로 소비하는 양을 실감하기 위해 매번 기록하고 있는데, 웬만하면 다 먹는 거라는 사실이 우습다.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고. 우리는 함께 브런치를 먹고, 수제비를 먹고, 떡볶이를 먹었다. 어떤 것도 돈이 아깝지 않은 맛이었으나, 실제로 내 돈이 아니라서 아깝지 않을지도 모른다. 빨리 이 빚쟁이 생활을 청산하고 싶다.

오늘은 언제나 사람이 많은 주말의 망원동에서, 애들과 함께 카공을 했다. 진짜 공-부를 하는 애는 없었지만 우리는 카페에서 할 일을 할때 그냥 카공을 한다고 한다. 나는 글을 쓰고, 애들은 과제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공부하기 아주 좋은 그 카페에는 각기 노트북을 펼쳐 놓고 떠들기 바쁜 사람들만 가득했다. 아마 우리가 그 물꼬를 튼 것 같았다. 결국 나는 한 자도 글을 못 썼고, 남의 글을 읽기만 했다. 내 앞에 앉은 애들은 디자인과 연이 깊은데, 한 명은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고 한명은 무언가를 기획하는 쪽에 가까웠다.


곧 그것들을 그만두겠지만 앞으로도 그와 비슷한 일들을 오랫동안 할 예정인 애들이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방향이 확실하다는 게 우리의 공통점이었다. 그러나 조금씩은 달랐다. 이를 테면 하고 싶은 건 명확하지만 방법은 명확하지 않은 나, 하고 싶은 게 조금 헷갈리는 애, 하고 싶은 것도 명확하고 방법도 꽤 명확한데 타이밍이 명확하지 않은 애가 모였으니까. 우리에게 세상은 헷갈리고 부담스럽고 답답한 게 많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는 사람들, 그런 세상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게 조금은 있어본 사람들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잘 써진 글을 읽다가 문득 우리집에서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쓸 데 없지만 아주 쓸 데가 없지는 않은 생각이었다. 실제로 나는 집에서 쓸 데가 좀 없었으니까. 아빠와 남동생과 공존하는 공간에서, 특히 거실에서만 글이 잘 써진다면 어째야 하나. 아무래도 방 구조를 바꿔서 방에 애정을 좀 붙여봐야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독립적인 공간이 방밖에 없으니까. 근데 고민만 하다가 끝날 것 같기도 하다. 도저히 내 책상에서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가 없다. 나랑 같이 25년 을 살아온 책상에서 어떤 창조를 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부족한 내가 환경 탓을 하는 건 아니다.


이것 말고도 애들과 여러 고민들을 나누다가 혼자 시외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좀 외로웠다. 나에게는 아직 내려가야 할 수많은 길바닥이 있다. 누군가 아주 어렴풋이 아가씨라는 말을 하는 걸 들으면서 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아가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왠지 그 말은 좀 함부로 하는 말 같다. 어떻게 들어도 좀 실례되는 말 같아서. 모두가 존댓말을 쓰거나 모두가 반말을 쓰는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 아, 이미 그런 세상도 있구나.


오랜만에 우등버스가 아닌 일반석에 앉아 왔다. 옆에 앉은 분과 자꾸 옷과 살이 맞닿는 구조였다. 어쩔 수 없는 건 알지만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한시간 넘게 그분의 살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둘 중 하나가 팔을 의자에 붙이면 한 명은 좀 떼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팔을 뗀 자는 나였다. 한 절반쯤 왔을까, 갑자기 그분이 에어컨을 내쪽으로 바꿔줬다. 그리하여 두 구멍의 바람이 모두 내게 오게 되었다. 이건 어떤 종류의 친절인가. 쥬시후레시 껌 냄새를 잔뜩 풍기며, 가끔 아주 길고 요란한 한숨을 쉬는 이 사람이 조금 신기하고 궁금해졌다.

내게 버스란 건 사실 조금 미운 존재이다. 중고딩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길바닥에서 버린 시간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버렸다고 표현함으로써 완전히 버려버린 건 나이지만, 지금도 그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가도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버틸 만하다. 그들도 분명 축축한 밤과 낮에 쉬지 않고 글을 쓰던 자신이, 미래에 얼마나 잘 나갈지 모른 채로 길바닥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테니까. 아까 말했듯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선 감사하고 봐야겠다.


이 모든 시간과 상념들이 피곤해져서, 내일은 상쾌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조금은 무례한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 사용한 에너지가 많아서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나는 정말 피곤한 생각과 그보다는 조금 덜 피곤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다. 생각할 게 많아서 쓸 것도 많아지는 사람이다. 많은 걸 까먹지만 또 절대 까먹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서 내가 나일 수 있다. 기억이란 건 참 이기적인 무엇이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보낸 이 모든 시간이 피곤한 하루였다고 끝내기에는 아쉽다. 왜냐하면 아주 좋은 사람들과 아주 좋은 시간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걔네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걔네가 나만큼 모른다면 내게 책임이 있을 것이다. 걔네가 있어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언젠가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걔네들을 꼭 안고 있고 싶은 날들이 내게는 자주 있다. 아마 그 애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많이 껴안아본 적이 없는 우리라서 그냥 카톡방에 ‘얘들아……’라고 아련하게 보내기만 했을 것이다.


그래도 부를 얘들이란 게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서울에 만나러 갈 친구들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을 같이 보러 갈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내 남자친구는 지금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려서 헤롱대고 있다. 어쩌면 나도 조금 위험군에 속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벌써 세 번이나 걸려봐서 멀쩡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숱하게 격리되는 동안 그는 나를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을까. 내가 그보다 굳건한 항체를 지니는 일이 많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건 내가 먼저다. 그러니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피부 곳곳에 여드름이 날 기미가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얘네와 함께 살아와서 더는 놀랍지도 않지만 가끔은 정말 징글징글하다. 호르몬이란 건 언제까지 분출될 예정인가. 내게는 진정이라는 기능이 정말 없는 건가. 아마 며칠 바쁘게 움직이느라 집 세수를 못해서 더 민감한 상태인 것 같다. 집 샤워와 집 세수는 어디서도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아빠와 남동생이 들어오지 않은 지금, 거실에서 빠르게 타이핑을 하고 있다. 누군가 이 침묵과 고요를 방해하기 전에 이 글을 완성하고 싶다. 밤인데 혼자 있는 날은 많지 않다. 오늘은 무엇도 흔하지 않은 밤이고, 나는 대체할 수 없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