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를 아는 동네에 산다는 것

by 최열음

반평생 정도를 한 동네에서 살았다. 충청도 중에서도 청주 언저리, 온갖 이과적 회사들이 잔뜩 모여있는 그런 곳에. 회사들이 많아지니까 자연스럽게 아파트도 많아졌고, 급조된 도시처럼 높고 긴 것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람들이 편하게 살기 위해 많은 것들이 들어섰다 또 사라졌다. 그런 것들을 모두 지켜보았다. 어떤 자리가 금방 망하는지 기억하고, 어떤 자리는 한번도 바뀐 적 없다고 감탄하면서, 우리도 같은 자리를 지켰다. 정확히는 아빠가 터를 잡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나도 같은 곳에 그냥 있었다.


최근에 서울에 다녀오면서 동네 터미널 앞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물론 터미널도 생긴 지 몇 년 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소름이 돋았다. 내가 15년째 이 횡단보도에 서 있다는 게 놀라워서. 15년 전에는 낯설었겠지, 아마도. 친구들이랑 방방 타러 다니고 뛰어다니느라 별로 그런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이 횡단보도가 동네의 중심에 있었고, 그러니 당연히 지나다닐 만한 것이었달까. 그러나 언제까지 이 횡단보도를 지나다닐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그냥 같은 길을 15년째 걷고 있다는 게 꽤 질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15년 전에는 여기서 토스피아를 먹고 놀이터에서 거미줄을 타고 놀았으며, 10년 전에는 친구들이랑 아딸을 먹고 영어학원을 다녔고, 5년 전에는 마라탕 먹으면서 과제하러 카페를 다녔다. 그리고 오늘, 이곳이 너무 지겹다고 전화를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리고 역시 누군가 나를 알지도 모를 스타벅스에 왔다. 이 동네에는 두 개의 스타벅스가 있다. 하나는 내가 일했던 곳, 하나는 일하지 않았으나 이전 동료가 옮겨왔을지도 모르는 곳. 후자를 골랐다.


그리고 모르는 얼굴들에 감사하면서 음료를 주문했다. 어딘가 착잡한 마음으로 패드를 보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역시, 아는 사람이 당연히 있겠지. 조금은 반가워서 그 언니와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여행 다녀왔다고 들었다고, 얼마나 간 것이냐며 다정하게 묻는 그에게 고마웠다. 나 역시 어떻게 여기 있냐며,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었냐고 반가워했다. 당연히 만나면 반갑다. 근데 그냥 조금 고립되고 싶은 날이 있지 않나. 아무도 내게 아는 척하지 않아줬으면 하는 날, 그게 오늘이었나보다.


오늘을 되짚어봤다. 어째서 오늘은 모든 게 아름답고 감사하지 않은지. 일어나자마자 동생과 김밥을 싸먹었다. 재료를 사오고 지단을 만들고 밥을 해서 싸먹으니까 거의 오후 세시였다. 김밥 싸다가 글을 쓸 에너지를 소진해서 저녁 먹고 카페를 가겠다고 다짐했다. 비가 와서 습한 날이었다. 거실에서 핑계고를 보면서 자세만 이리저리 바꿔 앉았다. 계속 배가 부른 상태였다. 동생은 방에 있다가 내 옆에 앉아 있다가 했다. 얘도 이제 종강하고 쉬기 시작한 것이었으므로 딱히 할 일은 없어보였다. 어쩌면 나보다 더 고된 날들을 보내고 쉬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빠가 잠시 와서 골프에 갈 짐을 챙겨갔다. 우리가 만든 김밥도 한줄 먹으면서. 아빠에게 오늘 보여준 게 김밥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년도는 글쓰고 싶어서 취직 안 한다고 말했던 사실이 너무 무색해져서 두통을 느꼈다. 여전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빨리 밥이라도 먹고 카페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김밥에 컵라면을 열심히 또 먹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살을 빼고 싶긴 하면서 배도 안 고픈데 김밥에 컵라면까지 먹었다는 거였다. 그게 소화되지 않는 사실이었다.


세수 좀 하고 빨리 나가고 싶은데 동생이 화장실에서 한시간 동안 나오지 않았다. 좀 씻겠다고 들어간 사람이 그 긴 시간 동안 대체 무얼 할까. 다리털을 민다는데 그냥 나는 세수나 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다 치고 남자친구랑 전화를 하고 있었다. 거실에서 하다가 동생이 나오려고 하길래 방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내가 아예 나간 줄 알고 자꾸 나를 불러대는 것이다. 전화를 끊자마자 짜증을 냈다. 왜 이렇게 불러대냐고. 나는 너처럼 말도 없이 그냥 나가는 사람이 아닌데, 왜 아직도 모를까.


그리고 카페를 가면서 모두가 나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또 어디서 온 생각인고 하니, 오늘이 수요예배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카페에 가는 중이기 때문인 것 같다. 비록 할 일이 있긴 하지만 오후에 했으면 됐을 일이기도 하다. 교회에 꼭 가지는 않아도 되지만 가면 더 좋을 일이었다. 그래서 교회 사람들을 분명 길 가다가 마주칠 것 같다고, 마주치진 않아도 차 안에서 나를 보기라도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 무뎌지지 못하는 날이 있다. 나는 관심 없는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두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근데 모두 착각은 아니더라.


유난히도 정신이 피곤한 오늘이다. 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열심히도 미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을 지키는 정신이 중요한 건데, 그것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책으로 끝날 것을 안다. 끝나야 하는 것도 안다. 어쨌든 탓할 게 없다는 것도. 그러나 누구도 내게 ‘그냥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으면 정말 폭발할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아는 건 나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냥 하면 되는데 그게 그냥이 아닌 날도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스타벅스에 와서 손을 바쁘게 놀리면서 진정 중이다. 비록 바리스타들과 너무 가까운 자리에 앉아버려서 아는 사람이 가시거리에 있지만, 오히려 딴 데 안 보고 화면만 볼 수는 있게 됐다. 나는 사실 내 문제도 알고 해답도 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것 뿐이라. 근데 그게 너무 지난한 일이라서 고단할 뿐. 지금 남자친구가 코로나에 걸려서 거의 일주일째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집에 고여 있어서 폭발한 것 같기도 하다. 내 약속의 주기, 외출의 주기는 이틀에 한번이 적당한 것 같다. 내 일이 방해받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남자친구를 당연히 만날 때는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된다.


여러모로 체념과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일이 끝난 직장인들이 하나둘 카페로 모여든다. 이들은 열두시에 일어나서 김밥이나 싸먹고 저녁쯤 할일을 시작하는 내가 조금은 부러울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도 분명 이 시기를 부러워하겠지, 크로아티아에서도 이런 글을 썼던 것 같다. 예정된 그리움이라고 명명하면서. 역시 그렇다. 당연히 그립지, 크로아티아. 모든 희노애락이 추억 속에서 그냥 희와 락으로 납작해지는 게 우습다. 언젠가 오늘을 기억할 때 그냥 희락으로만 기억하지 않도록, 노애도 기억할 수 있도록 최대한 상세하게 적어봤다.


읽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겼을 거다. 퇴근의 기쁨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 그러나 이 글을 끝까지 참아가며 읽어준 당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까 남자친구와 전화하다가 그가 사랑한다고 했는데 나도~라고밖에 못했다. 동생한테 괜히 들릴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친구와 전화하면서 끊을 때 사랑한다고 했다. 한참을 툴툴대고 찡찡대다가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해버리니까 괜히 통화가 아름다워지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좀 정화됐던 것도 같다. 사라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실제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많다. 어떻게든 그 마음이 전해지게 해야겠다. 실은 내 기분이 좀 정화됐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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