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는 글을 쓰는 깨는 사람

by 최열음

한국에 적응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상을 정리한 것이다. 외국에 적응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웠는데 한국은 그냥 일주일 만에 예전 호흡을 찾아버렸기 때문이다. 집이 금방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내 방에서 글을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내겐 수면과 휴식의 공간인 방에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다.


방 구조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렇다고 아예 집을 나가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우선 책상이라도 바꿔보자, 마음을 먹고 하루만에 책상을 정리했다. 언젠가 아빠와 함께 내다버리겠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며칠째 침대에 누울 때마다 바라보는 중이다. 원목은 참 오랜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면서. 나는 이렇게 변했는데 저건 스스로에게 한 치의 변화도 허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책상을 정리하고 생각해보니 내가 드디어 집에서 발을 뺄 준비를 하는 건가 싶었다. 깊은 무의식의 표출일까. 원래 아이들이란 건 태어나자마자 독립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자랄 수 있게, 그래서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게. 나도 머지 않아 다른 공간에서 다른 글을 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아득해졌다. 이 집이 아닌 집이 전혀 상상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는 두 탕의 약속을 뛰었다. 하나는 계획된 것이었고 하나는 즉흥이었다. 번개를 너무 오랜만에 해서 기가 많이 빨려버렸다. 너무 반가운 친구들이라 본격적으로 반가워하고 싶어서 다음주에 약속을 잡아뒀는데, 마침 어제 다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걔네를 만날 에너지를 미처 남겨두지 못했다. 처음 보자마자 껴안고 방방 뛰었는데 그 후로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다. 여전히 반가우니까 다음주에도 만날 계획이다.


심지어 나는 그냥 놀다가 온 건데, 애들은 알바를 하고 온 것이었다. 한 명은 인턴 면접을 보고 왔고. 다들 각자의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한 명은 은행으로, 한 명은 패션으로, 한 명은 디자인으로. 실은 우리 모두 경영학부 생인데. 모두 경영적인 마인드를 한켠에 두고 자신이 잘하는 쪽, 원하는 쪽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게 대견했다. 아무래도 내가 제일 무모해보이기는 했다. 어쩌면 내가 경영과 가장 상관 없는 삶일 테니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엄정화 언니의 유튜브를 보다가 혼자 울었던 적이 있다. 그 생그러운 언니가 어린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자분자분 씹히고도 마음에 남았다. 그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꿈을 쫓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러나 조금 더 열심히 해도 된다고, 우리는 너무 젊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회가 충분히 올 것이라는 말이었다.


항상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기회라는 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언젠가 올지 모를 그 기회를 위해 하루를 잘 가꿔나가는 힘이 내게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어떤 걸 바라는지 모르면서 바라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취준생이라는 명목 하에 있으니까, 그들이 겪는 비슷한 마음을 나도 겪었다. 그렇게 한 지평이 넓어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일단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안정감이 있었다. 누군가를 분류하고 나 역시 분류되고 싶은 겁의 종류가 내겐 있다. 설령 그게 한국에서 가장 불안정한 취준생이라는 이름이라 해도.


사실 보이지 않는 걸 목표로 두는 것도 겁이 난다. 그 목표를 상상하면서 일단 보이는 내 하루를 갈고닦는 건 더 어렵다. 이번 년도 안에 쓰고 싶은 글이 참 많다. 쓰고 싶은 게 많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일단 유럽 얘기들 좀 쓰고 난 뒤에 할머니, 책, 연애, 잠, 도파민, 이름들에 대해서 쓰고 싶다. 모두 담고 싶은 것들인데, 빨리 담아서 좋은 일일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록 숙성되는 이야기들도 있는 거니까.


역시 얼마 전 핑계고라는 유튜브를 보다가 조세호 씨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친구인 남창희에 대해 어필하기 위한 말이었다. 남창희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수록 조금 더 빛을 발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그들에게 빛이란 웃음의 타율을 말하는 것이다. 빠르게 치고 빠지는 건 오히려 자기가 더 잘하니까 그런 데서는 자기를 쓰라. 아무쪼록 남창희는 조금 더 진득한 타입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걸 말하는 그의 모양이 웃겨서 그냥 맞든 아니든 믿고 싶어지는 얘기였다.


요즘 시간이 남을 때마다, 혹은 시간을 내서라도 보는 게 유튜브나 넷플릭스라서 대부분의 생각이나 영감이 거기서 오는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은 그냥 생각을 차단하고 싶어서 그런 걸 본다.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을 주고 싶지 않을 때 나는 봤던 걸 또 본다. 보고 또 보고 외울 때까지 봐도 그냥 편하고 좋아서 본다. 익숙함 속에 느껴지는 새로움이 반갑달까. 시대와 역행하는, 이런 반(反)도파민적 행보에 대해서도 언젠가 쓸 것이다.


동생이 방금 막 동아리 엠티에서 돌아왔다. 조금은 초췌한 몰골로 들어오자마자 하는 말이, 자기의 첫 대학 성적이 어째서 이렇게 엉망인지에 대해서다. 엠티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겠지만 집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 생각이 입밖으로 튀어나온 거다. 내 얼굴을 보니까 그걸 묻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학이란 걸 졸업하고 당장은 거실에서 무언지 모를 글을 쓰고 있는 누나를 보니.


나는 사실 별로 해줄 말이 없어서 나도 그랬다고 했다. 다들 그 정도 공부는 했던 게 아닐까, 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 지나치게 합리적이라서 조금 짜증날 수도 있는 말이다. 나 역시 대학에서 첫 시험을 보고 나서 거의 A를 받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다들 그 정도 공부는 할 줄 아는 비슷한 애들이었기 때문에 딱히 나라고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특별하다는 건 달콤한 착각이다. 가끔은 달콤함에 기대고 가끔은 착각이라는 데 의지한다. 착각을 깨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


착각을 깨는 글, 고정관념을 깨는 글, 그냥 관념을 깨는 글, 마음을 깨는 글, 시간을 깨는 글…… 무엇이든 깨는 글을 쓰고 싶긴 하다. 어쩌면 나를 깨야 그런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나친 자아에서 벗어나 남들의 자아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진짜 글을 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글에 있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래서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느끼기만 하지 말고 진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아마도 지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