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양보를 받는 사랑

by 최열음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할 때가 있다. 혹시 내가 엄청난 주관 속에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가끔은 나를 가만히 두고 제3자가 되어 지켜보는 상상도 해본다. 대부분은 연애에 있어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은 우정도 비슷한 것 같다. 한번씩 나와 연결된 모두와의 사이를 생각해본다.


가까운 친구의 연애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주변인들은 잘 안 사귀거나, 한번 사귀면 결혼할 것처럼 만나는 편들이라, 누군가의 연애가 끝났다는 소식을 듣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이라 더 슬펐다. 걔가 연애를 시작하고 끝낼 동안 나는 어떤 힘이 되어준 적이 있나. 물론 연애는 각개전투지만 일희일비적인데, 그가 비참할 때 나는 어딘가에서 친구라는 존재들로 말미암아 충만했을 생각을 하면 아주 송구스럽다. 내게 친구는 함께하지 않을 때도 충만히 살아갈 용기를 주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용기를 먹고 자라는 나다. 사실 나는 친구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은 무형의 존재로 때로는 아주 가까운 유형의 존재로 나를 살게 하기 때문이다. 여행에서도 그 생각을 자주 꺼내어 먹고 살았다. 내게는 나를 사랑하는 애들, 내가 사랑하는 애들이 있으니 나는 조금 더 가치로워질 수 있다고. 그래서 다시 만났을 때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들이 제발 모르지 않기를 바라서다. 너희의 마음으로 내가 이만큼 먹고 살고 있으니, 니들도 꼭 챙겨 먹고 살라고.


얼마전 연애가 끝난 친구를 지난주에 만났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걔는 연애전선이 무탈하냐는 내 질문에 대충 그렇다고 답했다. 조금 미지근한 답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꼬치꼬치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걔가 우리에게 그걸 털어놓을 만큼 우리가 진지하지 못했던 걸까. 분위기가 어떻든 우리가 얼마나 웃고 있든 상관없이 냅다 쌓인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려면 아직 좀 멀었나. 피곤한 마음으로 서로를 어설프게 우스워하다가 힘든 애를 힘들게 보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온 우리였다.


그 애의 이별 사유를 들으니 나의 연애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같이 듣던 친구가 말했다. 3개월 간의 여행을 기다려준 남자친구라면, 너는 이미 큰 양보를 받고 있는 셈이라고. 그리고 그는 지금 나의 진로 탐색기를 함께 통과하고 있다. 직접적인 도움은 없어도 어쩐지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이 불안정한 시기에 함께 입장한 기분이다. 마침 어제는 그와 함께 파주도 다녀왔다. 출판단지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싶은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파주에 올라갈 때는 2시간 반, 내려올 때는 3시간 반이 걸렸다. 올라가는 길에서 나는 그를 미래의 장항준으로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쓰는 글로 그를 풍요롭게 먹여살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실로 영예로운 백수가 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조금씩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꿈틀대는 것을 기다려주고 있다. 가끔은 물어봐주고 거의는 물어보지 않는다. 며칠째 몸이 무거운 지금은, 아침마다 컨디션이 어떤지 물어봐주고 있다. 무언가를 물어보든 물어보지 않든 그의 기다림은 유효하다.


요즘은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난다. 심신이 미약하다는 증거인 것 같다. 파주에서는 오징어불고기를 먹다가 남자친구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 어린 시절의 그를 생각하다가 휴지를 적셨다. 흡사 기적의 아이인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얼지 생각했다. 그가 어떤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도 가늠해보았다. 가져보지도 않은 내 아이의 삶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음이 애처로워졌다.


어쩌면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안도와 부담감과 조급함을 모두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엔 좋은 글을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또 어느 날엔 내 글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온다. 내 뒤엔 나를 믿고 있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슬아 작가는 “창작자가 용기를 잃으면 끝장”이라고 생각한댔다. 배짱 없이는 어떤 글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배짱이 없는 채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 이 시기를 춤추듯 지나기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불확실 속에서 추는 춤사위는 어쩐지 아주 애처롭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자의 눈은 빛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에만 충실해도 많은 게 더 나아질 것 같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지고 또 나아가고 싶어서 애를 쓰는 중이다. 사실은 조금 더 애를 써도 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힘을 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자주 슬프게 한다.


2박 3일간 파주에 다녀온 후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되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남자친구와 편안한 시간을 보냈는데도 말이다. 요즘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할 때 자꾸 나이를 말한다. 내가 무얼 하고 있든 스물 다섯이라고 하면 조금 옹호되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다른 거 안하고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할 때도, 스물 다섯이라고 하면 아직 젊다고 핑계할 수 있으니까. 서포터즈를 하기에도 많지 않은 나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나를 변호하기 위해 자꾸 나이를 갖다붙인다. 사실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걸 아는데도.


빵, 커피, 유럽에 대해 쓰기 시작한지 몇 주가 흘렀다. 한국에 6/10일쯤 돌아왔으니까 7/1일인 지금은 약 3주 정도 됐다고 볼 수 있다. 아직 6편의 글이 남아있다. 블로그 후기처럼 쓰고 싶지 않아서 성심성의껏 쓰다보니 자꾸 완벽주의 병이 도진다. 잘 쓸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는 것. 그러나 이 글을 완성해야 나는 다음 글들을 쓰기 시작할 수 있다. 잘 쓰고 싶은 글들이 아직 내게는 너무나 많다. 올해 안에 완성하고 싶은 글들이 너무나 많다. 모두 자신은 없지만 배짱은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그 배짱은 매일의 성취를 통해 생성되는 것 같다. 완성도가 낮아도 매일 한 편씩의 글을 완성하면, 다음날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없이는 한 자도 쓸 수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들로 잔뜩 구성된 나의 하루가 매우 못미덥지만 그래서 희망적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만 붙잡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를 움직이는 건 믿음과 사랑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양보를 받는 사랑을 하는 지금, 나는 못 미더워도 우선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 매일 조금씩 더 선명해지는 것들을 붙잡으면서, 안개를 조금씩 걷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언젠가 내가 큰 양보를 하는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것의 몇 배를 모두에게 돌려주고 싶다. 불확실한 오늘을 살아낼 힘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고 싶다. 그것 역시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큰 힘이라는 걸 안다.


어째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크고 슬픈데 아름답기까지 한가. 사랑과 우정, 믿음과 양보, 용기와 배짱, 미더움과 못미더움, 나이와 성취. 그것들에 대해 앞으로도 오랫동안 쓰고 싶다. 오징어불고기를 먹다가 울어버릴 슬픈 이야기라고 해도.


2023.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