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에서 있었던 일...
한달용 렌즈를 1+1으로 사서 쓰는 편이다. 그러니 두달에 한번은 새로운 렌즈를 사러 가야 한다. 오렌즈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가성비가 괜찮은 브라운 렌즈를 고르곤 한다. 아주 급하게 사야 하는 날에는 급히 주변 안경원에서 원데이 렌즈 팩을 구매해온다. 그러고 나면 눈 건강에는 꽤 괜찮은 느낌이 들지만 한달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렌즈를 사러 가야 한다. 개수가 얼마 없기 때문이다.
가장 마지막에 렌즈를 샀던 건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이었다. 동생에게 생일 선물 대신 렌즈 몇 팩을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때는 유럽에서 쓸 만한 가장 화려한 녀석들을 골랐던 것 같다. 유럽에서 돌아와서도 한달은 더 쓸 수 있을 만한 넉넉한 분량을 구매했었다. 이제는 그 렌즈까지 모두 써버린 시점이다.
벌써 7월이 밝았고 나는 집에서는 글을 못 쓰는 병에 걸렸다. 아무래도 마음의 문제 같았지만 환경을 탓하기로 하고, 친구가 살고 있는 충남 당진으로 떠나기로 했다. 6일간 머물기로 했는데 싸다 보니 짐이 꽤 많아져서 캐리어를 챙겨왔다. 28인치 캐리어를 3개월 간 들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20인치쯤은 아주 우습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무게란 건 정말 상대적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두달치 렌즈를 사야 한다.
친구집은 생각보다 넓었다. 이곳에 모이게 될 친구들은 모두 집주인이 자연인처럼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를 테면 식탁은 없을 것이고, 소파도 없을 수 있으며, 커피머신은 진짜 없을 테고, 누울 자리는 과연 넉넉할지…… 등등. 모두의 예상을 깨고 친구의 집은 매우 쾌적했다. 없는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있는 게 많았다.
우선은 커피머신과 소파, 아주 넉넉한 침구와 책상이 있었다. 베란다도 있고, 부엌을 가르는 중문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후라이팬은 없었다. 하나 있긴 했는데 계란후라이용이라서 구멍이 네개 뚫려 있는 것뿐이다. 이곳에 모이기로 한 친구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돈이 부족했으므로 식재료를 넉넉히 가져오기로 했다.
한 친구는 환승까지 3시간에 걸쳐 이곳에 당도했는데, 무려 비빔면, 콩국물, 곰탕, 햇반, 닭가슴살, 양파, 스리라차, 마늘, 알룰로스에 아이스팩을 두개 끼워서 아주 주황색인 보냉팩에 넣어 왔다. 고작 내 물건만 가득한 캐리어를 털레털레 들고 온 나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알찬 짐이었다. 이런 친구 곁에 있어서 내 음식 취향과 품이 넓어지는 건지도 몰랐다. 유럽에서도 내가 먹는 빵의 종류를 정확히 짐작하던 애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하나둘 맞이하며 나는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처음에는 목이 붓기만 하고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줄 알았으나 이제는 목과 코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절실히 확인하게 되었고, 간간이 기침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빠른 시일 내에 사야 할 것은 감기약과 렌즈였다. 나의 컨디션과 시력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런 건 함께 지낼 친구들에게까지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두달치 렌즈를 한번에 살 때마다 나는 이상한 쾌감이 든다. 앞으로 두달간은 앞이 아주 잘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을 잘 보고 살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보는 것에도 돈이 든다는 게 우습다. 아마도 렌즈 없이 안경을 쓰고 산다면 나는 높은 확률로 두통에 시달릴 것이며, 콧대 화장이 아주 금방 지워질 것이다. 당진의 오렌즈는 꽤 커다란 안경원 안에 딸려 있었다. 아주 친절한 안경사 두분은 어르신들의 안경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해결책을 제시한 뒤, 벌써 렌즈를 골랐냐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적절히 자연스러운 갈색 렌즈를 두개 골랐다. 신상품이라 꽤 기대되는 마음으로. 오렌즈의 데이터베이스는 전국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충북 청주 지점 어딘가에서 구매한 렌즈의 시력을 당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렌즈 시력은 -1.75인데 어쩐지 별로 안 좋다는 평가도, 좋다는 평가도 받지 못한다. 이도 저도 아닌 시력을 가진 사람은 오랫 동안 안경을 벗지도 쓰지도 못할 운명이다.
한달간 사용한 렌즈는 대개 변기에 버린다. 눈에서 빼고 조금 비벼본 후에 톡 떨어뜨리는 것이다. 한달간 나의 눈알이었던 무언가를 파괴하는 느낌이라 조금 미묘한 느낌이 든다. 렌즈가 없는 나는 세상을 조금 흐리게 보아야 한다. 누군가는 흐리게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선명하지 않으면 어쩐지 구역질이 난다. 평지에서도 너무 쉽게 멀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선명하지 않은 많은 것들은 나를 피로하게 한다. 이를 테면 나의 미래, 나의 사정, 나의 글쓰기 실력 등등…… 당진에 와서 신기한 점은 약국이 아주 흔하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어른들이 많은 동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동네는 어쩐지 비가 오면 수련회 냄새가 난다. 꿉꿉하고 습하고 자연적이어서 오래 머물러야할 것 같은 냄새. 오래된 것들이 많은 동네라서 더 생기로운 느낌이다.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죽여주는 열꼬치’라는 오래된 꼬치집이다. 무너져가는 간판이지만 의외로 체인점인데, 전국에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매일 한 꼬치씩 먹고 싶었는데 친구들과 꽤 폭식을 한 터라, 이틀에 한번 꼴로 먹고 있다. 꼬치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곳인데, 친숙하고도 해로운 맛이라 자꾸 먹고 싶어진다. 그들이 언제까지 이 자리에서 꼬치집을 운영해줄지 궁금하다. 아무튼 오래오래 해주셨으면 좋겠다. 친구가 집을 빼기 전에 또 와서 먹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까지 네 명의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다. 나를 제외한 셋은 테이블 주위에서 일하며 놀고 먹고 있다. 나는 구석탱이에 아주 작은 좌식 탁자를 펴고 앉아,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고 글을 마무리한다. 내일 우리의 계획은 콩국수 먹기, 그리고 중식집 가기다. 이 헐렁한 계획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미지수이다. 고작 이런 것도 예견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지낸다. 예상되지 않아서 아름답고 두려운 삶을 자주 불안해하며 보낸다.
아주 슬픈 소식은 남자친구도 비슷하게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주말에 여름성경학교에서 감기에 걸린 아이들과 껴안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감기가 가장 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어쩌면 아이들은 고작 어른의 짐작보다 독하고 아픈 것들을 감내하며 살지도 모른다. 어서 이 감기를 떼어내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어진다.
익숙한 곳을 떠나고 싶어서 떠나오면 익숙한 곳을 그리워하게 되는 모순이다. 그걸 알면서도 일단은 짐을 꾸린다. 렌즈와 감기약을 사서, 선명하고 기침나는 세상을 살아간다. 아주 혼자이기를 원하다가 또 매우 함께이기를 원하는 두 마음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긴 에세이를 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남에게 설명한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