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오해

by 최열음


당진을 다녀온 이후로, 아니 어쩌면 유럽을 다녀온 이후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모든 여행이 끝난 뒤에 남는 것은 무언가. 좋은 시절은 이미 다 가버렸다는 회한과 후회다. 나는 이제 진짜 인생을 살아가야 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조금은 늦은 것 같다. 누군가는 퇴사를 하고, 또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자격증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밤낮 근무에 시달리는 동안 나는 글을 쓴다. 그것이 내가 바라보는 현실이다.


이 한 문단을 쓰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멈춰서 창밖을 바라봐야 했다. 이 글에는 진짜 진실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 한해가 사라져버리기 전에 나는 치열하게 글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파주 출판도시 서포터즈, 운천동 글쓰기 모임, 브런치북 공모 준비, 외부 공모전 준비 정도가 있다. 사실 이 모든 일을 해도 시간이 남아도는 게 문제이다. 짬을 내서 글을 쓰기로 한 게 아니라 1년을 통째로 쏟아부었기 때문에 남아도는 시간을 감당해야 한다.


시간 관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시간 관리를 하지 않으면 나는 정말 무너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일어나면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먹기 전까지 모던패밀리를 보다가,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저녁쯤 집에 오거나 남자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자기 전까지 가십걸을 보는 게 내 루틴이다. 그러니 온전히 글을 쓰거나 읽는 시간은 오후뿐이다. 이 사실이 나를 자주 곤란하게 했다.


나는 종일 글을 쓰는 미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약속이 있기라도 한 날은 모든 게 뒤로 밀린다. 뒤로 밀리는 순간 나는 용기와 의지를 잃는다. 이런 일들이 몇번 반복되고 나니까 이 시간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어차피 내년에는 취직을 할 것 같다는 예감을 뒤로 한 채, 이 시간이 몇 번이나 반복될 것 같은 두려움에 몸서리친다. 글을 쓰지 않는 나에게 화가 나고, 글을 써도 더 많이 쓰지 않는 내게 화가 난다.


그래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많이 상실했다. 이미 내가 싫은 상태인데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라도 보일까 겁났다. 와중에 여행에서 먹은 것들과 여행을 그리워하며 먹은 것들이 더해져서 살이 5키로 정도 쪘다. 2년전 뺐던 그만큼 다시 쪄버린 것이다. 그러니 나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굉장히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머리로 이상적인 생각을 계속 주입했다. 이 시간은 어차피 다시 돌아오지 않아, 언젠가 글이 아닌 무언가로 엄청 바쁘게 될 때면 글만 써도 시간이 남아돌던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 살이 찐 나를 사랑해볼 기회야, 사랑을 갈구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려 애쓰지 말자…… 등등. 효과는 미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내가 계획했던 하루를 그대로 살아냈다. 파주에 가기 전 날이었는데, 무려 집에서 글도 많이 쓰고, 청소에 빨래에 요리도 했으며, 책도 많이 읽었다. 그런데도 성취감이란 게 나를 살려놓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고심했고 골몰했고 취약했다. 시간 계산을 잘못 해서 아빠와 밥도 먹지 못하고 혼자 카레를 먹었다. 채소를 너무 많이 넣어서 싱거운 맛이었다.


어째서인지 기분이 너무 나빠져 방에 들어왔다. 잘 것도 아닌데 방에 들어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조용히 마음을 누르며 책을 읽었다. 글을 많이 쓴 데다가 많이 읽기까지 했는데, 무언가 채워지는 게 아니라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어째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우선 유튜브나 보기로 했다. 유튜브가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도 평소처럼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자포자기다.


해쭈를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전에 유럽에서부터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이동하는 중에 들으려고 오프라인으로 저장해둔 것이었다. 7개 정도 저장해뒀는데 아직 한번도 듣지 않았다. 좋을 것을 예상하고 일단 저장해둔 것들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미뤄두었던 숙제를 처리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틀었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말씀이라 제목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갈망‘,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잘 노는 것이 영적인 것입니다‘, ’교정‘,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힘‘, ’먹느냐, 심느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내 삶의 중심 잡기’……


정말이지 나는 시간이 우리의 것이기를 갈망하며 잘 놀고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의 잘못을 제대로 교정해 미지의 세계에 닿고 싶었으며, 심으려던 걸 먹다가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었다. 그러니 나는 삶의 중심을 다시 잡아야 했다. 분명 단단히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신체적 코어의 힘도 부족하다.


나의 중심을 잡아주실 목사님은 우선 우리가 쓰레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God made…라는 고급 영어를 덧붙이면서. 무슨 상품이든 ‘Made in… 어딘가’를 명시하기 마련이다. 나는 무려 신이 만들었다고 말씀하신다. 다 아는 내용인데 새롭게 놀라는 건 내 영혼이 밑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더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했을 때, 나를 들어올리는 손이 있다. 신의 손이다.


근래 모든 방법은 내 힘에서부터 나왔다. 글을 쓰기로 한 것, 슬퍼하기로 한 것, 시간을 관리해보는 것, 남들과 비교하며 사는 것. 모두 나의 방법이기 때문에 나를 곤란하게 한 것이다. 나는 더 큰 자의 방법을 의지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의 생이 불안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내 글이 어떻게 읽힐지도 모르고, 얼마나 읽힐지도 모른다. 언젠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게 될지, 또는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년쯤에는 무언가 갈피가 잡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갈피라고 생각한 그것이 사실은 내 발에 묶인 돌이 되어 나를 끌어내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고 그래서 두려운 삶 속에서 중심을 잡고 살려면, 한 치 앞에 계신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걸 다시 생각한다. 매번 생각하기로 한다. 다른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기 전에 나의 진짜 중심을 찾기로 한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답은 나의 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이 글을 쓰는 나는 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나를 다시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