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고 사적인 밤

by 최열음


밤이 되면, 정확히는 자려고 누우면 온갖 문제들이 떠오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들, 사람들, 또는 자연이 뒤엎고 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요즘은 그런 일들이 정말 나의 사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오송역 지하차도가 잠긴 건 나의 일이기도 하다. 우리집에서 20분 거리인 데다, 오송고를 다녔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서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기를 바랐다. 무심하게도.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밀려들어오는 물 속에 갇혔다. 미호천이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지 모른다. 익숙한 자연이 익숙한 사람들을 삼켰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아주 사적인 한 사람의 죽음이 몇 번이고 일어난 것이다. 그 가족들을 생각하다가,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우선 당장은 잠을 자야겠으니까, 내게는 아침이 있으니까. 내게만 아침이 있다는 사실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은 무참히도 흐른다.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들은 말에 의하면, 우리 교회 앞 치과 선생님이 거기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우리 아빠가 치아 스케일링을 받던 곳이다. 누군가 괜찮은 치과를 물을 때 나도 추천해주던 곳이다. 교회 앞 카페를 갈 때마다 보이는 곳이었다. 그 치과는 앞으로도 오래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와는 영영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것이다. 절대 같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떤 이는 자신이 힘들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몇이나 해쳤다. 아주 날카로운 무엇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든 무기와 자신 앞에 선 사람들의 삶을 아주 짧은 시간에 바꿔치기했다.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나를 불안하게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비슷한 일이라도 당할까봐,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겁을 내며 지냈다.


해당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은 아마 모자이크 처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려지지 않은 날 것의 장면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기 때문이다. 주변엔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들은 목격자일까, 혹은 무관심한 시민일까. 어느 쪽이든 슬프다. 어느 쪽이든 트라우마와 책임감과 두려움에 시달릴 테니까.


밤에 밖을 나서기가 더 무서워졌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이 특히 그렇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나를 기다렸다가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나쁜 쪽은 특히 빠르다. 세상에는 처벌을 받는 것보다 범죄를 먼저 생각하는 무자비한 자들이 있다. 고작 집앞에 안전히 당도하는 게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을 세상을 상상하는 게 더 어렵다.


얼마전, 재난문자를 받았다. 그 긴급한 알림이 울린 게 너무 오랜만이라 산사태라도 난 줄 알았다. 딱히 흘러내릴 만한 산도 없는데 말이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중이었고, 친구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재난문자가 오기 전이었다. 우리 동네에 경찰차가 와 있고,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고 했다. 마약이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 재난문자를 받았다. 난데없이 우리 동네에서 마약이 터지다니, 어이를 상실하고 있는 와중에 그 애가 뉴스 기사를 보라고 했다. 친구가 어떻게 경찰차를 보았는지 썰을 풀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썰 대신 뉴스를 추천했다. 이미 독극물 테러로 세상은 떠들썩한 중이었다. 우리만 과연 이 동네에서 마약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온 택배를 주의하라는 기사를 보고, 바로 가족과 친구 단톡에 소식을 공유하고 할머니에게는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택배 송장을 들여다보기 전에 우선 열어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뉴스를 보긴 할 테지만 저녁 8시나 9시 쯤에는 드라마를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러줘서 고맙다는 할머니의 말을 뒤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친구들과의 수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고작 나는 가볍고 유쾌한 낮을 보내고, 자기 직전이 되어야 서러워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눈을 뜨기도 전부터 서러울 것이다. 서러움을 토대로 하루를 쌓아나갈 누군가를 생각한다. 실체 없는 얼굴들이 울고 있다. 그 눈물을 자꾸 잊는다. 나의 가벼운 문제들로 그들의 인생을 덮는다. 죽느냐, 사느냐가 아닌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에 집중하며 산다. 고작 그런 삶을 사는 게 부끄럽다.


나와 가족과 친구의 무사건강함을 두고 감사하기만 할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을 위해서는 항상 기도할 테지만, 이미 삶이 조각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밤이 무사히 흐를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 또는 너무 명백한 잘못으로 인해 분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도 잘 먹고, 잘 쓰고, 살이나 빼기를 소망하는 나의 이기심을 생각한다. 나의 미래를 생각하기 전에 현재를 잃은 누군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