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다. 플래너를 열어보지 않으면 무엇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청소년부 수련회 간증 준비, 파주 가기, 글쓰기와 약속으로 촘촘하게 채워둔 날들이었다. 마음이 분주한 것과는 별개로 움직여야 할 곳이 많았다. 7월의 마지막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스무 살부터 교회에서 청소년부 교사를 맡았다. 순전히 자원하는 마음이었다. 나의 청소년 시절은 무척이나 혼란하고 두려웠지만 동시에 가장 웃기고 아름다운 시기였으므로, 다른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정서적으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며 돕고 싶었다. 재수와 동시에 그 아이들을 품게 됐다. 처음 담임을 맡았던 건 중3 아이들이었다. 모두 여자애들이었는데, 매주 새롭고 떨렸던 것 같다. 떨림을 감추려고 많이 웃기도 했다. 애들은 그냥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중3 아이들이 스물 하나가 되었다. 4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동생들인데, 나를 교사로 바라봐준 것만도 좀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청년부 사역에 집중하면서 청소년부를 내려놓기로 했다. 한번에 너무 많은 사역을 맡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교사와 찬양팀과 청년부 리더까지 맡았던 해는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버티고 있었던 게 은혜였던 것 같다.
그리고 올해, 청년부 사역이 끝난 후 무엇도 맡지 않았기 때문에 꽤나 자유로운 상태였다. 여행을 다녀오기까지는 아무것도 맡지 않고 스스로에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도 같았으므로. 실제로 그렇게 말해주시는 어른들도 있었다. 언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보겠냐고, 그리고 어떤 분들은 왜 내가 아무 사역도 맡지 않는지 의아해하기도 했다. 두쪽 모두 이해가 되는 바였다.
2주 전쯤부터 청년부 찬양팀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찬양팀을 하다가 1년 반만 떠나있었을 뿐인데도, 찬양팀에 대한 마음은 잊히지 않았다. 늘 선명했던 것 같다. 찬양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게 막연히 좋고 또 감사했다. 그러나 청소년부에 대한 마음은 어쩐지 희미했다. 의리나 우정으로 청소년부를 가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전도사님은 내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내가 대차게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막막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은 같았다. 아마도 내 몸과 마음이 모두 튼튼하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완전한 교사라는 것도 없지만 섬긴다면 적어도 기쁜 마음으로 섬기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교사는 맡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전도사님께 말씀을 드렸었다. 전도사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지만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하다가는 오히려 탈이 날 테니까.
그런데도 감사하게도 청소년부 수련회에서 간증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봐주셨다. 계속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하시면서, 나 역시 내게 필요한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주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호기롭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수련회 날짜가 다가올 수록 후회가 들었다. 너무 막막하기 때문이었다. 주제는 <내가 만난 하나님>이었는데, 내 인생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스토리로 만들어야할지 고민이 됐다.
며칠간 고민하면서 이리저리 짜맞춘 결과, 내가 느낀 굵직한 메시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기로 했다. 가장 하기 싫은 순간에, 제발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라고, 내 인생으로 통과시키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거 안다고. 하나님은 분명 내 삶 전반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려두셨다. 어떤 것도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은 없으니까.
내 간증의 핵심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는 자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거였다.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는 이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는 것. 그리고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뽑아먹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내가 나눈 메시지는 <인생 모른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지마>, <전쟁은 하나님께>, <너는 쓰레기가 아니다>로 총 네 가지 줄기였다. 주로 재수와 연애, 아빠와 글, 여행과 스타벅스,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에 서기 전까지는 꽤 떨렸던 것 같다. 그러나 나가자마자 자신감이 생겼다. 이 시간을 하나님이 반드시 성공시키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그런 믿음만 있다면. 아이들은 눈에 띄게 집중해주었고, 혼자서 한 시간을 채울 수 없을 것 같아 준비했던 나눔 시간에도 정성껏 반응해주었다. 현재 나의 삶, 나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 중에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가 무엇인 것 같은지에 대해 돌아가면서 나눌 수 있었다. 진로로 고민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어느 시기를 살아가든 우리는 분명 삶에 대해 고민하고 그걸 나누곤 한다. 정말 고민이 없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완성형이 될 수 없다. 삶은 정말이지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느끼든 그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느끼기를 바랐다. 애들뿐만 아니라 나도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앞에 나가서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같다. 말하면서 듣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완전하지 못하다.
간증을 하고, 아이들과 뛰면서 찬양하고, 다음날 바로 파주를 갔다. 아주 지친 몸과 마음이었으나 나름 여행 같기도 했다. 3시간 동안 새마을호를 타고 가면서 아주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로, 삶으로 복잡하고 심란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마음을 며칠간 가지고 살다가 지난 주일에 느꼈다. 어째서 나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하지 못한가.
나를 쓰게 하고, 만나게 하고, 웃게 하고, 울게 하는 손이 있다. 무려 하나님의 손인데, 왜 그 손을 붙잡고도 슬퍼하고 있는지. 이전에 이런 고백을 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하나님이면 충분해요’, 그 때도 분명 나를 충분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를 죽도록 괴롭히는 무언가, 그러다 내겐 하나님이 계심을 다시 한번 인지했다. 그 충분함에 대한 고백을 했던 것이다.
너무도 충분해서 충분한 삶을 살고 있다. 내게 부족한 무언가에 그리 매달리지 않아도 삶은 이어진다. 감사만 하며 살아도 빡빡하게 굴러갈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