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특별한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니다. 백지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무엇도 되지 않을 수 있다. 초파리가 날리는 계절이다. 순수하게 경멸하는 대상이 있다는 게 기쁘지 않다. 유난히 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했다. 여름이 좋아서 필명도 열음으로 바꾼 거였다. 바꾼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계절의 심각성을 느낀다. 이렇게 축축한 날이 좋다고 필명을 열음이라고 하다니, 어리석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들은 분명 올해와 달랐다.
어쩌면 계절의 합당한 복수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은 뜨겁지만 걸어다닐 수 있는 정도의 계절이다. 온도가 아니라 정서를 기억한다. 매미 소리가 들리고, 콩국수를 먹고, 복숭아와 수박을 사고, 한해의 중간쯤 와 있다는 감각. 내가 사랑하는 여름은 그런 것들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자친구와 팔짱을 끼지는 못해도 새끼손가락을 걸고 걷는 것이다. 떨어져 있되 붙어 있는 것이다. 짱짱한 햇빛 아래서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다. 바다나 계곡에 뛰어드는 상상을 하면서 고작 샤워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글을 쓰러 카페에 가는 나는 아주 녹초가 된다. 여름의 생기가 아니라 습기를 되뇌이게 된다. 축축한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만다. 선풍기만 켤 수 있는 방에서 슬퍼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거실에 나와 에어컨을 켜고 샤워를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누군가 에어컨을 켜준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는 안방의 에어컨만 켠 채로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곤 한다. 그가 없는 거실은 여전히 축축하고 뜨겁다.
카페에 오는 동안 더위 먹은 강아지처럼 헥헥댔다. 조금 걸어서 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서 조금 걷는 정도인데도. 오는 길에 배달 기사님과 엘리베이터를 탔다. 헬멧부터 긴팔, 긴바지까지 온도와 상관 없이 온몸을 가려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의 하루 앞에 조금 겸손해진다. 어차피 더울 거라면 살이라도 태우지 말자는 그의 다짐을 본다. 내가 고작 이 정도 걸음에 더워하는 동안,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야외를 누비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더위와 추위 속에서 자주 마음을 붙잡아야 할 낯선 얼굴들을 떠올린다.
어제는 피부관리샵이란 곳을 처음으로 가보았다. 계절 때문인지는 몰라도 붉게 달아오른 피부와 늘어지는 모공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피부를 가만히 두어야 할지 혹은 적극적으로 공격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수많은 계절을 보냈다. 가만히 두는 쪽은 이제 가망이 없는 것 같아, 피부관리샵과 피부과를 각각 예약했다. 더 괜찮은 쪽에 미래를 걸고 싶기 때문이다.
1인샵으로 운영되는 피부관리샵에 상담을 예약했다. 6년차 압출 장인이라는 선생님의 후기글과 관리 영상들을 정독했다. 몇 회나 시술을 받고 광명을 찾았다는 누군가가 나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궁금한 건 얼마를 내고 몇 회를 받아야만 깨끗한 피부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1회에 10만원이나 되는 관리를 한 달에 몇 번이나 받을 수 있을지, 그 지출을 몇 달간 계속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가장 가난한 시기에 가장 과감한 선택을 하는 스스로가 미덥지 못하다.
그러나 여름이 순식간에 변절한 것처럼 나의 피부 재생 시기가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모를 일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거기엔 계절과 피부와 운동과 글과 사랑이 포함된다. 내가 열음이라는 필명을 쓰는 동안은 올해 여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상하리만치 더웠던 올해, 가장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올해, 가장 많은 글을 읽고 쓰게 된 올해, 피부관리라는 걸 시작한 올해, 언제나처럼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지켜주는 올해를. 열음의 여름이란 걸.
이상한 것들이 가장 많고, 한결 같은 존재들이 나의 시작을 함께하는 계절이다. 어제 인스타에서 채용 공고를 보았다. 무려 파트타이머 “편집자”를 구한다는 걸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벌써 이력서를 넣었다. 상상으로는 경기도 수원에서 자취방을 구하는 것까지 마쳤다. 회사의 비전뿐만 아니라 출간 예정 도서까지 나와 결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빨리 지원할 수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졌다. 나 역시 ’급구‘에 있어서는 꽤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일단 지원해본 적이 너무 많았다. 내게 지원이란 건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의 개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앞뒤 재지 않고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꽤 고생한 후로는 앞뒤를 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시작이 급하면 일하는 내내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므로. 그러니 하루 동안 차분히 생각하고 기도해보기로 했다. 자꾸 앞서나가는 마음을 부여잡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꾸만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스스로의 무지를 탄압하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펴볼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가’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페에서 나오면서도, 포케를 먹으면서도, 글쓰기 모임에 가서도, 버스 안에서도, 자기 전까지 1분에 한번은 그 생각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리가 맞나. 결론은 잘 모르겠다는 것. 감사한 건 어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미드만 보다가 잠들게 하지 않으시고, 수련회를 위한 릴레이 기도 시간을 마련해주셔서 어떻게든 기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계속 기도한 건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알게 해달라’는 거였다. 다음날 일어나서 카페에 가기까지는, 좋은 기회인 것 같으니 넣어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신입 편집자를 구하는데 파트타이머인 데다가, 모르면 가르쳐주겠다는 회사는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던 데다가 수원이라면 그리 멀지도 않다. 오히려 방을 구하면 글을 쓸 공간과 시간이 명확해질지도 몰랐다. 그렇게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파일 저장을 끊임없이 눌렀음에도 2번이나 날아가버렸다. 이럴 수 없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나니 차라리 개운해졌다. 역시 <명확히> 알게 하시는구나. 가만히 있으라고 하시니, 가만히 있기로 한다. 역시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불안해하는 나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불안함 속에서 춤을 추듯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 피부관리 샵에서도 이름과 피부 타입 등 사전 조사를 위한 문진표를 작성했다. 어째서인지 직업을 작성하는 칸이 있길래 대차게 X를 긋고 왔다.
슬프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던 것 같다. X를 표시하는 내 모습이 자꾸 연상되기 때문이다. 혹시 프리랜서로 작가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런 질문에 당당히 ‘작가’라고 답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렵지 싶다. 직장이 있지 않은 이상, 직업이라는 게 내게는 언제나 모호한 영역일 것 같다. 지금도 백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쁘기 때문이다. 바쁜 백수는 어쩐지 서럽다. 그러니 동요하지 않고 사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무튼 새로운 직장이 될 뻔한 이력서 소동은 일단락됐고, 오늘 남은 할 일은 서포터즈 아이디어 정리하기, 아이디어 공모전 내기, 맛있는 저녁 먹기 등이 있다. 가뿐한 듯 가뿐하지 않게 매일의 일들을 처리하고 있다. 지금 바라는 건 그저 내가 쓰는 이야기가 생기와 효용을 갖는 것뿐이다. 세상에 꼭 필요한 글을 통과시키는 사람이 되는 것뿐이다. 다만 내가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시간이란 걸 기다려 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