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첫 이력서를 내보려다 만 후로, 어쩐지 가벼운 마음이 든다. 달라진 상황은 하나도 없지만 아주 큰 환기가 되었달까. 무엇보다 내게 독립이 그리 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것 같다. 취업을 한다면 어떤 곳에서 일하고 싶은지, 무엇으로 일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내 이력서에서 채워져야 할 빈칸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자소서를 쓰는 일은 크게 두렵지 않다. 글이야 항상 쓰는 거고, 나에 대해 적당히 솔직 담백하게 쓰는 것도 두렵지 않다. 에세이가 어쩌면 자기소개서와 비슷한 성격을 띠는 것 같기 때문이다. 조금 더 구구절절하고 독자가 확실하지 않을 뿐. 남의 자소서를 첨삭하던 때도, 흔하고 딱딱한 자소서가 얼마나 매력이 없는지 느끼곤 했다. 적어도 나와 비슷한 출판인을 면접관으로 둔다면, 그런 자소서는 절대 쓰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데 도움이 됐다.
어제 느낀 바에 따르면 내가 원하는 회사는 크기에 상관없이 탄탄하고, 비전이 확실한 회사인 것 같다. 그 비전이 하나님을 향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고. 직종에 있어서는 아직 어렵다. 편집자인지, 마케터인지, 작가인지는 아직도 탐색하는 중이다. 이력서를 준비해보니 생각보다 유쾌했고, 프리랜서 생활의 고단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낀 터라 취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한편 올해까지는 글을 죽자고 써보기로 했으니, 에세이 말고도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원하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인물들을 조립해가는 과정이 정말 어렵다. 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일이라서 더 그렇다. 소설 창작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수업이란 게 얼마나 비싸고 빡빡한지 모른다. 그냥 작법서나 하나 빌려서 볼 계획이다. 소설만큼은 천천히 제대로 준비해서 쓰고 싶은 마음이다.
며칠 전, 공모전 마감일에 맞춰서 소설을 써본 적이 있었다. 시작은 한두 번 해보았지만, 제대로 마무리한 적이 없어서 이번엔 꼭 끝을 맺겠다는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하루종일 개연성 없는 인물과 사건에 시달리다가 결국 마감 1시간 전에 포기했다. 어떻게든 끝은 맺었지만 누구도 원하지 않는 글로 생을 마감했다. 언젠가 제대로 고쳐서 다른 공모에라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소설에 대해 생각할 수록 빨리 해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 아쉽다.
우선 세상에 나와있는 필연적이고 아름다운 소설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며칠전 쓴 글은 세상에 나올 이유가 없었다. 있으나 마나한 글로 나와 남의 시간 모두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써야할지도 모르면서 일단 쓰는 건 위험한 일 같다고 이슬아 작가는 말했다. 그래도 그의 글을 읽을 때면 나는 무엇이든 쓰고 싶은 마음에 끙끙 앓는다. 누군가를 읽게 하고 싶은 것도 대단하지만, 쓰고 싶게까지 하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아무리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쓰는 행위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고 막막한 존재가 되고 마니까.
어젯밤에는 해야 할 일을 조금 미루고 아주 맛있는 닭볶음탕을 먹었다. 근래 먹은 것 중에 가장 성공적인 식사였다. 역시 나의 올타임 넘버원 메뉴. 2-3인분과 5-6인분이 몇천원 차이밖에 나지 않길래 큰 걸로 주문했다. 요즘 나는 요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료를 샀다가 다 시들고 죽어버리는 걸 몇번 목격하고 나자 요리에 대한 욕구가 싹 사라졌다. 있는 걸로 버티든지, 사먹든지 하는 편이다. 누군가 만들어준 음식은 푸짐하고 비싸지만.
아빠를 기다리며 닭볶음탕을 세팅해두었다. 우리 동네에 아주 맛있는 막국수 집을 알게 됐다며 동생과 함께 가보자는 아빠의 말은 어쩐지 기쁘고 슬펐다. 동생과 같이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그가 몇번이나 말했기 때문이다. 동생은 지금 방학임에도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아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젊어서인지 몰라도 거의 매일 저녁 10시에 모여서 새벽까지 회의를 하고 오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다. 동생이 없는 집의 새벽은 어쩐지 아주 고요하다. 걔가 없을 때 나는 조금 더 긴장한 채로 잠이 든다. 나보다 더 늦게까지 깨어있을 존재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걔는 요즘 점심쯤 일어나 헬스장을 다녀온다. 내가 홈트를 마치고 씻은 후에 밥을 먹고 카페를 갈 때쯤 일어나는 거다. 내가 집에 오면 걔는 이미 나가고 없다. 우리는 비슷한 듯 엇갈린 리듬으로 살아간다. 거실에 나와서 지친 건지 졸린 건지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는 얼굴로 말한다. 어디 가냐고. 나는 어쩐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카페를 간다고 말한다. 혼자 글쓰러 가는 건데도 괜히 놀러가는 걸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얼른 짐을 싸서, 걔가 먹을 수 있는 점심 메뉴에 대해 일러준다. 냉장고 속 재료에 무지한 애기 때문이다.
얼마전 아빠가 친구에게 받아온 복숭아가 있다. 냉장고에 넣으면 마른다고 해서 베란다에 꺼내두었다. 복숭아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하루에 하나씩 꼭 먹곤 하는데, 동생은 복숭아를 꺼내는 법이 없다. 그냥 냉장고에 어떤 것도 완조리 상태가 아니면 꺼내지를 않는다. 그래서 복숭아를 잘라주냐고 물은 뒤에, 너도 이런 건 좀 알아서 꺼내먹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걔는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고 받아친다. 귀찮을 바엔 안 먹고 만다는 걔의 순수한 무지에 나만 열이 오른다.
그건 냉장고에 있는 무엇들을 항상 의식하는 내게 경종을 울린다. 그냥 걔가 어서 자취든 무엇이든 해보고 냉장고의 음식들을 비워내야 할 당위성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동시에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떠올린다. 걔의 박명수적 엠비티아이를… 나의 정준하적 엠비티아이가 슬퍼하기 전에 이성 회로를 돌린다. 쟤는 나를 상처주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사실을 전달할 뿐이라는 걸 의식하기로 한다. 아직도 평생을 같이 살아온 우리가 전혀 다른 엠비티아이로 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가 다를 때마다 독립에 대한 욕구가 솟구친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서 애틋함을 유지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글의 시작에도 밝혔듯이 나의 독립이 그리 멀지 않다고도 느낀다. 종점이란 게 보이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영원히 반복되지는 않을 이 동거와 서러움과 루틴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우리는 다르다, 다를 뿐이다, 모를 뿐이다, 가족일 뿐이다… 나는 너의 고단함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앞에서 괜찮은 척하는 가족일 뿐이다. 너무 겨울적이고 너무 여름적인 너와 나는 남매로 태어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