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과 피부과

by 최열음

아주 오랜만에 영풍문고에 들렀다. 예스 24 중고서점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40분 동안 버스를 타고 왔는데 NC 백화점 전체가 휴무일이라니, 믿을 수 없었지만 곧바로 영풍문고를 찾았다. 새 책을 살 돈은 딱히 없지만 어찌 됐든 오늘은 목표가 있었다. 소설 작법서를 읽어보겠다는 것. 역시 강의를 살 돈은 없어서 책 한권으로 때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늘 가성비를 추구하는 삶이 딱히 좋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영풍문고에서 작법서 칸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아주 많은 소설과 에세이, 그보다 더 많은 교양서와 문제집들 사이를 이 잡듯 뒤졌다. 영풍문고를 두바퀴 돌고서야 책장 한줄을 간신히 메운 <글쓰기> 칸을 찾을 수 있었다. 직관적으로 좋아보이고, 믿음직스럽고, 예쁜 작법서 세 권을 골랐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시점의 힘, “내 삶의 글쓰기”라는 책들이었다.


헤르만 헤세가 무슨 책을 썼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유명한 이름이었고, 그가 속한 책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울지 궁금했다. 읽다 보니 꽤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느낌이라서 혹시 아직 살아계신 분인가 했다. 그는 1877년생이라고 했다. 나보다 122년을 앞선 분이 나의 스물 다섯 생을 훌쩍 뛰어넘는 느낌이다. 내용이 아주 깊은 것 같았으나 오늘 나의 집중력은 아주 얕은 수준이었으므로, 언젠가 읽을 책 목록에 적어두기로 한다.


“시점의 힘”도 책 뒤편에 적힌 추천서를 보고 집어들었다. 한 작가가 ‘자신이 소설을 쓰기 전에는 어디 있었냐‘며 이 책의 필요성을 어필하길래 데려왔는데, 역시 콤팩트한 정보성 글이라 깔끔하니 좋았다. 아주 도움이 될 것 같으므로 목록에 넣어두었다. 이 목록은 현재 차고 넘친다. “내 삶의 글쓰기”는 자서전을 쓰는 내용이라 패스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인간상을 종합한, 허구의 인물에 대해 쓰고 싶기 때문이다.


영풍문고는 책이 많은 데 비해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통창과 가장 가깝고 불편한 자리를 택했다. 밖에서 사람들이 나를 들여다 본 후에 들어오는 걸 보고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책을 적당히 즐기며 집중하는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실제로 내 앞에 앉은 두 명의 아저씨가 나의 뒷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왔기 때문이다.


그 중 만난 어떤 할아버지에 대해 적고 싶다. 그는 들어올 때부터 거동이 불편해보였다. 앉을 때마다, 일어날 때마다 끙차-하는 소리를 내셨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그의 온몸이 말하는 바였다. 언젠가 자리에 앉기만 해도 몸의 구석구석이 아파오는 걸 느끼게 될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어쩌면 그와 대화해볼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책을 읽지도 않으시고 그냥 앉아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가 책을 한 권 집어들었는데, 그건 바로 비닐에 싸인 <연애 테스트 100제>라는 책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애정의 대상이 있다면 그는 나보다 외롭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비닐을 뜯을지 말지 궁금해하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소리가 나지 않은 걸로 봐서는 아마 뜯지 않고 내려놓으신 것 같다. 그의 연애가 성황리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일어나더니, 나를 등지고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풀었다 다시 채우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바지가 훌렁하고 어느 정도 벗겨지는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끔찍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 할아버지가 변태이거나 괴한이면 어쩌지, 많은 상념들이 스쳐가는 사이 그는 셔츠를 슥슥 정리하고 말았다. 셔츠를 넣으시는 것에 비해 바지가 많이 내려간 것 같았지만 상하의 모두 바람이 잘 통하는 부드러운 재질 같았으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점엔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가 존재했다. 책 읽는 엄마 옆에서 이어폰을 꽂고 학습지를 푸는 아이, 선글라스를 머리에 꽂고 가벼운 수다를 떠는 젊은 여자 둘, 그리고 수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 어쩌면 책을 읽는 건 진득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그건 우리 세대에게 바랄 수 없는 무엇일 테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와서 오후 나절을 보내고 있는게 무척이나 한량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한량이 맞는 것도 같았다. 딱히 직업 없이 글을 읽거나 쓰며 지내고 있으니.


머리 위 2층에 경찰들이 순찰하는 게 보였다. 혹시 이곳에도 살인 예고 같은 게 뜬 건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얼마 뒤 편의점에서 그들을 마주했다. 그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대비하기 위한 순찰중인 것 같았다. 당분간은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풍문고가 터미널 근처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사람이 많을 수록 두려운 곳이라니, 세상이 요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사실 멀리까지 나와 서점에 들렀던 건, 예약해둔 피부과를 가기 위함이었다. 무척이나 유명하다는 원장님께 진료를 받기 위해 2주 전부터 고대하던 것이었다. 예상대로 원장님은 환자들의 편애를 받고 계셨다. 다른 두 선생님들보다 압도적으로 예약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주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나의 피부에 대해 진찰하시는 걸 들으며 어쩐지 심신이 안정되었다. 이분이라면 나의 고질적인 피부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장님의 따스한 진료가 끝나자마자 나는 실장님께로 보내졌다. 실장님이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어쩐지 기가 죽었다. 그는 프로페셔널하게 내게 필요한 관리법과 치료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사실 그의 설명은 치료법의 이름과 가격뿐이었다. 요란하게 두드리는 계산기의 숫자가 올라가는 걸 보자, 큰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기가 죽을 뿐만 아니라 겁을 먹었다. 의심스러울 만큼, 숫자가 200만원을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나는 20만원도 예상하지 않고 피부과에 당도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순수했던 걸지도 모른다. 보험도 안 되는 피부과 치료에 가성비라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10회에 150만원이라는 가격에 최종 낙찰되었다. 이 10회분을 몇달치에 나눠 계산해야 할지 고민하며 카드를 내밀었다. 실장님과의 상담이 끝나자마자 수납을 하게 되었고, 조심스레 ‘6개월 할부요…’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 실장님은 이 카드가 3개월이면 무이자 할부라는 이야기를 얹고 있었다.


이러다 아빠 카드에 당장 50만원이 찍힐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더 다급하게 ‘6개월은 안 될까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장님은 무이자는 아닐 테지만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식으로 결제를 끝마쳤다. 나처럼 어리바리하게 이만한 금액을 긁는 사람들이 하루에 몇 명이나 될지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원장님이 괜히 다정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관리실로 옮겨진 나는 찔리고 덮이고 벗겨지고 채워질 예정이었다. 계속해서 낯선 걸음으로 종종대며 다니는 동안, 직원들은 이어폰을 꽂고 비밀 결사처럼 무전을 쳤다. 누구누구님 관리 받으러 들어오십니다, 원장님 어디 계십니다 등등… 그 중에는 시너지 받고 제네시스 도와드릴게요, 같은 요상한 언어도 있었다. 난생 처음인 곳에서 너무나 처음답게 구는 게 부끄러웠다.


오밀조밀하게 놓인 싸구려 침대에 누워, 관리사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며 할부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되뇌었다. 압출을 끝마치고 파란 재생 광선이란 걸 쐬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턱에 주사를 맞는 것도 무지하게 아팠지만 온 얼굴의 피지를 압출하는 것보단 아프지 않았다. 놀랍게도 원장님을 만날 때까지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민망했으나, 실장님을 만난 후로는 허기를 잊었다. 이 관리가 끝나면 나는 약국에 가서 7만원짜리 연고를 구매해야 한다.


얼굴에 돈을 칠하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가장 먼저 한 일은, 엊그제 충동구매한 머리핀을 취소하는 것이었다. 고작 머리핀 두개에 2만원이었는데, 그걸로 커피 네 잔은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 아빠 카드는 서랍장에 봉인해두는 상상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더구나 나는 오늘 아침, 독립서점 알바에 지원한 참이다. 예상치 못하게 절묘한 선택이었다.


피부과에 오기 전에 지원한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피부 때문에 서점 알바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괜히 슬퍼졌을 테니까. 알바비를 받으면 앞으로 6개월 간 10만원 씩은 아빠에게 부쳐야겠지, 6개월 뒤에는 깨끗한 피부가 되어있을까. 그쯤이면 작법서를 다 읽고 소설을 완성했으려나. 피부든 글이든,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건 피곤한 일이라고 느낀다.


이만한 돈을 썼고, 앞으로 알바를 해서 돈을 보태겠다는 나의 카톡에 아빠는 ‘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약국에서 7만원이 찍힌 게 맞냐고 물었다. 내가 머쓱하게 인정하자, 아빠는 그저 사실이 맞는지 확인해본 거라는 다정한 목소리로 ’어, 알겠어~ 잘했네‘라고 말했다. 매달 25만원어치 할부를 긁은 딸에게 잘했다니. 집에 가는 길이 참 아득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쩐지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게 진짜 사랑의 표현이라고 느낀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벌고 또 쓸 수 있는 건 정말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으므로. 고작 알바비도 아까워하는 나를 생각하면, 아빠는 이미 25년을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나의 스물 다섯이 아빠로 인해 잘 굴러왔다는 생각만 한다. 나는 아직 그 사랑을 짐작할 수 없다.


언젠가 그 마음에 대해 알게 되겠지만 나는 아빠만큼 무던한 사랑을 줄 수는 없을 테다. 아마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사랑을 겨우 내어줄 것이다. 그의 무던함이 나의 한량스러움까지도 돌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다. 그의 보탬 안에서 나는 철부지일 수도, 한량일 수도 있다. 경제적 지원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란 게 있으니까. 누군가 나로 인해 마음 편히 한량일 수 있게 하는 것, 오늘로 150만원을 긁고 배운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