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울 힘이 없는 인생

by 최열음

지난 광복절을 껴서 청년부 수련회를 다녀왔다. 가기 전부터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한 시간이었다. 정말 하나님이 나의 앞길을 알려주시기를 바랐고, 친구들과 온전히 즐겁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두 가지 모두 얻은 것 같다. 내 인생의 방향키가 지금까지 내 손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번 주제 말씀처럼 ‘주의 손이’ 나를 붙드실 거라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수련회를 하면서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도 없었다. 웃긴 일이 너무 많았고, 웃긴 사람도 너무 많았다. 웃기지 않은 사람과 상황도 많았지만 모두 그런대로 좋았다. Best 3는 물놀이를 하다가 떨어진 내 니플패치 한쪽, 그리고 요즘 가장 두려운 게 무어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칼부림’을 말한 오빠,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야간 보행?을 보여준 남정네들.


특히 야간 보행을 보면서 눈을 가린 채 보이지 않는 위험을 점검하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느꼈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손으로 앞을 휘적거리며, 앉을 때도 일어설 때도 모두 장애물을 손으로 확인해가며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속수무책인 존재인 것이다.


비전 특강에서 들었던 종리스찬 전도사님의 강의도 꽤 신선했다. 무려 3시간이나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탁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해주실 거라고 믿으며 가만히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몇 배는 더 열심히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도사님은 일과 공부를 포함해 하루 15시간을 투자할 것을 말씀하셨다. 나는 5시간도 벅찬데…


어제 서점에서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을 읽었다. 거기엔 소설가의 삶, 돈벌이, 글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있었다. 다른 위대한 작가들은 하루를 어떻게 분배해서 글을 쓰는지 궁금했는데, 어떤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한번에 2시간 동안 글만 쓰는 방법으로 하루에 4번을 쓰면 총 8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또는 스톱워치로 누적 시간을 재거나, 하루 중 몇 시간을 지정해두는 일이다.


나는 하루에 두 시간씩 세 번만 써도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약속과 이런저런 잡무로 그만큼 시간을 못 내고 있지만… 분명 시작하고 싶은 글이 있다. 마무리하고 싶은 글도 있고. 시작하든 끝내든 일단 쓰는 게 우선일 것이다. 이런 정보 말고도 글이나 소재 자체가 재밌어서 거의 다 읽고 왔다. 장강명 소설가님 존경합니다.


내가 닿고 싶은 자리에 이미 닿아있는 자들을 본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아름다울지 상상해보지만, 그들도 여전히 사람일 테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사랑하는, 날 것의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글을 보면서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파울로 코엘료, 무라카미 하루키, 헤르만 헤세…


오늘 성경에서 건져낸 말씀이 떠오른다. [시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사람을 의지하면 언젠가 쓰디쓴 허탈감을 맛보게 되어있다.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도울 힘이 없는 인생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고, 우리의 경험은 미약하다. 누군가의 구원이 될 만큼 온전하지 못한 존재이다.


종리스찬 전도사님도, 우리의 죄는 우리가 신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셨다. 통치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삶을, 남의 삶을, 내 감정을, 남의 감정을, 교회를, 가정을, 학교를, 직장을… 자신이 신이 되려는 욕구를 버릴 수 있나.


얼마전 남자친구와 싸우고 나서 혼자 생각했다. 내가 사람과 하나님을 번갈아 의지했구나. 내 입맛대로 생각하며 살았구나. 동시에 진짜 존중에 대해 생각했다. 나와 오빠가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각자 고독한 단독자(종리스찬 전도사님께 들은 표현)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나님 앞에 섰던 아브라함처럼.


우리 각자와 하나님의 관계가 온전하지 않으면 우리 둘의 관계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걸 다시 느낀다.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고, 다른 건 필요하지 않다고, 나를 도와달라고 울며 불며 기도한 후에야 내 삶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걸 느꼈다. 아주 오래전부터 뒤틀려있던 마음이 이제야.


온전한 것을 갈망하지 않는 것은 수치를 모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라이트하우스 서울숲 설교 영상). 나의 갈망이 올바른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하늘을 향하는지 땅을 향하는지, 신을 향하는지 사람을 향하는지. 나는 이제야 고개를 들고 하늘을 똑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