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열음

by 최열음

어느 때보다 영광스러운 주말을 보냈다. 지역 문학 잡지에 기고한 글이 채택되어, 출간 기념회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사실 출간 기념회라는 명칭도 과분한 것 같다. 돈을 받고 파는 책도 아닌 데다가, 시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타인에 의해 내 글이 지면에 실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에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일은 역시 귀찮았다.


보통의 토요일은 어떻게 흘러갔었나. 아마 남자친구를 만나서 시간을 훌렁훌렁 보냈던 것 같다. 맛있는 걸 먹고 딱히 쓸데없는 걸 보았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교회를 가야 했다. 토요일에 교회를 가는 일은 어쩐지 설레는 느낌이다. 사전에 모여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소중한 위치에 놓인 것 같기 때문이다. 보통의 토요일은 그렇게 무탈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는 편이다.


행사는 오후 두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이 문학 잡지는 이번이 1회차라서 준비할 것이 많은 것 같았다. 나 역시 지면에 실리고 출간을 기념하러 모이기까지 하는 건 처음이라서 모르는 게 많았다. 양쪽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마음으로 모이는 듯했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출간 기념회가 1부에 진행되고, 2부에는 무려 김초엽 작가님의 북토크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분의 책을 성실히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익숙한 이름만으로도 왠지 안심이 됐다. 최소한 책과 작가를 사랑하는 어떤 이들이 모일 것이라고 믿으며 움직였다.


시내버스에서 시외버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떨리기 시작했다. 필진 소개를 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쓰는 사람으로서 나를 소개해본 적이 없다. 글도 아닌 말로는 더더욱 없다. 그래도 글로는 몇 번 소개해야 한 적이 있었다. 기고를 하거나 무언가에 지원할 때는 내가 바로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해야 했다. 스스로가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 번 돌려썼던 나의 소개문을 몇 번이고 읽었다. 저는 쓰는 사람이며, 이름은 최승희인데 필명은 최열음이고, 올해 대학을 졸업했으며 쓰는 해를 보내고 있다… 쓰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쁨을 가지고 살고 있다… 두 문장으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총집합되었다. 정리해서 말하다 보니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명확해졌다. 어쩌면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하다가 진짜 작가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물성을 지닌 우리의 책은 생각보다 간편하고 멋졌다. 딱 손에 들기 적당한 크기와 무게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손에 들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많이들 들어주고 한번쯤 펼쳐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두 읽히기 위해 쓴 글들이기 때문이다. 이 문학 잡지의 이름은 <다정한 시간>이다.


행사가 시작되고 에세이 부문으로 가장 먼저 내가 소개되었다. 이 책의 편집자인 분께서 나의 글을 읽고 무려 만장일치로 글을 싣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작은 글쓰기 모임으로 시작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각자 책을 디자인하고, 기획하고, 편집하여 이 책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나의 글을 실어줄 뿐만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실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막연한 힘이 났다. 그간 써온 시간, 앞으로 쓸 시간들에 명분이 부여되는 순간이었다.


김초엽 작가님의 글쓰기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쓰고 싶은 내용은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당최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세심한 경험과 깊은 지식에 놀랐다. 자료 조사라는 게 꼭 필요한 수순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는 자신이 SF 작가로 데뷔하게 되면서, SF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했다고 한다. 결국 SF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린 것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아는 자의 얼굴이었다.


한 분야에 있어서 꽤 괜찮은 입지를 가진 자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속하게 될 분야는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내가 지금 쓰고 싶은 이야기는 도통 어느 분야인지 잘 모르겠기도 하고. 아무래도 나는 SF는 아닐 것 같다. 그건 김초엽 작가님의 책을 열심히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역시 공부한 흔적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기도 하다. 준비가 충분한 자의 글이란 어떤 것인가. 자주 마음만 급한 내게 충분한 준비란 건, 꽤 도전적인 일이 될 것도 같다.


작가님의 강연 및 사인회가 끝나고, 집에 갈 채비를 마쳤다. 감사하게도 옆에 앉은 분께서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함께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떤 분께서 내 글을 가져오시면서, 아직 글을 읽지는 못했지만 사인을 받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아마 그분보다 내가 더 놀라고 기뻤을 거다. 첫 사인이라고 덩실덩실 뛰며 거의 편지를 써 드렸다. 아직 사인이란 걸 생각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읽지도 않았는데 사인을 받아가시겠다는 그 분의 엉뚱함이 너무 감사했다. 어쩌면 나의 자기 PR이 꽤 괜찮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의 쓰는 자들은 자신을 브랜딩해야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나의 첫 사인이 한낱 종이 쪼가리가 되지 않고, 언젠가 유의미한 추억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번주부터는 아침, 오후, 저녁마다 글을 쓰기로 했다.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까지 하는 게 프리랜서의 삶, 전부일지도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재수할 때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마음을 쏟아붓고 싶다. 돌아보며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 언제까지 스스로를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소개글이 바뀌기 전에 한 자라도 더 많이 쓰는 편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