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파민적 인간
오랜만에 쓰는 반도파민적 인간! 오늘은 작가 이슬아 편입니다. 사실 정확히는 그의 <일간 이슬아 수필집>인데요. 이슬아 작가가 살아가는 2018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저는 재수생이었는데요. 제가 가장 무색무취의 납작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에, 그는 ‘일간 이슬아‘를 시작하며 유료 뉴스레터의 시대를 열고, 가장 당돌하고 발칙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것입니다. 그 시대의 간극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는 다작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그래서인지 5년 차인 지금까지 이미 십 수권의 책을 내놓았습니다. 모든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유명한 작가가 되었죠. 그런 그의 삶을 아는 채로 2018년의 이야기를 보면, 조금은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던 때, 얼마나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갔는지.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며 충분히 가난한 삶을 사는 그가 어느 때보다 가깝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저는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서 이 책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지금 쓰는 사사로운 시리즈가 <반도파민적 인간>이잖아요. 명색에 맞게 저를 가장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무엇들에 대해 쓰는 중입니다. 나를 쉬게 하는 것들, 나의 몸과 마음을 늘어지게 하는 것들. 그러나 진짜 물성을 지닌 이 책은, 저를 쉬게 만드는 동시에 일어날 힘을 줍니다. 어서 너의 글을 쓰라고, 너의 미래는 어떨지 궁금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유럽 여행을 갈 때도 이 책을 반드시 가져가야만 했습니다. 저를 쉬게 하면서도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고리였기 때문입니다. 영상은 언제든 열어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책은 몸과 마음을 다해서 끌고 지고 이고 다녀야 합니다. 3개월 동안 돌길에서 캐리어를 끌면서도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을 3권의 책만을 챙겼습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다섯 번째 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아쉽게도 그중 이슬아의 책만이 무사히 한국까지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낯선 곳에서 척박한 마음이 들 때마다 펼쳐본 유일한 책이 되었습니다. 다른 책을 가져간 건 아무래도 실수였던 것 같아요. 한 권이면 충분했더라고요. 이 책만은 절대 버릴 수 없었습니다. 다른 책도 버리기는 싫었지만 어깨와 전완근이 꽤 아팠거든요. 새로 산 옷에 밀릴 만큼 약했던 거죠. 역시 정말 아끼는 건 절박한 상황에 놓여봐야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필집의 최대 장점은 아주 짧은 독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에피소드를 엮은 것이기 때문에 책갈피를 꽂아두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가끔 성경을 읽을 때도 그 방법을 쓰는데요. 오늘은 어딜까, 궁금해하면서 아무 곳이나 펼치는 겁니다. 사실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전후로 조금 수정해서 읽습니다. 처음 읽을 때, 또는 읽을 때마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조금 미미한 기억력이 향하는 곳을 찾습니다.
그의 글은 솔직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데요. 이슬아 작가는 최근 자신이 직설적으로 말하긴 하지만 솔직하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에세이 역시 자신에 의해 편집되고 가공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금은 픽션”일 수밖에 없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작가로서 더 믿고 싶어집니다. 그가 만들어 낸 삶과 사랑과 세계에 이미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스 24에서 진행한 ‘한국 문학의 미래 젊은 작가’ 투표에서도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합니다. 사랑에 대해 줄곧 이야기하는 그가, 자신이 줄 수 있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과 인정을 독자에게 받았으면 합니다. 글이라는 세계에 한정되지 않고, 등단이라는 제도에 한정되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개척자로 살아가는 그가 정말이지 부럽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깨부쉈다거나, 해체시켰다는 데 조금 난감해하는 것도 같습니다. 자신은 그럴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고, 부지런히 글을 쓰며 돈을 벌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글이 주는 개운함과 담백함이, 제 복잡한 삶에 명쾌한 휴식이 되어줍니다. 그래도 다양한 책을 사랑하고 싶어서 잠시 이슬아 편독증을 내려놓았습니다. 다른 책이 읽기 싫을 때는 그의 이야기만 골라 읽곤 했으니까요. 지금은 고전 소설이나 한국 현대 소설, 다른 에세이를 읽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변명할 여지없는 편독이긴 하지만, 편독 중에서도 다채로운 사유를 건져 올릴 수 있으니까요. 언젠가는 계발서나 과학, 경제 부문에도 마음을 줄지 모르겠습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다음으로 좋아하게 된 책이 있습니다. 이슬아의 <심신단련>이라는 2019년 수필집인데요. 그의 삶과 이야기는 어쩜 이렇게 재미있을까요. 그가 재미를 의도하고 쓴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진짜 웃음이 나올 만큼 웃깁니다. 글을 보고 웃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가 유영하는 텍스트의 세계에 저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그만이 통과시킬 수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쓰러 갈 준비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세계가 참 좁다, 넓어지고 싶어서 여행을 다녀왔어도 아직 나는 참 좁구나. 내가 모르는 부조리, 아픔, 고통, 슬픔들이 참 많을 텐데 나는 아직도 나의 눈 안으로만 세계를 굽어보는구나, 라는 걸요. 그런 점에서 이슬아는 확실히 넓은 세계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에는 세계의 아픔이 단편적으로나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고요.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유도하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작은 눈으로만 세상을 보겠지만요. 오늘은 제가 사랑하는 무엇이, 영상이 아닌 책이라서 참 기뻐요. 최소한 제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의 새로운 이야기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그의 목표인 다작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큰 도파민이, 때로는 지순한 반도파민이 되어주는 그의 글을 두고두고 읽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