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칸토 편

반도파민적 인간

by 최열음

엔칸토는 마법을 지닌 가족에 대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주인공은 미라벨, 가족의 이름은 마드리갈 패밀리예요.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탱고나 살사적인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요. 오프닝 음악을 듣고 바로 반해버렸어요. 그때부터 이 영화는 내 것이라는 확신 같은 걸 하게 됐어요.


미라벨은 위대한 마법 패밀리 중에서 유일하게 능력을 지니지 못한 아이입니다. 가족들은 음식으로 상처를 치료할 수도, 아주 작은 소리를 들을 수도,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수도 있는데 미라벨은 무능한 인간일 뿐이죠. 그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자신이 물을 흐린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할 테니까요. 위대한 가족의 유일한 오점이 될 테고요.


그래도 우리 미라벨은 기가 죽지 않습니다. 슬프기는 하지만 씩씩하게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요. 마법을 쓰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은 무엇일지, 계속해서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미라벨은 자신의 의미를 찾아요. 마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깊고 중대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요.


미라벨만이 할 수 있는 무엇들에 주목하며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신나고 기쁘고 재밌는 마음으로, 다음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다음엔 편안하고 무심하게요. 무심하게 영화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해서 보고 나면, 이 이야기가 정말 나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미 몸에 배서 어떻게든 따라오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영화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걸 보는 타이밍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더라고요. 반복해서 보다 보니 알게 된 것들입니다. 우선 엔칸토는 분명한 힐링이 필요할 때 봐요. 개운하게 행복하고 싶을 때 말입니다. 미라벨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을 목격하며, 그 아이가 강인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어요. 아마 자신이 받은 사랑을 몸에 새기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스스로가 약하게 느껴지거나 다운될 때, 행복하게 강인해지고 싶을 때 엔칸토를 봐요. 이 마법의 집이 내게 줄 수 있는 풍요들을 생각하면서요. 비록 제가 살고 있는 집에는 어떤 마법도 느껴지지 않지만, 가끔은 사는 게 그냥 기적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엔칸토를 보고 나면 지극히 평범한 나의 기적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마드리갈 패밀리

엔칸토는 뮤지컬 영화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웅장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영화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미라벨의 삼촌, 브루노에 대한 노래입니다. 제목은 ’we don’t talk about Bruno‘.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브루노 삼촌이, 어느 날 가족을 떠나 사라져요. 그리고 가족들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바를 노래하는 거예요.


더 이상 브루노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 그는 꽤 암울했고, 수상쩍었고, 기이한 사람이었어. 브루노가 우리 결혼식에 비가 올 거라고 했는데, 그날은 하늘이 너무 맑았거든. 그런데 결국 비가 왔어.


부당하고 단편적인 소문을 끌어안고 떠나버린 브루노였어요. 그에게 가족을 구원할 키가 있었고요. 자의적 이단아인 브루노와, 타의적 이단아인 미라벨이 가족을 구해내는 모든 과정이 짜릿하고 기특했어요. 이런 예외적인 인물과 속성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좋았고요.


가끔은 제가 궤도를 벗어나있다는 생각을 해요. 안정적인 바운더리 없이 삶을 개척하는 게 버겁다고 느껴요. 제가 추구하는 것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체력과 정신력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생각하고요. 그러나 곱씹을수록 어느 하나 소용 있는 게 없더라고요. 쓰는 삶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의미 없는 걱정은 저를 갉아먹기만 하더라구요.


그냥 앉아서 써야 되더라고요. 그게 해결점이었어요. 당장은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그냥 쓰는 것, 불안을 배척하고 우선 앉는 것, 그리고 그 불안에 대해 쓰는 것. 새로운 글을 시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제가 생각보다 많은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걸 매 순간 느껴요. 얼마나 유약한 마음인지도.


디즈니 중에서도 엔칸토의 이야기가 유난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처음엔 그걸 몰랐거든요. 예외적인 이들에 대한 가벼운 동질감인 것 같아요. 미라벨과 브루노처럼 궤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해서요. 그러나 그 궤도라는 건 무척이나 주관적인 것 같아요. 스스로 인정하는 바에 따라 언제든 조정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주인공들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들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으니까요. 제게 일어나는 일도 모두 필연적인 거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살사적인 노래와 맞는 호흡으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매 순간이 저의 아이덴티티일 거라고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