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파민적 인간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반도파민적 인간>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했을 때, 소재만 잘 정하면 그때부터는 술술 써질 줄 알았습니다. 그야말로 수십 번 본 것들이니까… 조금만 마음을 기울여도 해야 할 말들이 쏟아져 나올 줄 알았어요. 그러나 쓴다는 건 역시 그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란 말이죠... 아이디어는 그저 준비일 뿐이고 쓰는 건 현실이었습니다.
어쩌면 모던패밀리와 비등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이 본 미국 시트콤이 있습니다. 바로 ‘프렌즈’인데요. 어쩐지 이 드라마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몇 번씩 돌려보는 게 흔한 일인 것도 같아요. 배경음악처럼 틀어두고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시트콤이라 가벼운 데다가 에피소드 형식이라, 조금 놓친다고 큰 일은 나지 않아서인 것도 같아요.
프렌즈를 처음 시작한 건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코로나가 활개를 치던 시절이에요. 고작 4년 전이지만 무척이나 다른 시대를 회상하는 느낌이에요. 확실한 건 무엇도 없고 세상 밖의 누구도 마음껏 믿을 수 없을 때, 집에 갇혀 프렌즈를 시청하곤 했습니다. 친구가 추천해 준 것인데, 아마 진입장벽이 꽤 있을 거라고 들었어요. 전형적인 미국의 웃음 코드인 데다가, 방청객의 웃음소리도 꽤 자주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1화를 보고 나서는 정말 재미없다고 생각했어요. 방청객은 웃는데 저는 영문을 몰랐거든요. 그들도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억지로 웃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레이첼이 결혼식에서 도망쳐 친구들에게 오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실 모든 캐릭터가 생경했어요. 자조적인 챈들러, 칼 같은 모니카, 엉뚱한 피비, 욕망의 조이, 잘난 척하는 로스, 철부지인 레이첼까지. 몹시 미국적이었어요.
그들이 제 삶에 이렇게 깊숙이 들어올 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냥 제 친구들인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하지만요. 프렌즈를 보는 동안 저는 함께 사랑했다가, 분노했다가, 슬퍼했다가, 감동했어요. 우정이란 게 얼마나 요동치는 것인지, 그럼에도 견고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요. 그들이 가진 우정을 내가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마음껏 미워하다가 마음껏 사랑하는 그들의 표현력이 부러웠습니다.
한편 넷플릭스로 프렌즈를 보던 좋은 시절도 있었어요. 돈 때문인지 프렌즈가 넷플릭스에서 빠진다는 소문은 항상 돌았다고 해요. 그럼에도 몇 해 동안은 살아남았는데, 어느 시점에는 정말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지막이 오기 전에 한번 더 정주행 하겠다고 돌려봤던 기억이 나요. 그걸 몇 회씩 돌려볼 때마다 저는 조금씩 바뀌어있었어요. 시즌이 10개나 되기 때문에 한번 돌려보고 나면 잠시 쉬는 텀을 줘야 하거든요. 다시 보러 올 때마다 다른 몸과 마음과 기억을 품었던 것 같아요.
유럽에 갔을 때는 그곳의 IP로 인식이 되어서인지, 넷플릭스에 프렌즈가 뜨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프렌즈를 볼 수 있었고, 자기 전에 익숙한 소음이 필요할 때마다 그걸 켜두었어요. 현아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그냥 소음일 테니 가끔은 에어팟으로 들었고요. 정말 무슨 노래를 듣는 것처럼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로 잠에 들곤 했습니다.
6명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누구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모니카였다가, 레이첼이었다가, 이제는 피비인 것 같다. 모니카는 단단하고 예뻐서, 레이첼은 마음껏 철부지인 게 귀엽고 부러워서, 피비는 너무 웃겨서였습니다. 모두가 다른 매력을 가지고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지는 느낌이었어요. 남자 캐릭터들도 물론 좋아해요. 그러나 진짜 마음이 가는 건 역시 여자 캐릭터들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들 중 누구와도 닮지 않은 것 같아요. 그나마 모니카인가 싶다가도, 강박증 같은 게 하나도 없는 걸 생각하면 아닌 것 같고요. 제게도 프렌즈와 비슷한 모임이 하나 있는데요. 모두 기가 막히게 다르지만 또 기가 막히게 비슷해진 애들입니다. 하향 평준화인지, 상향 평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우리는 평준화되었어요. 서로의 성격에 익숙해져서 포인트를 잘 짚어내는 것 같아요. 서로를 웃기고 한심해한다는 것도, 누구보다 존중한다는 것도 프렌즈의 멤버들과 같아요.
그런 애들 속에 있을 때 저는 마음껏 저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 속하는 동시에, 서로의 바깥에서도 온전한 자기일 수 있으니까요. 괜찮은 우정과 사랑을 가진 자는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실패할 때도, 안전망 비슷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떨어져도 아예 추락하지는 않게 그물로 감싸주는 애들이 있어서 이런저런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도 친구들과의 단톡에서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서로가 없었으면 인생이 참 재미없었을 것 같다고, 몇 명은 말하고 몇 명은 그냥 들었습니다. 사실 봤는지 안 봤는지도 몰라요. 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해요. 거기에 제가 사랑한다고 결정타를 날렸더니 모두가 읽씹을 하더라구요... 별로 속상하지는 않았고 그냥 웃겼습니다.
아무튼 우정과 사랑 속에서 저는 점점 견고해지는 것 같은데, 프렌즈를 볼 때면 집에서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어요. 스스럼없는 웃음으로 저를 돌려놓는 것 같아요. 소파에 마음껏 늘어져서 보고 듣다 보면 거의 잠에 들 것 같아져요. 자막을 켜지 않아도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 테지만, 해석하기도 귀찮으니까 그냥 자막을 켜고 봅니다. 언젠가 프렌즈가 다시 넷플릭스로 돌아온다면 몇 번이고 다시 볼 자신이 있어요. 어쩌면 반도파민적 삶을 살게 하고, 그걸 또 쓰게 한 시초가 이 녀석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