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드타입 편

반도파민적 인간

by 최열음

오늘도 미루고 미루다 반도파민에 대해 씁니다! 저를 편하게 하는 것들을 편하게 쓰느라 자꾸 늦어지는 걸까요.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집니다.


미국 드라마인 <볼드타입>은 잡지사에서 일하는 세 여성의 우정과 사랑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예요. 우선 저는 세 여자가 나오면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두 명은 조금 부족하고, 네 명은 너무 많거든요. 세 명이 딱입니다(비슷한 이유로 <스위트 매그놀리아>도 좋아합니다).


주인공은 글을 쓰는 제인, 디지털 마케터 캣, 패션 어시스턴트 서턴입니다. 셋은 잡지사에서 처음 만났으며, 빠르게 성장해 갑니다.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는 거의 없으며 대체로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사건사고가 생겨요. 20대 중반의 여자 셋이 어떻게 일과 사랑과 우정 사이를 누비는지 보여줍니다.


유명한 미드는 아니라서 처음 보게 됐을 때 큰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저 미국인의 옷차림이 화려하고 리액션도 풍부해서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딥해지는 것이 아닌가. 정치적인 성향도 분명하고 다들 화끈합니다… 특히 제인은 저와 정말 비슷해서 몰입할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셨으며 현재는 글을 쓰고 있는 제인, 다이어리에 계획을 적어두고 판에 박힌 대로 살아가는 사람… 항상 다음 스텝이 무언지 알고 있는 사람이 제인입니다. 그가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지켜보았어요. 슬픔을 떠안고 일어서는 용기를 봤습니다.


극 중에서 제인은 결국 유방절제술을 받게 됩니다. 정말 아프고 고단할 것을 알지만, 유방암 유전자를 지니고 평생 두려워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선택이 정말 이해가 됐어요. 원래 가슴으로 살 수 없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유방암이 유전된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서 정확히 어떤 유전자를 주시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이걸 보고 나서야 알았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초음파 검사도 해봤습니다. 아빠에게 엄마의 유방암 유전자를 물었는데 모른다고 했으므로… 어떤 유전자가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걱정하는 삶이라니. 언젠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미래를 생각하면 제인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요.

아주 날 것의 여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지켜보는 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성취하고 싶을 때마다, 이기고 싶을 때마다 볼드타입을 보곤 했어요. 생각이 뒤틀릴 때마다, 성공하고 싶을 때마다 보았습니다. 아직 마지막 시즌이 풀리지 않아서 조급한 마음입니다. 넷플릭스가 어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현실에 타협하다가도 어느 순간 가장 과감하고 무모한 선택을 하는 서턴, 안정적인 기반에 농담과 여유로 점철된 캣, 조용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가는 제인. 서로가 가장 기쁠 때, 아플 때, 부끄러울 때 모두 함께할 수 있는 관계라는 게 부럽습니다. 어쩌면 가장 순수한 사랑은 우정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잡지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이 드라마 때문에 하게 된 것 같아요. 평소에 잡지를 많이 보지도 않는데…


미국식 화려함과 화끈한 사랑, 팡팡 터지는 사건 사고들에 현혹되고 싶을 때 볼드 타입을 보면 됩니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과 커리어 중, 저는 우정의 편에 서고 싶어요. 다른 건 몰라도 그 우정만큼은 깨어지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긍지 높은 세 여성에 대한 이야기, 볼드 타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