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파민적 인간
맘마미아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의 정체성을 확립시킨 최초의 영화입니다. 밝고 명랑하고 행복한 분위기 속에 성장하는 주인공… 시련과 고난쯤은 가볍게 딛고 일어나는 힘을 목격할 때 짜릿함을 느껴요. 그런 영화를 볼 때면 언제나 스스로를 주인공에게 대입시킵니다. 그가 가진 힘을 닮고 싶기 때문이고, 대개 그 주인공은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아름다운 여성이 과감하게 가벼워지는 순간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맘마미아는 뮤지컬로도, 영화로도 무척 유명해서 오히려 가치가 떨어져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보면 좋지만, 안 봐도 그만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서요. 저는 맘마미아를 스물한 살쯤 처음 보았는데요. 너무 좋아서 친구들에게 이 영화를 봤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보았나…?’라고 말했고, 언제 보았는지 무슨 내용인지도 잊었더라고요. 모두의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해리포터나 트루먼 쇼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만 유년시절이 없었던 거냐며 한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게 맘마미아를 보고 충격에 빠졌어요. 그리스가 저렇게 아름답다고?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저렇게 예쁘다고? 여행하고 모험하며 사는 삶이 저런 거라고? 상업적인 드라마일 뿐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그리스의 어떤 섬에 불시착하거나 정착하게 된다고 해서 꿈같은 미래가 펼쳐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맘마미아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제가 아만다 사이프리드거나, 무지막지하게 낙천적이거나,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직접 유럽에 가본 후에 느꼈습니다.
그래도 저는 맘마미아를 보면서 꿈을 가졌습니다. 푸른 대서양이 보이는 유럽 어딘가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이요. 제게 일어나지 않을 미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뒤바꿔야 했습니다. 그렇게 스타벅스 일을 시작했고, 매달 100만 원씩 8개월가량을 모아 유럽으로 떠나게 됐어요. 비행기 값이 무척 비싼 편이니까, 뽕을 뽑기 위해 가능한 모든 국가를 돌기로 했습니다. 그러려면 지리적으로 그리스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꼭 그리스가 아니더라도 그만한 곳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요… 그렇게 크로아티아에서 한 달을 살게 됐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아주 이상적이고 로망적이고 비현실적인 일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꿈이 실제가 되는 순간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슬프거나 우울할 때마다 맘마미아를 보았습니다. 제게도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며 남의 꿈과 사랑과 로망을 지켜봤어요. 유럽에 다녀온 후로는 맘마미아에 대한 마음이 조금 식어버렸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바다가 필요한 순간, 명랑함이 필요한 순간 꺼내게 될 거라는 걸 압니다.
크로아티아에서 사는 건 꼭 맘마미아 같지는 않았습니다. 집 앞이 바다였지만 생각만큼 많이 나가보지 않았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그곳을 뛰어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낭만을 일상으로 소화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숙소에 박혀 글을 쓰고 밥을 해 먹었으며, 가끔은 제주도에 가고 싶다고도 생각했어요. 아주 낯선 곳은 때때로 정말 낯설게만 느껴지곤 하니까요. 적당히 낯선 곳에서 적당한 일상을 누리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국에서 이 글을 쓰는 동안은 낯선 감각이 또 그리워져요.
그래도 여행을 다니는 동안 맘마미아를 아주 잊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뮤지컬 맘마미아를 봤죠... 그 장면이 무척이나 생생한데, 모두가 기뻐하며 흥에 겨워하는 동안 혼자 울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소피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만이 아니었고… 뮤지컬에서는 더 통통했습니다. 제가 본 것 말고도 아주 많은 소피들이 어딘가에서 노래할 거라고 생각하니 아득해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노래들이 귀에 사무치게 좋았습니다. 맘마미아 특유의 사랑과 연민과 경탄과 희망을 목격한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어요.
현재 기준 가장 좋은 장면은… 세 가지가 있는데요. 먼저는 주인공 소피가 약혼자와 듀엣으로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영화에선 해변을 기어 다니며, 수영하고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는데요.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간절함 같은 게 느껴질 때마다 짜릿해졌어요.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가사는 ‘Don’t go wasting your emotion~ Lay all your love on me~’입니다. 네 사랑 다 내게 줘! 같은 느낌인데요. 분명 어린 커플이지만 서로를 원하는 마음은 별로 어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소피의 엄마인 메릴 스트립이 노래하는 장면을 사랑해요. 사실 소피는 그리스에서 태어났을 뿐이고, 진짜 그곳에 정착할 용기를 낸 건 그의 엄마였거든요. 이미 소피를 임신했기 때문이었고,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임신 사실을 모른 채 그리스를 떠났고요. 아무튼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소피를 명랑하게 키웠으나 여전히 가난했고 남자는 없었습니다. 가사는 ‘Money, Money, Money~ Always sunny~ In the rich man’s world’.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는 그런 세계에 속해있지 않았으나, 크루즈 위에서 드레스를 펼치며 아주 우아하고 기백 있게 노래했으므로… 뭔가 B급 영화 같은 느낌도 들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소피의 결혼식을 앞두고 그의 머리카락을 빗기면서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저의 눈물 버튼인데, 메릴 스트립이 정말 촉촉한 마음으로 딸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웨딩드레스를 꺼내고 딸을 준비시키는 엄마의 모습은 필승이잖아요... 노래의 시작도 ‘School bag in hand… She leaves home in the early morning…’이다. 그러니까 웨딩드레스를 입히면서 딸의 처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걸 볼 때마다 딸의 입장이 되고, 제가 결혼할 때 아빠가 이런 마음을 가져줄지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오히려 할머니 쪽에서 가능할 것도 같아요.
사실 생각하다 보니 좋은 장면이 너무 많아서 더 쓸까 고민했지만, 세 개 이상을 쓴다면 좋음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될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그리고 장면을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우므로… 가장 마지막으로 맘마미아를 본 게 영국에서니까 올해 5월의 일입니다.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네요. 아마 당장은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요. 현실의 모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떠나고 싶어질 때, 여행하고 싶어질 때가 올 텐데요. 머지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때까지는 매일 조용히 글을 쓰며 살 것 같습니다. 아직은 이 일을 기쁘게 반복할 힘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