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파민적 인간
아마도 반도파민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주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다루려고 합니다. 바로 핑계고인데요. 핑계고는 유재석 님과 친한 지인들의 수다쇼입니다. 그야말로 수다쇼이기 때문에 마치 저와 제 친구들이 카페에서 하는 넌두리와 비슷한데요. 생각나는 대로 아무 주제나 잡고 대화를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수다쇼의 전부죠.
핑계고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정말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구나, 싶은 느낌이었어요. 오로지 수다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석진 님과 공원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이광수 님과 돗자리를 깔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유재석이 하는 콘텐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고 해요. 언젠가는 무인도에 가서 생존과 관계 없이 수다를 떠는 게 꿈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오직 수다만을 위한 모임과 장소와 시간… 아무래도 힘을 빼는 게 컨셉이자 매력 같았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너도나도 숏폼 콘텐츠를 앞세우는데, 핑계고는 1시간짜리 영상을 턱턱 내놓습니다. 서로를 잘 아는, 친분이 두터운 연예인들이 주로 게스트로 나오는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게스트는 조세호와 지석진입니다. 그들은 온순하고 해롭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일명 ‘가짜의 삶’이라고도 불리며, 이야기에 양념을 치는 정도의 자극은 있지만 사람들 자체가 선량한 게 느껴진달까요. 아무래도 유재석 님 곁에는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서로를 난잡하게 하되 해치지는 않을 사람들. 여유와 농담으로 무장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수다쇼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너털웃음이 나기도 하고, 또 가끔은 가만히 바라보게 됩니다. 쉬고 싶을 때 보곤 하니까요. 제 반도파민 시리즈도 결국은 잘 쉬기 위한 방법에 대한 것 같습니다. 생각을 비우고 싶을 때, 또는 기발한 생각을 하고 싶을 때마다 보는 것들. 저를 0의 상태로 되돌려놓는 것들이에요. 핑계고 역시 최소 세 번씩은 본 것 같은데요. 물론 모든 콘텐츠를 일정량 반복해서 본 건 아니고, 제 기준 재밌는 것들만 여러 번 보았습니다.
지금 기억에 남는 건, 맨 처음 지석진 님과 공원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던 <산책은 핑계고>. 어찌나 일상 같았는지 뒤에 배경처럼 지나가시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몇 분은 바로 뒤에서 운동도 하셨던 것 같아요. 국민 MC 바로 뒤에서 운동을 하는 자연스러움이라니… 그런 다분히 일상적인 순간에 동질감을 느껴요. 지석진 님과의 티키타카도 너무 웃겼고요. 이따금씩 조언이나 충고를 하려는 형에게 일침을 날리는 유재석 님의 모습이라든지, 형수님과의 통화에서 형을 소개해준 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서로를 깎아내리되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않는, 적당히 웃기고 간지러울 만큼만 서로를 뒤집어놓는 것. 유의미한 무엇을 생산하지 않으려는 자의 유의미함… 아무래도 자연스러움이란 게 희귀하고 또 중요한 가치가 된 현재와 잘 맞는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여요. 핑계고만의 독보적인 무엇을 만들어냈다고 할까요. 애를 써서 만들었다기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방임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들이 편안할수록 우리도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마치 저희가 요즘 진짜 어떻게 지내, 하고 속 깊은 얘기를 꺼내는 것처럼 핑계고에서도 그런 대화를 많이 하는데요.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는 걸 느끼기도 하고, 연예인이 솔직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없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런 대화만 하면 나른할 수 있으니까 떡국을 끓여 먹거나, 짜파게티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요. 최근 제시 편에서는 쿵쿵따 게임을 했는데 너무 못해서 너무 웃겼습니다… 순발력이 부족한 유재석 님과 그를 보좌하는, 비슷한 여동생들이었어요.
한편 누구와 붙여 놔도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고, 상대 역시 본질을 잊지 않게 하는 유재석 님을 존경하는 마음도 있어요. 국민 - 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울 텐데, 이미 그런 부담은 초월해버린 것 같달까요. 그가 이토록 오래, 같은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치고 빠질 때를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진중할 때는 한없이 진중하게, 그리고 가벼워질 때는 한없이 가벼워지니까요. 어느 한쪽으로만 굳어지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요즘은 브런치북 마감을 앞두고 있어서 핑계고를 볼 만한 여유가 없었어요… 나른하게 늘어져서 쉴 만한 시간이 없었는데요. 아마 이번주 일요일(마감)이 지나면 곧바로 소파에 누워서 핑계고를 보고 있지 않을까요… 일단 틀어놓고 언제든 딴짓을 했다가 또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콘텐츠이니까요. 반도파민 시리즈를 쓸 때면 마음이 나른해져서 조금 힘들었어요. 생각 없이 보던 것들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무슨 마음으로 봤는지 곱씹어야 했으니까요.
어쨌든 그런 반복의 이유들, 편하게 중독되는 이유가 분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좋기도 하고, 이야기가 좋기도 하고, 분위기가 좋기도 했으니까요. 여러 이유로 여러 것들을 반복해서 보는 동안, 정말 편히 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쉬어가는 시간이 있어서 저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거라고도 느껴요. 이제 더는 나른하지 않은 마음으로 새로운 글을 쓸 준비가 된 것 같아요.
<반도파민적 인간> 시리즈를 마칩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