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스플리트 #2
작년에만 국민 1인당 연 2회꼴로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저가항공(LCC)의 등장과 발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과거보다는 해외여행을 훨씬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주위에선 영국이나 파리, 그리고 로마 등을 가 보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유럽의 여행지들을 소개하는 붐이 일면서 크로아티아나 아이슬란드 및 스페인의 소도시 등이 한번 이상씩 유럽을 다녀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스플리트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크로아티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사람들이 그보다도 덜 알려진 발칸 반도의 소도시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관련된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들 있습니다. 나도 스플리트가 유럽에서 그렇게 잘 알려지고 인기 있는 여행지라는 걸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황제의 알현실(Vestiblue Predvorje)입니다. 황제 거처에 들어가기 전 신하나 귀족들이 황제를 기다리던 일종의 대기실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구조이며, 천장은 과거에는 모자이크 장식의 천으로 덮여 있었고, 벽이 움푹 파인 곳에는 조각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울림이 좋은 이 공간에서 남성 멤버로만 이루어진 크로아티아의 전통 아카펠라인 Klapa라는 공연을 볼 수 있다는 데 그건 여름 성수기 때나 가능합니다. 지금은 겨울입니다. 아쉽게도 황제의 거처는 중세시대에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황제의 알현실을 나오면 궁전의 안뜰 격인 페리스틸 광장(Trg. Peristil)이 나오고, 우측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대표하는 유적지인 성 돔니우스 성당이 있습니다. 궁전의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고, 3 개의 스핑크스 중 머리가 잘려 나간 스핑크스는 주피터 신전 앞에 있습니다.
동서남북에 있는 궁전의 모든 문으로 향하는 길이 연결되어 있어 길의 출발점이기도 한 가로 35m, 세로 13m의 광장은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든 16개의 코린트 양식으로 장식이 된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금은 비가 오락가락 하고 비수기인 때문인지 사진에서 봤던 인파로 붐비는 광장이 아니라, 유명세를 타지 않아 별 알려지지 않은 로마 유적지 같은 한적함이 감돌고 그래서 둘러보기가 더 편합니다. 광장인데 사람이 없습니다.
궁전의 건축재료는 대부분 스플리트 앞바다의 섬에서 가져온 질좋은 석회암이었지만, 붉은 색의 대리석 기둥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것이고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현무암이랍니다. 성당 앞에는 베네치아 공국이 지배한 지역이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베네치아의 상징인 성마가를 나타내는 날개 달린 사자상이 있습니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Cathedral of St. Domnius)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묘가 있던 곳을 653년 대성당으로 개조시켰는데, 여기에는 반전의 역사가 있습니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여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순교시켰는데 그들 중 한 명이 황제의 고향 살로나의 주교였던 성 돔니우스였습니다. 훗날 그리스도 교인들은 황제의 묘가 있던 자리에 성당을 지어 성 돔니우스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황제에게 복수했답니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은 전통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예수의 삶과 행적을 그려놓은 작품과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은 대성당을 더욱 성스러운 기운이 돌게 합니다. 고대 그리스 건축양식인 코린트 양식도 볼 수 있는데, 원형으로 배치된 팔각형 모양의 24개 대리석 기둥, 그리고 기둥 끝에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상을 넣는 방식이다. 천장 돔에는 돔을 따라 띠처럼 둘러진 황제와 그의 아내 프리스차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성당 입구 안쪽에 커다란 휘장을 걸어 놓고 보수하는 중이라 성당의 전체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화려하면서도 감히 숨소리도 크게 못 낼만큼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당입니다.
성 돔니우스 성당 맞은편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주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이 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주피터는 국가 및 황제를 보호하는 수호신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신전에 관심이 많았고 스스로를 주피터의 아들이라고 칭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궁전 안에 3개의 신전을 세웠는데, 그중 남은 하나가 주피터 신전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 신전은 큰 수모를 당합니다. 주피터 신전 앞에 있는 스핑크스는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목이 잘려 나갔습니다. 신전도 세례당으로 변모했습니다. 한동안 방치되어 오던 신전은 최근에 복원되었는데, 내부는 둥근 형태의 천정 아래에 십자가 형태의 세례반 뒤쪽에 세례요한상이 서 있는 단순한 신전입니다.
사실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로마의 황제들 하면 네로, 아우구스투스, 그리고 카이사르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누가 감히 디오클레티아누스(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라는 그 이름도 긴 황제의 업적이며, 그가 살았던 궁전들을 알고 있겠습니까. 내가 오래전에 읽은 두툼한 로마 역사책(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에서도 그 이름을 읽었던 기억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렇게나마 돈들인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황제이니 오랫동안 기억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여행기를 좀 더 꼼꼼히 정리해 보려고 하는데, 만만치 않습니다.
참고문헌 : 크로아티아 홀리데이, 양인선, 꿈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