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스플리트 #1
크로아티아에서의 둘째 날입니다. 일어나자마자 혹시나 하고 창밖을 보니 다행스럽게도 비가 그쳐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어제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에서 감탄하며 내려다본 바다가 기품 있는 중세의 아드리아해였다면,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세련된 현대적인 아드리아해로 변모해 있습니다.
여기가 이렇게 좋은 호텔이었어? 전혀 기대를 안 했었기에 놀람이 배가 됩니다.
하지만 버스에 오르기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 버스 유리창이 빗물로 얼룩지면서 여기가 겨울의 유럽임을 실감합니다. 설렘이 조금 가라앉는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스플리트로 이동합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는 북쪽으로 230km 떨어져 있어 차로는 약 3시간 거리입니다.
길은 왼쪽에 바다를 두고 내륙의 산을 따라 나 있습니다. 아드리아해를 따라 워낙 멋진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손수운전을 한다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감을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길입니다. 미세먼지 걱정 없이 겨울이라도 창을 활짝 내린 채로 달리고 싶은, 차 안에 앉아있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은 길입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차로 약 50분을 가다 보면 스플리트로 가는 중간에 네움(Neum)이라는 해안도시가 나옵니다.
아드리아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크로아티아가 보스니아령인 네움 때문에 이곳에서 남북으로 분할됩니다.
당연히 여길 통과하는 것은 보스니아를 거쳐가는 것이기 때문에 입국과 출국을 위한 여권 검사를 하게 됩니다.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에서는 네움을 우회해서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를 연결하는 해상도로를 낼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스플리트로 가는 길은 해안 쪽 도로 아닌 내륙 쪽으로도 경치가 좋습니다.
물론 공기가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뿐 아니라, 깨끗한 공기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듯합니다.
크로아티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스플리트에 도착했습니다.
점심으로 현지식인 해산물 리조또를 먹어보는데 입에 맞지 않습니다. 생각했던 맛이 아닙니다.
크로아티아는 해산물이 풍부하다는데... , 음식을 잘하는 집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트립어드바이저를 위시한 인터넷상에서는 나름 유명한 식당이랍니다. 문제는 메뉴일 겁니다. 값싼 요리.
그러나 이 또한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어젯밤을 예기치 않았던 5성급 호텔에서 묶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현재, 비는 그친 상태입니다.
스플리트는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도시 가운데 로마의 유적지가 최대 규모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스플리트의 많은 유적지 중 최고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Diocletian's Palace)으로 오늘날 남아 있는 고대 로마의 궁전 중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궁전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궁전은 성을 둘러싸고 동서남북 사방에 문이 있으며, 각 문에는 금속의 이름을 붙여놓았습니다. 동문은 Silver Gate, 서문은 Iron Gate, 남문은 Bronze Gate, 북문은 Gold Gate입니다. 남문으로 들어가면 지하궁전이 나오며 모든 문은 궁전의 중심에 있는 페리스틸 광장과 통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은 가로 190m, 세로 160m, 그리고 성곽 높이 25m에 달한다. 이 초호화 궁전은 착공 10년 만에 완공되었고, 건립 당시 궁전에는 8,000명 이상이 거주할 만큼 규모가 웅장했습니다. 궁전이 지어지자 황제는 700명의 부하들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합니다. 지금도 3,000명의 시민들이 궁전 안에 거주하며 여전히 시민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285-312) 황제는 고대 신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로마에서 '기독교를 핍박한 10대 황제' 중에서도 마지막이자 가장 그 정도가 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그가 황제 자리에 오른 기원후 284년. 로마는 이미 오래전부터 망해가고 있었다. 끝없는 내전, 야만인들의 습격,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권력 싸움. 무역과 산업이 몰락하고 제국이 파산 직전에 도달하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혁신적인 정치 실험을 시도한다. 우선 한 명이 다스리기엔 너무나도 큰 제국을 4등분으로 나눈다. 바로 4명의 황제가 함께 다스린다는 사두 정치체제(tetrarchia)다'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252)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5/2017081501870.html)
- 사두 정치체제와 기독교 박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견이 가능하겠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경제 정책만큼은 역사적으로 가장 실패한 정책 중 하나로 유명하다. 황실과 공무원 수를 네 배로 늘리기 위해 증세는 필수였다. 하지만 아무리 세금을 올려봐야, 물가가 이보다 더 빨리 오르자 황제는 301년 '가격통제 칙령'을 내린다. 콩, 와인, 돼지고기… 그 어느 물건도 정부에서 정한 가격 이상으로 팔 수 없고 목수, 이발사, 변호사… 그 누구도 정부가 정한 액수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없다! 거역하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지고 화폐가 완전히 몰락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5/2017081501870.html)
참고문헌 : 발칸 유럽 역사 산책, 이기성, 북랩
크로아티아 홀리데이, 양인선, 꿈의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