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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Jun 22. 2024

마처세대의 꿈

-은퇴이민 지원이라니 

인권 감수성이 제로인 저출생 정책 

얼마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정기 간행물 ‘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정책제안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뉴스에서는 재정포럼이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높이기 위하여 제안한 두 개의 주장이 소개되었다.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령에 있어 여성들은 1년 조기 입학시키는 것도 향후 적령기 남녀가 서로 매력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 과 “노령층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은퇴 이민 차원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양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제안에 비판적이었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어떻게 저런 제안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 언론이 제안의 맥락에 관계없이 과도해석하여 보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재정포럼을 검색해서 해당 연구논문을 살펴보았다. 읽고 나니 더 불편해졌다. 국가주의, 가부장주의 가치가 노골적이다. 개인 인권에 대해서는 제고가 없다. 정책 제안자는 저출생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서 현재의 결혼, 출산 지원만이 아니라 교제를 성공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만남을 주선한다든지, 사교성을 개선해 준다든지, 자기개발을 지원해 이성에 대한 매력을 제고해 준다든지 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녀 교제의 성공을 높이기 위한 한 방법으로 여학생 조기 입학을 주장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남녀 교제를 위한 연령 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생물학적 나이, 성별 나이에 의한 강한 편견이 보였다. 비혼가구 출산 지원 정책에 대해서는 “지원에 대한 원래 정책이 의도한 것은 결혼의지가 없던 사람들이 동거라도 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겠지만, 해당 정책을 활성화할 경우, 결혼해서 출산했을 사람들이 오히려 동거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로 전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주장은 결혼 중심의 출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앞선 재정포럼의 두 가지 제언 중에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은퇴이민 장려였다. 내 세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 생산가능인구에 포함되지 않는 인구, 즉 ‘피부양 인구’를 줄이자는 목표 하에 은퇴 이민 지원을 제안한다. 인간을 인구로, 통계 수치로 단순화하는 태도이다. 왜 나는 은퇴이민 장려가 해외로의 고령층 유출, 노인 유기 정책으로 들릴까?     


해외에서 살기라는 꿈

몇 년 전, 나의 노후에 대한 막연한 계획 중에는 해외에서 살기가 포함된 적이 있었다. 내가 타지에서의 장기간 생활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기보다 더 긴 기간의 해외 살기를 희망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즉 건강에 대한 염려가 적을 때, 공기좋고, 물가가 저렴한 적당한 곳에서 살아보려 했었다. 물론 이러한 낭만적 구상에는 한국 생활비와의 비교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곧 꿈은 그저 몽상으로 끝났다. 물가가 한국보다 싼 나라에 간다 해도,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이 고국의 생활수준과 비슷한 생활을 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노화에 따른 의료비도 그 비용 걱정에 포함된다. 그리고 외롭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언어와 문화도 낯선 타지에서 좋은 경치도 하루이틀이지 고립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한국 은퇴자들이 사는 커뮤니티 타운을 소개하며, 한국인들의 교류도 활발하고, 골프 등을 즐기는 모습이 보여줬다. 따라서 언어나 문화 적응에서 오는 어려움, 외로움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취지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생활은 스스로 현지인들과의 거리를 두고, 그저 타지를 이용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생활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아직도 종종 장기 여행으로서 해외 살기를 꿈꾼다. 그 꿈에는 타지에서의 사고, 병, 죽음이 들어가 있지 않다.      


재정포럼에서는 은퇴이민이 “다른 정책들과 다름없이 여러 여건의 사전적 준비가 전제조건”이라는 말을 했으나, 그 사전적 준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비부양인구를 줄이기 위한 은퇴 이민 지원은 일본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가 떠올리게 한다. 70세 이상이 된 노인을 유기하는 풍습에 대한 영화였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플랜 75’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들었다.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국가가 안락사를 적극 지원하는 내용이다. 비록 가상사회를 그린 것이라 하지만, 초고령 사회가 일본의 중요 화두라는 것을 느낄 수는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은퇴이민 장려라는 제안이 나올 수 있겠구나싶다. 안락사가 아닌 이민이니 비판적으로만 볼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안락사이든, 해외유출이든 이러한 제안이 피부양자를 줄이자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안이 영화나 창작물로서 상상된 것이 아니라, 국책기관의 정책지에서 현실적 제안으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초고령사회인 일본보다 앞서는 제안이다.      

   

국책 기관지에 이러한 정첵 제안이 소개될 수 있다니 놀랍다. 한국사회가 다른 고령사회보다 발전주의적 틀 안에서 노령층을 혐오하고 있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싶다.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국가적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일인들의 폴란드 은퇴 이민 사례나 유럽인들의 태국 은퇴 이민 사례 등을 고려해보면 지금의 노년층이 아닌 국제 경험이 풍부한 미래의 노년층에게는 은퇴 이민도 충분히 선택 가능한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연구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서유럽에서는 은퇴자들이 해외에서 많이 산다. 한국보다 앞선 현상이다. 그러나 그들 정부들이 국가적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오래된 목표를 지키고자하는 정부 의 기본임무에 충실한 자세일 것이다.      


마처세대의 꿈

‘마처세대’라는 말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조어를 만드는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사회현상으로 주목받는 것이 조금 늦은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 지인들만 봐도 마처세대를 실감할 수 있다. 가까운 동네 병원을 가보면, 늙으신 부모의 진료를 위하여 동행한 보호자들은 대부분 베이비부머 세대이다. 그들은 예전 같으면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간병인들의 나이도 젊지 않다.       


동시에 부양하던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베이비부머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이제는 자신 차례가 되었나하는 탄식이 나온다. 몸이 성한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 튀어나온다. 병원에 보호자 없이 그들은 혼자 간다. 그렇게 혼자 올 수 있을 만큼 건강이 뒷받침되니 다행이다싶다. 그러나 현재의 건강상태도 불안하니, 보험을 챙긴다. 고령자를 위한 보험 상품, 내용이 점점 늘어간다. 이제는 간병보험이 더해진다. 가족에게 간병, 부양을 부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보험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고 건강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 민간 보험 비용이 늘고 있다.      


이제는 가족 부양의무를 마쳤으니 자유롭게 해외에서 살아도 보고, 지금과는 다른 색다른 문화경험도 하고, 한국에서는 경제적 사정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여가 활동도 가성비 좋은 곳에서 도전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은퇴이민을 가겠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흔쾌히 반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가까이서 자신을 부양하는 가족이 없어도, 사적 보험료와 의료비가 늘어나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는가. 타지 적응이 더딘 나이에 익숙한 자신의 문화권을 떠나는 것이 반길 일인가.     


마처세대로서 나의 꿈은 해외 이민보다는 익숙한 문화에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여유가 된다면 마음에 맞는 친지들과 해외 바람을 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런 꿈이 생산가능 인구비중을 늘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것이 고령층의, 특정 세대의 이기적 태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고령층의 오늘 모습은 청년층의 내일 모습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세대가 정확하게 주의 깊게 볼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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