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모르는 곳에서 제 멋대로 자라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다는 중요한 사실 말이다. 행복은 그 반대다. 행복은 베란다에 있는 작고 예쁜 꽃이다. 또는 한 쌍의 카나리아다. 눈앞에서 조금씩 성장해간다.”-무라카미 류, 식스티나인, 123쪽
지금은 다큐 제목도 주제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유럽 다큐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진행자(감독)가 공원에서 만난 성인들에게 무작위로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 질문에 행복하다고 답한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알콜중독자였다. 나머지 한 명도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런데 만약 불행하냐고 물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무라카미 류가 정의에 따르면, 행복은 내적인 상태에서 오는 것이라면 불행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외부적 성격이 강한 불운(misfortune)에 가깝다. 그렇다면 행복과 불행은 같은 무게를 가지고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리고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다. 사실 한국어에서 불행은 행복하지 않은 상태(unhappiness)보다 불운에 가깝다. 따라서 자신의 불행한 감정을 외적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행복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것이라면 불행은 특별한 경우로 한정된다.
그런데 행복과 불행을 모두 내적인 감정 상태로 정의하고, 인간의 상태를 살피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라카미 류의 말대로 행복은 작은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행복한 감각을 품고 살고 있다. 그런데 불행한 감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몸서리칠 만한 불행이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느끼는 슬픔과 두려움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소한 감정이 쌓여서 불행한 상태를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은 행복한 감정과 불행한 감정이 뒤섞여 살아간다.
그런데 훗날 어떤 시기를 기억할 때, 쉽게 소환되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불행이다.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불행했던 그 감정, 그 상태가 먼저 떠올려진다. 내가 참가하는 독서모임에서 이런 경험을 공유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생각하면 슬펐을 때의 기억이 많이 난다.’ 대부분 생의 주기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어른은 책임과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우니 그 시기가 가장 행복한 때라고 생각하기 싶다. 주변의 초등학교 취학 전 아이들을 봐라. 그들은 작은 일에도 큰 소리로 웃는다. 아주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잘 울기도 한다. 그들 세계는 단순하다. 그들에게 절대적인 것은 자신과 부모이다. 그들에게 부모는, 특히 엄마는 알파며 오메가이다. 시장에서 엄마의 손을 놓치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세상을 잃은 것 같이 온 몸으로 운다. 온 몸으로 느낀 상실감은 슬픔의 원초적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이렇게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맑고 푸르기만 하지 않다. 잿빛이 더 강하다. 그 이유는 바로 아이들은 결핍과 상실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제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면역력이 제로인 상태에서 경험한 감각,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성인이 되어도 지배한다. 나이가 든다는 점,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고립감에 대한 면역력이 커지는 것이다. 면역력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얻어진다. 시간이 주는 내성으로 생길 수도 있고, 이성적으로 고립감의 원인을 추론하여 그 성격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 불행이 자신만이 경험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생긴다.
살다보면 무라카미 류가 말하는 불행을 맞닥뜨린다. 갑자기 공룡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 내부에서 키웠으나 인지 못한 괴물, 아니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오는 불행이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자신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
행복의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불평등하다. 인간이란 종은 행복보다 불행에 예민하다. 기쁨, 행복의 순간보다 두려움, 불행한 순간이 더 각인되어 있다. 행복을 느끼는 실제적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행복은 소심하여 불행이란 시간에 묻혀있다. 기억이란 바다의 맨 위를 차지한 것은 주로 불안, 두려움, 슬픔이다. 그래서 즉시 끌어올려지는 것은 바로 그런 기억이다. 바다는 눈에 보이는 바다의 표면, 파도만이 아니라 심연에 있는 더 많은 공간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순간을 버티게 한 것은 심연에 있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연의 기억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시간에 반짝이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작게 성장하는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감각을 웅크리지 않고 충분히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갑작스런 불행에 허둥대고 사지가 흔들려도 내 감각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온전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도, 자신이 온전히 불행하다고 인식하는 것도 허망과 연민이 불러온 것이다. 두 상태는 혼합되어 일상을 구성한다. 성인은 면역력 제로의 세상을 경유하며 면역력을 키우며 살아온 존재이다. 삶은 갖가지 색깔의 천으로 만든 옷이다. 다양한 색깔을 보는 눈으로 자신의 적응력을 믿으며 버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