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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Apr 25. 2020

상상력이 필요한 정치

굴절이 많은 현실에서 필요한 일 

<아는 형님>이란 예능프로그램에서 종종 ‘댄스를 전달하는 놀이’를 한다. 게임에 보통 5명 정도가 참가하는데, 맨 마지막 선수는 댄스를 잘 아는 연예인이 선다. 선수들은 뒤를 보고 서있다. 처음 선수는 모니터를 통해서 오리지날 댄스를 본다. 그리고 그 선수는 자신의 앞에 있는 다음 선수에게 춤을 전달한다. 대부분 중간에 서는 선수들은 댄스에 대하여 잘모르거나 관심이 적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선수가 오리지날 댄스를 잘 카피하든 안 하든 두 번째 선수부터 댄스가 변형된다는 것이다. 그 변형된 댄스를 보고 마지막 선수는 오리지널 댄스가 나오는 가요의 이름을 알아맞혀야 한다. 앞 선수들이 누구의 춤인지 모르면서 따라한 것, 변형되어진 것을 보고 알아맞혀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변형된 댄스를 보고도 답을 맞히는 마지막 선수들이 있다. 


정치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현실과 오리지널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을 고민하는 것, 이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에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감수성,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현실은 운동이다. 알아맞히려는 자의 지식도 중요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변형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언어이지만. 그 언어의 표현과정은 모두 같을 수 없다. 맥락을 이해하는 것도 능력이다. 평소에 자기 언어화라는 것이 서튼 사람도 있다. 자기 언어를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이 상상이다.


정치란 바로 내 뒤의 선수가 보여주는 언어와 몸짓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중간에 변형되는 배경, 조건, 과정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경우, 우리의 정치는 대단히 변형된 조건을 실제로 이해한다. 오리지날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의정치 제도 속의 마지막 주자, 정치인은 이를 모를까? 아니다. 오리지날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자신에게 몸짓을 전달한 선수의 모습만 보려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당사자를 만나는 정치, 현장의 소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대의정치는 마치 전문가 집단의 정치가 되었다. 조언을 담당해야 하는 전문직 기술자가 대의정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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