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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Mar 12. 2021

영화 ‘9 to 5’가 판타지 장르가 된 현실

여성 노동의 과거와 현실

      

9 to 5 to 9 

아마도 2030 세대에게는 낯설겠지만 ‘9 to 5’라는 영화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시작되는 1980년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를 보지 못했어도 노래의 후크송 부분은 익숙할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돌리 파튼이 부른 ‘9 to 5’ 주제가가 경쾌한 멜로디 때문에 인기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 영화는 경쾌한 코미디 영화지만, 정치사회 드라마이다. 노래의 가사도 영화의 메시지와 직접 연결된다.      


“ 9시부터 5시까지 일해도 겨우 입에 풀칠을 한다. 그들이 모두 가져가고, 받는 것은 거의 없다. (···) 분명 좋은 삶이 있지만 그것은 남성 부자들의 게임일 뿐. (···) 그들은 당신이 꿈을 갖지 않게 한다. 그저 그 꿈들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볼 뿐이다. 승진 사다리에 한 발 딛을 뿐이다. (···) 그러나 그들이 빼앗지 못할 꿈이 있다. 한 배에 탄 친구들이 있다. (···) 다가오는 파도가 우리의 길을 바꿀 것이다.” 


노래는 영화 이후에 미국에서 직장내 남녀 평등을 위한 활동의 전설적인 캠페인 송이 되었다. 또한 이 영화의 주역을 맡은 여성 3인은(제인 폰더, 릴리 톰린, 돌리 파튼) 영화 밖의 세상, 여성운동과 인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오래된 노래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2021년 미국 슈퍼볼 광고에 등장했다. 미국 최대 스포츠 행사인 슈퍼볼은 미국 최대의 광고시장이다. ‘슈퍼볼 광고’라는 이름이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원래 노래를 ‘5 to 9’로 바꾸며 전하는 메시지다. 익숙한 가사의 단어를 이용하여 개사를 하였다. 돌리 파튼이 직접 부른 노래는 다음과 같이 변했다.      


“5시부터 9시까지 일하면서, 당신은 열정과 비젼이 있다. 진취적인 시간을 보낸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다. 당신의 삶을 바꿔라. 의미있는 일을 해라. (···)당신은 꿈을 갖고 있고 그것이 중요한 것을 안다. 사다리를 올라가는 대신에 당신 자신이 보스가 되라. (···) 당신은 많은 친구들과 한 배에 타고 있다. 그들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파도는 바뀌어 너의 길을 만들 것이다. 5 to 9, 지금 당신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이것은 Squarespace라는 웹사이트 서비스업체의 광고다. 이 광고 영상은 근무 시간 내내 침울하고 기운이 없는 사람들로 시작한다. 그런데 5시 퇴근 후 이들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활기찬 모습이다. 이 광고는 직장인들의 꿈, 취미를 찾는 밝은 메시지로 보일 수 있다. 9 to 5 시간과 5 to 9의 시간은 아주 다른 세계이다. 그러나 화려한 광고는 부업을 가질 것을 권하고 있다. 이 광고를 보고 돌리 파튼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을 표현하는 팬들이 많다. 그들의 불만은 80년대 여성의 인권을 부르짖던 가수가 정규적 노동 외의 또 다른 노동을, 계속 일을 하도록 부추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노동이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노동이라면 더 심각하다.       


사무직 여성 노동의 변화      

Squarespace의 광고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면도 있다. 이제는 하나의 일자리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두세 개의 일자리를 가져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전의 여성 노동자들과 비교하여 퇴보하고 있는 것인가?      


영화 ‘9 to 5’에는 직장내 차별과 성적 괴로힘 등 현실 고발과 여성들이 단결을 통하여 스스로 현실을 바꾸어가는 희망이 있다. 이 희망은 판타지적 성질이 아니었다. 이 영화에는 70년대의 여성노동자들의 실화들이 들어가 있다. 영화에 직접적 영향을 준 인물들은 ‘9to5’라는 여성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었다. 비서로 일하던 여성들이 비서 및 사무직 여성들의 노동 존중과 정당한 대우를 성취하기 위해서 1973년에 단체를 만들었다. 지금도 ‘9to5’는 활동중이다. 이들의 역사는 ‘9to5: The Story of a Movement’(2020)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70년대 미국 여성 사무직 노동자의 삶은 어땠을까? 70년대 초 당시, 사무직 노동자는 미국 전체 노동력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건설업, 제조업을 합친 것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다. 특히 비서들은 회사에서 이름 없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들은 노동자로서 기본적 혜택, 연금도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일례로, 내셔널 시티 은행의 경우는 여성은 남성보다 50% 임금을 덜 받고 있었다. 출산휴가도 누릴 수 없었다. 당시에 임신은 건강항목으로 인정되지 않았는데, 임신은 여성에게만 일어났기 때문에 출산휴가를 주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직장 내에서의 성차별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와도 싸워야 했다. 유색인종 여성들과 백인들과 분리된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된 1980년, 80년대는 미국 노동운동의 후퇴기였다. 영화가 흥행을 거두었으나, 9to5가 주도적으로 조직한 여성 사무직들의 노동조합은 대중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사무직의 업무가 컴퓨터화되면서 여성들의 사무직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변했다. 이전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여성의 생활은 달라졌다. “우리는 신용카드를 가질 수 있고, 우리 이름으로 집을 살 수 있고, 우리 자신의 서류에 서명을 하고, 이러한 것들이 내가 젊었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전문직, 직장 내에서 고위직이 되는 것이 전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많은 이슈가 여전히 남아 있다. 남성보다 낮은 임금, 여성 일에 대한 존중감 결여, 성적 괴로힘, 아동 양육권 결여 등이다” 고 9to5 창립 회원들은 말한다.      


그런 위기 상태 위에 새로운 압력이 더해지고 있다. 기술혁신, 4차 기술 혁명의 시대라는 이름은 많은 노동자에게 전보다 더 심한 상태에 놓이게 하고 있다. 어떤 사회보장도 없는, 불안정한 기간제 계약 노동자, 임금의 정체, 24시간 대기하는 시스템, 직원의 모든 행동과 소통을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플랫폼의 시대, 바로 긱 이코노미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9 to 6 일자리는 많은 청년들에게 꿈의 일자리가 되었다. 의료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전일제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지금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영화 세트장은 어디가 될까? 아마도 콜센터, 유통업체, 배송업체의 대형창고가 될 것이다.      


연대를 부르는 노래 

“지난 50년 동안 여성 운동을 볼 때 가슴 아픈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독립적인 여성들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힘이 없다. 개별적이다. 조직된 집단 행동을 통해서만 그들의 영향력을 최대화할 수 있다.” 9to5의 회원 말이다.      


1980년 노래는 여성 노동자간의 연대를 강조한다. 그러나 2021년 노래는 독립하라고 외친다. 스스로 사장이 되라고, 원하는 시간에 일하고, 원하는 노동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긱 이코노미가 말하는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즉 자영업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 자본이 필요하다. 이런 성공은 극히 드물 뿐더러, 그 정도의 자본과 기술력이 있다면 전통적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이제 긱 이코노미 노동의 문제는 미국과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전세계가 동일하게 직면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경우는 배송업체 노동자들의 죽음이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의 노동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으나,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주변화된 노동으로서, 임시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서비스의 사회화에 따라, 전부터 더 많은 여성들이 감정노동이라 부르는 직업군에서 육체적, 감정적 노동에 휘달리고 있다. 2014년 추산, 서비스산업은 전체 고용의 약 70%, GDP의 약 60% 차지하고 있다. 이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직업군에서 여성들은 간접고용 또는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알렉산드리아 J 레브넬은 그의 저서,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유경제(긱 이코노미)는 초기 산업사회로 퇴보시키고 있다. 노동자 보호장치가 거의 존재하지 않고 업무 재해를 당해도 신체장애나 소득손실에 대한 보상받을 길이 없었던 시대로 말이다.” 긱 이코노미는 최저임금 수준의 불안정 일자리의 밀레니얼 버전이다.      


안타깝게도 몇십 년간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성과는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고용과 질좋은 일자리를 통하여 복지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전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대안으로 기본소득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기본소득 논쟁과 함께 기존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무기였던 노동운동과 연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독립과 자유, 유연성은 바로 이러한 노력과 함께 얻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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