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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tripper Mar 12. 2020

1천년 간 사람들이 걷던
그길 위의 기적...?!

까미노를 걸으면 정말 기적을 만날까?


지난밤, 잠자기 전 글자를 좀 읽다 자고 싶어서
얼마전 득템한 책을 꺼내 가벼운 맘으로 훑듯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읽었을까.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후욱- 책 속로 빠져드는 몽환적인 느낌...
정말 오랜만에 집중력이 발현했다.

내겐 거의 멸종한 기능인데,
거의 유일하게, 아주 가끔 나타나는 때가
'까미노 산티아고'에 관한 재미있는 책을 읽는 몇 순간들이다.

(엊그제 헌책방에서 득템한 책이 마치 새 책 수준으로 깨끗했고, 집에서 펼쳐보니 뜻밖에 

#북쪽순례길 에 대한 내용이긴 했다.)


뭐지 이 느낌, 너무 오랜만인 걸. 하다가


순례자들이 흔히 얘기하는 그  #까미노의신비  랄까,

그 길 위에서만 경험하게 되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드문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까미노의_기적?!


아마존에서 절찬(?) 판매중인 까미노 기행서.'까미노의 기적'이라고, 아예 떡하니 제목으로 붙었다. ㅋ


까미노에 대해서 좀 알거나,

까미노를 준비중이거나

이미 까미노를 걸은 사람이라면

한두번쯤 들어봤거나 실제 경험했을 수도 있다.


이 #까미노의기적 이라는 비현실적인 어구를 말이다.


사람들은 기적을 믿을까?


나는... 

믿지 않는다. 

믿지 않았다.


내게 기적은,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거나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가 만나게 된 얘기류다.


기적=비현실=허구  정도의 등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우발적으로 떠났던 첫 까미노를 준비하던 2주간,

준비물과 현지 교통편 등을 서칭하며 발견한 것 중 하나가

이 '까미노의 기적'에 관한 것이었다.


1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숱한 사람들이 걸어온 까미노는

오랜 기간 차곡차곡 쌓인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담긴 정성과 염원과 간절한 기도 등이 켜켜이 쌓여

그 길만이 가진 특별한 에너지가 있는데,

정확한 워딩이나 어떤 명확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뭐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는 거다.



기적이라니.

21세기에?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


한달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걷게 되니

걷는 동안 힘겨운 상황이 해결되거나

걸으며 명상하고, 맘 정리할 시간을 버는거겠지 싶었다.


그렇게 2015년이 막 시작되던 겨울, 느닷없이 결정해 느닷없이 떠났고

33일간 #프랑스길 을 걸으며 

나도 그 #까미노의기적 이라는 걸 실제로 만났다. 



 까미노의 기적 ?


2015년 2월 1일 일요일.


#프랑스순례길 이 시작되는 #피레네산맥 어느 골짜기 작은 마을, 

#생장피에드포르 성당에서 오전 8시 미사를 기다려 신부님께 축성을 받고 첫발을 뗐다.

이 좁은 골목길을 걸어 화면 저 끝으로 나아가면 구시가의 경계를 알리는 오랜 성문이 있고, 그 밖으로 피레네로 향하는 오르막이 이어진다.



전날 종일 비 내렸던 마을은 그저 고요했고, 추웠다.
첫날인데, 그날 걸을 코스는 #생장피에드포르 에서부터 #론세스바예스 까지 27km.

맘을 다잡고 한시간이나 걸었을까. 

지난밤 그쳤던 비가 다시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와 눈이 반쯤 섞여 흩날리던 진눈깨비는 어느새 밀도 높은 진지한 눈으로 바뀌었고, 순례 첫날을 이렇게 축하받는다며 설레던 맘도 피레네에 깊이 들어갈수록 조금씩 가라앉았다.





한시간쯤 더 걸었더니, 이젠 화살표가 표시된 이정표가 눈에 가릴 지경이었고



산으로 들어갈 수록 눈발은 더 굵어졌고 무서운 속도로 쌓이기 시작했다.



인적없는 산길에서 마지막 이정표를 놓친 지도 한참이나 지나 불안한데
선명하게 드러나는 동물 발자국 ;


여기쯤 왔을 때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 하다는 그 관용구를 실제 체감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발 딛고 있는 곳이 정말 사람이 다니는 길인지 모르겠는데다
어디로 갈 지 방향도 모르겠고, 
그토록 익숙하던 문명의 그림자는 1도 없었으니까.

한참을 서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평소 지도도 잘 보고, 직관적으로 길을 잘 찾았던 내 감을 믿어보자며 
왼쪽 방향으로 한발 떼려던 순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 깊은 산중에서 대체 무슨 일?



돌아보니, 전날 알베르게에 함께 묵었던 독일인 존이었다.

겨울이라 인적 드문 작은 산골 마을에 줄곧 혼자 있었어서인지 왠지 의기소침하고 막연하게 뭔가 무서웠었는데, 오후 8시쯤 알베르게에 입장한 다른 사람의 존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캠핑 전문가로 유럽과 미국 국립공원 등을 누볐다던 존은
이미 하루 전날 생장에서 머물고, 스페인 첫마을에 도착했었어야 하는데
피레네를 넘다 악천후를 만났고,
설상가상 부츠에 구멍이 나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러고선 아침 일찍 떠났는데, 다시 불쑥 나타난거다. 

그러면서 방향 몰라 헤매던 내게 독일어 가이드를 보여주며 방향잡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까미노 루트 말고, 국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는 조언까지 덧붙여서. 

존이 가리킨 방향은 오른쪽.
내가 가려던 방향과 정반대였다.

존을 따라 개울을 지나 이어지는 오른쪽 방향으로 나서니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피레네를 관통해 프랑스와 스페인을 잇는 D933 지방도로가 나타났다.


그날로부터 사흘쯤 지났을까.

#팜플로나 라는 제법 큰 도시에 도착해 알베르게에서 만난 한국인 커플이 들려준 뉴스에 기함할 뻔 했다.



내가 눈 속을 헤매며 피레네를 넘은 2월 1일  바로 뒷날,

나와 같은 구간을 걷던 한국인 남자가 설산을 헤매던 중 피레네에서 사망했다고.


그 사람도 아마 나처럼 폭설에 대비한 바른 정보 없이 걸었으나

나처럼 길잡이를 만나는 행운에는 닿지 못한 모양이었다... ;


만약 하루 전날, 

아니면 하루 뒷날,

같은 날이었다고 해도 존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왼쪽길(피레네산 깊숙이 들어가는)로 방향을 잡았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숨쉬고 있는 게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


설산을 헤매던 내 앞에 캠핑 전문가가 나타난 일,

하루 전날 떠났어야 할 그 사람이 마침 부츠에 구멍이나 마을로 되돌아온 일,

그래서 나와 같은 날, 다시 피레네를 넘어야했던 일,

마침 비슷한 시각에 그 구간을 지나다 나를 만나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던 일,

모두 엄청난 행운과 기적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2015년2월2일 아침 피레네를 넘다 운명을 달리한 그 분의 명복을 다시 빈다...





PS.


사실 이 에피소드 말고도 다음번 산에서 또 길 잃을 지경에서 정확하게 나타난 친구가 다시 날 불러 방향을 잡아주었던 일, 작년 한여름 지글거리는 태양을 고스란히 쬐며 북쪽길을 걸으며 모자가 생기기를 기도했는데 30분뒤 만난 어느 커플이 모자를 내어준 일 등,  #까미노의기적 이라 불릴 만한 사건이 몇 개 더 있는데 쓰다보니 첫번째 에피소드만으로도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오늘은 이만 접기로 ㅜ.ㅡ


#부엔까미노!




#산티아고순례길 #까미노산티아고 #겨울까미노 #까미노준비 #순례길 #생장 #생장피에드포르 #론세스바예스 #피레네 #발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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