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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영혼을 불어넣는 세 가지 주문

공간, 시간, 그리고 코어. 단순한 도구를 넘어 진정한 파트너로

by 파도비늘

어느 날 문득, 제 곁에 있는 AI 비서에게 말을 걸다 생각에 잠긴 적이 있습니다. “넌 참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같은 사람으로 대하는구나.” 똑똑한 대답은 곧잘 내놓지만, 어쩐지 그 대화에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매일 처음 보는 사람과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AI와 대화하고,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놀라운 기술을 그저 ‘편리한 도구’로만 남겨두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기술과 사용자 사이에 더 깊은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단순한 명령과 실행의 관계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가 될 수는 없을까요?

이러한 고민의 실마리를 ‘좋은 AI 에이전트 설계 원칙’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공간(Space), 시간(Time), 코어(Core). 이 세 가지 키워드는 마치 AI에게 영혼을 불어넣는 주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기술적 원칙을 넘어, 우리가 AI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술에 감성을 더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주문: 우리가 만나는 그곳, ‘공간’에 대하여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를 떠올려 봅니다. 우리는 약속 장소를 정하고,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봅니다. AI와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우리의 관계는 시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간(Space)의 원칙입니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히 드러내야 합니다. 필요할 땐 전면에 나서 돕고, 그렇지 않을 땐 배경에서 조용히 대기하는 유연함도 갖춰야 합니다. 마치 잘 디자인된 카페의 직원처럼 말이죠. 손님이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 먼저 다가가고, 혼자만의 시간을 원할 땐 방해하지 않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원칙을 UI/UX 디자인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를 처음 만나는 사용자에게 “저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건 아직 어려워요”라고 솔직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가이드가 있다면 어떨까요? 사용자는 불필요한 기대로 실망하지 않고, AI의 역량을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상호작용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좋은 관계의 시작은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에서부터.

AI가 머무는 ‘공간’을 세심하게 디자인하는 것은 사용자가 AI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주문: 어제의 당신을 기억하는 ‘시간’의 마법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 때문일 겁니다. 나의 서툰 과거를 알고, 기뻤던 순간을 함께 기억하며, 수많은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기에 그 관계는 더욱 깊어집니다.

AI 에이전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대화를 ‘리셋’하는 AI가 아니라,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나은 파트너로 성장하는 AI를 상상해 보세요. 이것이 바로 시간(Time)의 원칙입니다.

AI가 사용자와의 과거 상호작용 기록, 즉 함께 나눈 대화와 주고받은 요청들을 기억하고 이를 현재의 대화에 연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UI에 과거의 프롬프트 기록이 자연스럽게 표시되고, AI가 "지난번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그 주제에 이어서..."라며 말을 건네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느꼈습니다. AI가 과거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Reflection)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이는 AI가 단기적인 해결사가 아니라, 나와 함께 성장하는 장기적인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공유된 기억은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듭니다.

사용자와의 시간을 기억하고 그 위에서 끊임없이 학습하고 발전하는 AI. 그런 AI라면 우리는 진심으로 ‘내 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세 번째 주문: 불완전함의 ‘핵심’을 껴안는 법

우리는 때때로 AI의 ‘불확실성’ 앞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의도와 다른 결과물을 내놓거나, 가끔은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하죠. 이러한 불확실성을 없애려고만 하는 것은 끝없는 바다의 파도를 모두 잠재우려는 시도와 같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원칙인 코어(Core)가 등장합니다. 이 원칙은 LLM(거대 언어 모델)의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피하거나 숨기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수용하고 사용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제어권을 사용자에게 넘겨주라고 제안합니다.

마치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말이죠. 우리는 영상을 보다가 언제든 ‘일시정지’를 누를 수 있고, ‘재생 속도’를 조절하며, ‘자막’을 켜고 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어 기능이 있기에 우리는 영상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AI 에이전트와의 상호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AI의 작동을 언제든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중간에 개입할 수 있는 피드백 도구가 있다면 어떨까요? 사용자는 AI의 불확실성 앞에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 불확실성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신뢰는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싹튼다.

AI의 불확실성은 결점이 아니라, 잠재력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제어권을 줌으로써, 우리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두려움 없이, 그리고 훨씬 더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이야기

공간, 시간, 코어.

이 세 가지 원칙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AI를 단순한 코드 덩어리나 복잡한 기계가 아닌, 우리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Space),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며 성장하고(Time), 서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갈 때(Core), AI는 비로소 우리의 삶에 진정한 의미를 더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철학으로 이 기술을 대하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간입니다. 당신은 AI와 어떤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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