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AI는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좋은 질문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오늘, 당신은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시겠습니까?
처음 챗GPT를 마주했던 날의 흥분을 기억합니다. 몇 개의 키워드를 던졌을 뿐인데, 순식간에 유려한 문장이 펼쳐지는 마법. 보고서 초안도, 이메일 답장도, 심지어 아이를 위한 동화까지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대가 왔구나. 나는 이 도구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구나.’ 그렇게, 저는 스스로를 꽤 ‘디지털에 유창한’ 사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리서치를 위해 AI에게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그럴싸한 통계와 함께 저명한 대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주더군요. 완벽해 보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처를 검색해 본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AI가 언급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통계는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AI는 너무나 자신감 있는 태도로 제게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AI를 ‘사용’하는 능력과, 그것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요. 우리는 지금, 디지털 리터러시를 넘어 AI 리터러시(AI Literacy) 라는 새로운 문해력을 요구받는 시대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역량을 갈고닦아 왔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고, 그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며, 유용한 정보를 모아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은 마치 잘 만들어진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길은 복잡했지만, 지도(정보) 자체는 사람이 만든 것이었죠.
하지만 AI 시대의 우리는 지도 없는 숲에 들어선 탐험가와 같습니다. AI는 인간이 만든 정보를 기반으로 스스로 새로운 길(콘텐츠)을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숲속의 지름길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길로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길을 알려주는 지도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 즉 AI 리터러시입니다.
AI 리터러시는 AI와 제대로 ‘소통’하고 ‘협업’하는 능력입니다. AI를 단순히 명령에 따르는 도구가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파트너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죠.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맹신하는 대신, ‘왜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이 결과에 숨겨진 편향은 없을까?’라고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태도입니다. AI와 함께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공동 창작(Co-creation)’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격차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면, 새로운 격차는 ‘AI의 말을 분별할 수 있는가’라는 비판적 판단력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AI가 생성한 정교한 가짜뉴스에 사회가 흔들리고, 편향된 알고리즘이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결과를 내놓을 때, 우리는 그것을 분별하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AI를 다루는 우리의 능력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신뢰,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될지도 모릅니다.
AI 리터러시가 왜 이토록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AI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달콤한 열매’와 그에 따르는 ‘씁쓸한 책임’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AI를 잘 활용하면 개인당 연간 약 19,000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주당 평균 5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저 역시 AI 덕분에 반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AI 활용 능력에 좌우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달콤함의 이면에는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의 무게가 있습니다. AI가 만든 딥페이크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채용이나 대출 심사에서 불공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개발자, 사용자, 아니면 AI 그 자체일까요?
이러한 윤리적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술의 소비자를 넘어 ‘책임감 있는 관리자(Steward)’ 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사용하는 AI가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 결과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이해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고민하는 것. 이것이 바로 AI 리터러시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인식한 세계 각국은 이미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핀란드는 학생들이 직접 가짜뉴스 제작자가 되어보는 ‘트롤 공장’ 게임을 통해 허위 정보 분별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미국은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체계적으로 AI의 원리와 사회적 영향을 배우는 ‘AI4K12’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코딩 기술 이전에, AI와 함께 살아갈 ‘시민’으로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아직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몇 IT 대기업들이 직원 교육에 힘쓰고, 일부 기관들이 단편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국가 차원의 통합된 비전과 전략은 보이지 않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분절된 섬들의 집합’과 같습니다.
기술은 이미 우리 삶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그 손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 격차는 벌어지고 있고, 우리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AI가 만들어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흩어져 있는 노력을 하나로 모으고, 모든 국민이 AI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해답이 ‘국가 AI 리터러시 통합 교육 플랫폼’ 구축에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꿈꾸는 플랫폼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온라인 강의 사이트가 아닙니다.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이 AI의 원리를 놀이처럼 배우고, 취업준비생이 AI를 활용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며, 어르신들이 AI 스피커와 대화하며 디지털 소외에서 벗어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디지털 놀이터’이자 ‘평생 학교’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 즉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력, 윤리적 판단력을 기를 것입니다. 기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감독하는 ‘AI 관리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AI 리터러시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AI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AI 기술을 책임감 있게 주도하는 ‘AI 네이티브’ 시민으로 성장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 꿈을 향한 첫걸음은, AI를 아는 것을 넘어, AI에게 올바르게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우리 모두의 노력에서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