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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군자 Mar 11. 2021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그럼 나쁜 인간은요?

저 새* 진짜 아무리 봐도 나쁜 인간 같은데요?

Photo by Jay Heike on Unsplash

대한민국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 그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말한다. 걸핏하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굴고, 반갑다고 인사하는 사람에게 미친 듯이 짖는 개도 예외 없이 나쁜 개가 아니다.


좋은 마음으로 다가오는 손길을 물어뜯어버려 손님의 손에서는 피가 철철 난다. 사나운 강아지 한 마리 때문에 그 공간의 모든 사람들이 꼼짝 못 하고 공기가 얼어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형욱은 이런 강아지를 나쁜 강아지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게 ‘문제행동'이며 강아지가 아니라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짚을 뿐이다. 왜냐 보호자, 그 개의 반려인이 잘했다면 개는 나빠지지 않았을 테니까. 책임은 개의 문제 행동을 방치한 반려인에게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람은 어떨까? 놀랍게도 회사에는 이런 나쁜 개 같은 사람이 꼭 있다. 존재만으로 함께 있는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이유도 맥락도 없이 남에게 비난과 공격을 퍼부으며 인격 모독을 하는 사람. 예측 불가한 감정 기복에 따라 감정을 마구 폭발시킴으로써 옆에 있는 사람의 감정마저 나쁘게 물들이는 사람. 이렇게 주변을 얼어붙게 만드는 사람에 대해서 


"그래도 걔가 나쁜 애는 아냐"

고 하는 게 맞을까?


개에 물려 피가 철철 나는 사람에 개 주인이 나타나  '근데 우리 애가 나쁜 개는 아니에요.'  한다면 어떨까? 물려서 피나는 사람만 바보 만드는 상황이다.


진짜 문제는 사람도 마치 개와 같은 '문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이유로, 언어를 구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분명한 '문제행동'을 성격의 문제로 싸잡아 미화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분명히 문제적 행동이었음에도 조직 안에서는 그런 일이 '그 사람의 성격'이라는 문장으로 무마되곤 한다. 하지만 개인의 성향에 해당하는 것과 객관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회사에서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인격모독을 당하거나, 폭언을 듣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에 대해서 누군가 불만을 터뜨리면 직장 동료들은 으레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성격이야~ 사람 원래 그런 거 알잖아~"

"네가 참아.  그런 걸 신경 써, 그냥 무시해!"

"걔가 그런 거 한두 번이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개에 물려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개와 싸우다 다치거나 개에게 시비를 걸고 물려서 오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었는데 달려들어 문 개에 물리는 사고로 온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신경 쓰지 않아도, 가만히 지나가기를 참고 기다려도 대비하지 못한 틈을 노리고 달려들어 사람을 물어뜯고 가버리는 인간이 있다.


강아지의 문제 행동을 보면 보호자는 눈물을 흘리며 참회한다. 강아지를 위해 더 나은 것을 해주고자 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스스로를 바꾼다. 반려인의 노력을 통해 반려견의 문제행동도 점차 나아진다. 그렇다면 성인이 되고도 세상에 문제행동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어떨까? 상사의 폭언과 인격 모독으로 누군가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고 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


사람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문제행동을 하고 있다면, 눈물 흘리며 마음 아파하고 고통받는 것은 피해자들이 아니라 문제행동을 한 바로 그 나쁜 사람 본인이 되어야 한다.


수많은 문제견들을 향해 강형욱은 말한다.

'강아지에게는 사회성이 길러지는 마법의 기간이 있어요. 그 기간을 놓치면 강아지에게 평생 어려운 숙제를 주게 됩니다. 처음 탄생하고 엄마 강아지와 함께하는 1-2달, 그 기간에 강아지는 다른 강아지들과 잘 어울리는 법, 사람과 어울리는 법을 배웁니다. 어느 정도의 세기로 물어야 장난이 되고 상대가 아프지 않은지를 배우는 것도 이때입니다.'


이 마법의 기간을 놓쳐 때로는 훈련으로 교정할 수 없는 강아지들에게는 최후의 수단이 있다. 길거리의 아무나 물지 못하게 외출할 때 입마개를 씌우는 방법이다. 이것을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할 수 없지만, 다만 세상의 많은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겉으로 다치지 않았다 뿐이지, 누군가의 마음속, 머릿속을 개의 이빨보다 더 날카로운 것으로 물어뜯고 헤집는 사람들, 이들을 그냥 사회에 던져놔도 되는 것인지. 이들이 물어버려 다친 사람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회사에서 문제행동을 일삼는 인간들, 나이가 좀 더 많다고 연차가 많거나 상사라는 같잖은 이유로 남을 괴롭히는 나쁜 인간들에게도 입마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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