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전날 밤

<The Night Before The Funeral>

by Robinsoon

그가 눈을 감은 밤에 하늘을 뒤덮은 구름 사이로 빗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달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비의 계절이었다.


어머니로부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서울에 있었다. 시각은 밤 10시를 좀 넘은 때였다. 어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가 죽었을 때의 상황을 하나씩 말하고 있었다. 말은 두서가 없었지만 임종의 모습은 어느 정도 눈앞에 그려졌다. 온몸의 기력이 소진된 상태의 몸은 마지막의 순간에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심장이 멈췄다. 영혼이 빠져나간 신체는 힘없이 늘어졌다가 이내 굳어갔다.


병원에서도 치료할 방도가 없어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던 그였기에 부고를 들었을 때 놀라움보다는 언젠가 다가올 미래가 지금이 된 거구나 싶었다.


감정에 복받쳐 하염없이 울먹이는 어머니와 대조적으로 나는 점점 차분해졌다. 순간적으로 여기서 볼 일을 마치고 본가인 청주로 빨리 갈 수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아무리 볼일을 빨리 마쳐도 한 시간은 걸리고 청주까지는 두 시간이 걸린다. 도착은 아마 새벽 한 시쯤 될 것이다. 죽은 뒤의 후속 절차를 위해 미리 알아둔 병원과 장례식장에 연락을 했다. 이미 임종을 임종을 앞두고 있었고 급사를 한 것도 아니기에 시신을 인계하는 건 내일 아침으로 했다. 그에게 남은 혈연은 더 이상 없어 장례는 우리끼리 진행해야 했다.


심야 운전이라 출발 전에 커피 한 잔 사갈까 했다. 드라이브 스루가 가능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전부 문을 닫은 시각이라 어디 괜찮은데 없나 둘러보다가 골목길에 작은 카페의 간판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다. 이태리 커피라고 적힌 그곳은 특이하게도 에스프레소가 아닌 이탈리아 가정집에서 주로 마시는 비알레띠 모카포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테이블은 세 개밖에 없었고 가게 주인은 영업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건지 주문대 뒤쪽에서 등받이 의자에 기댄 채 음악을 듣다 내가 들어서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음악은 무슨 클래식인 것 같았는데 모르는 곡이었다. 메뉴를 짧게 훑은 후 '이태리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가능하면 좀 진하게 타줄 수 없느냐 부탁했는데 가게 사장은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흘려들은 건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커피 포트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두고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이 여유로워서 살짝 조급한 상태인 나로서는 조금 거슬렸다. 뭐지? 이태리 휴양지의 여유로움 같은 게 몸에 배었다고 하고 싶은 건가? 그래봤자 한적한 골목의 테이블 3개 짜리 카페 주인 주제에. 부당한 악의를 소리 없이 상대에게 품었다. 커피가 포트 위로 올라왔을 즈음에 커피향이 카페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는 얼음에 채운 테이크 아웃 잔에 넣어서 줬다. 홀더에는 콜로세움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커피를 받아들고 카페를 나왔다.


네비를 찍은 뒤 출발했다. 운전할 때면 언제나 긴장하게 되는 강변 북로를 빠져나오자 하염 없이 고속도로를 탈 일만 남았다.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이면서 그에 대해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인상에 남은 건 일주일 전. 병상에 누워 아무 기력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말없이 시선은 천장을 향해 있었다. 그의 몸이 안 좋아진 건 작년 말부터 였다. 그의 여동생이 작년 봄에 죽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그는 마치 한 몸처럼 그녀를 옆에서 정성껏 간호했다. 언제나 떨어지지 않고 옆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날, 그는 여전히 그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말이다. 눈앞의 현실을 직시했고 천천히 인정하는 듯 했다. 단순한 반쪽 이상이었던 그녀의 존재가 그의 옆에서 사라졌을 때 그에게서 생기 비슷한 게 사라졌다. 나는 얼마 안 가 그도 그녀를 따라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묵묵히 삶을 살아갔다. 얼마 전 헤어진 나의 전 애인은 누군가를 유독 자세히 관찰하고 말해주는 습관 있었는데 그를 보고는 담담해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한 뿌리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런가보다 싶었다. 하지만 두 개의 계절이 지났을 무렵 그는 쓰러졌고 다시 기운을 차리지 못 했다.


정확히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본가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 침대 뒤에 조용히 잠든 듯 누워 있는 듯한 그와 이미 다 울었는지 의외로 담담한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내일을 위해서라도 방에 들어가 주무시라고 한 뒤 잘 준비를 했다. 자기 전 그의 방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그의 모습을 봤다. 여름이었고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장마 탓에 에어컨 제습 기능과 선풍기를 동시에 틀어놨다. 선풍기의 윙윙 거리는 소리만이 가득찬 방에서 그는 정말이지 잠든 듯 누워 있었다. 언제나 담담한 모습이 가득했던 그의 생애가 축약된 모습이 거기에 담긴 것 같았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에 살기 시작한 그는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분명 가족 같은 관계였다. 어린 시절엔 무척 활달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고 생각을 하기 전에 몸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는 나와도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를 우리 집에 놔둔 채 집을 나간 친모와 닮아 형제 중에 유독 눈에 띌 정도로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 햇살이 가득한 날에는 베란다 앞에 누워 낮잠을 같이 자곤 했다. 성격은 본래 순한 편이라 화를 내는 법은 없었다. 그러다 아주 가끔씩 화를 낼 때가 있는데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형태의 화였다.


그는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여동생이 있었다. 이란성이라 생김새는 달랐고 몸집도 작은 편이었다. 그녀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호불호가 분명했다. 그녀의 호는 그였고 불호는 나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를 극도로 싫어했고 그와는 항상 붙어 있었다. 그는 우리 사이를 중재해보려 하다가 결국 그녀 옆에 있는 걸 택했다. 나 역시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냥 내가 싫은가 보구나 싶었고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둘은 언제나 붙어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삶의 팔 할 이상 아니었을까? 그건 마치 예전에 플라톤의 책에서 본 사랑의 원리 같이 원래는 한 몸이었다가 둘로 갈라진 것처럼 떨어져 있어도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기 위해 붙어 있는 듯 했다.

성인이 된 뒤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고 그와 여동생은 본가에 그대로 남았다. 나는 언제나 독립을 꿈꿨기에 막상 집을 나온 뒤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만 갔고 그때 조금씩 보는 정도였다. 그렇게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와 인상 깊은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피러 잠시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도 같이 나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 대만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때까지 그가 담배를 피는 줄도 몰랐다.


"담배를 폈었나?"

"응, 근데 진작에 끊었어. 담배 냄새를 싫어했으니까. 나도 굳이 싫어하는 걸 하고 싶지 않았고. 끊은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지금 한 대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는 속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고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서글퍼 보이는 미소였다.


"글쎄, 걔 성격이면 죽어서도 뭐라고 할 거 같은데."

"그럴까? 하긴 거기다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형옆에 있으니 말야. 만약 왜 피웠냐고 뭐라고 하면 형이 억지로 피우게 했다고 하지 뭐. 어차피 초롬이는 더 싫어할 수 없을 정도로 형을 싫어했으니까."


그는 가끔 포인트가 뭔지 모르겠는 헛헛한 농담을 내뱉을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게 뭐가 웃겼는지 장례식장에서 불경할 정도로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게 웃었다. 그 역시 같이 웃었다.


"네, 전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걔가 날 용서해주려나?"

"그래 봤자 초롬이는 형을 싫어할 걸? 걔는 좋든 나쁘든 끝까지 갔던 애였으니까."

"그러게, 나를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몰라."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지. 둘은 너무 달랐거든. 형이 갖고 있는 무신경함이 그녀는 견딜 수 없었나봐. 나는 그게 형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이야."

그렇게 쓴웃음이 담긴 농담을 주고 받으며 담배 연기를 하늘에 올렸다. 마치 향을 피우 듯이 말이다. 우리는 그대로 두 개피를 더 피웠다. 그는 그 이후 다시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매일매일이 금방 흐릿해지는 일상 속에서 그 날의 기억은 꽤 선명하게 남았다.


과거의 기억에서 돌아온 눈앞의 현실에는 누워있는 그를 향해 쉼없이 돌아가는 선풍기의 윙윙거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비는 어느새 그쳤다. 내 방은 진작에 창고로 되버린지 오래라 나는 어디서 잘까 하다가 그의 침대 옆에 이불을 깔고 자기로 했다. 자기 전 폰으로 <4차원의 미치광이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선풍기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영화 소리가 덮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찾아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4차원의 미치광이들>이란 70년대 코미디 영화를 나에게 추천해준 적 있었다. 영화는 슬랩스틱이 섞여있는 옛날식 코미디였다. 옛날 영화치고는 생각보다 촌스럽지 않아서 꽤 몰입해서 봤다. 불경하게도 시체 옆에서 웃기까지 했다. 만일 그가 살아 있을 때 영화를 본 뒤 감상을 말했으면 서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좀 더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거기에 대답을 해 줄 그는 그저 담담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 한 시간 정도 영화를 보다가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밖으로 나와 그의 몸이 담긴 적당한 크기의 박스를 자동차 뒷 자석에 고정시켜 놓은 뒤 올려다 본 하늘 속에서 오랜만에 푸른 빛깔을 보았다.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이제서야 여름이 시작되려나 싶었다. 식장으로 출발하기 전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연기는 천천히 사그러지듯 하늘 위로 올라갔다.


<The Night Before The Funeral by The Mary Onette>


20160901_081019.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같은 노래를 다른 곳에서 들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