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2012년이다. 나는 군 복무 중이었고, 상병을 단 뒤에는 일과가 끝나면 구보를 뛰고, 취침 시간에 혼자 연등실에서 책을 읽는 게 내 일상이었다.
무얼 하든 사회에 있을 때보다 다섯 배쯤 재밌는 그곳에서 나는 달리기와 독서에 빠졌다. 군에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 조금 더 나아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1년 정도 달리고 짬밥을 덜 먹는 생활을 하니 10킬로가 빠졌다. 군 전역 직후 내 몸은 아마도 인생에서 제일 낮은 체지방율을 기록했을 거라 생각한다.
달리기를 시작한 게 먼저였는 지, 이 책을 읽은 게 먼저였는 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 시작한 달리기는 10년간 나의 취미가 되었다. 지금은 '러닝'과 '러너'라는 말로 좀 더 트렌디해졌지만 그때의 나는 '러너'보다는 '막 달리는 사람'에 가까웠다. 준비 운동 없이 반바지와 운동화만 있으면 어디든 달렸기 때문이다. 달릴 때 몸의 근육이 풀리는 게 좋아서 다리를 위로 내지르며 달렸다.
뛰다가 걸으면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뜀박질을 시작할 때 생각한 거리-운동장 10바퀴나 혹은 5km-를 목표로 잡고 매일 완주를 목표로 했다. 달리기는 내면의 건강에도 도움을 주었다. 대학 시절 짝사랑 앞에 한없이 찌질한 나의 모습에 좌절하며 한강 공원을 달렸고, 나의 첫 픽션인 자소서를 보낸 뒤 불합격이라는 답변을 받을 때도 달렸다. 면접을 보거나 하는 중요한 날에는 어깨의 힘을 빼는 게 필요했는데 가기 전에 가볍게 달리는 게 도움이 되었다.
스물다섯의 나는 여의도 한강 공원을 달렸고, 스물여덟의 나는 중랑천을 달렸고, 서른 둘의 나는 단대 호수를 달렸다. 그 시절 내가 살던 곳 근처에는 러닝 코스가 있었다. 지금 사는 하남미사도 바로 옆에 미사호수공원, 조금 더 가면 마라톤 대회도 하는 미사경정공원이 있다.
여행을 갈 때는 러닝화를 챙기는 게 습관이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기 위해라는 핑계로 다 같이 여행을 가도 저녁 전에 달렸다. 차보다는 느리게, 산책할 때보다는 빠르게 변하는 여행지의 풍경 속으로 다리를 내질렀다.
10년의 달리기 끝에 남은 건 10% 초반의 체지방과 망가진 무릎이었다. 운동 전 스트레칭을 게을리한 건 지, 자세가 나쁜 건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몰라도 오른쪽 바깥 무릎이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는 미세한 통증이라 며칠 쉬면 괜찮았지만 나중에는 물리치료, 도수치료, 주사치료 돌아가면서 받아도 차도가 나아지지 않았다. 심할 때는 걷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라 휴가를 내고 진통제 주사를 맞을 정도였다. 달렸을 때 몸의 상쾌함보다 무릎의 통증이 더 크게 남았다. 그렇게 10년의 달리기 끝에 나는 멈췄다.
달리기를 멈춘 지 5년이 지난 지금 무릎은 여전히 아프다. 무슨 원인인지 몰라 다시 달릴 때는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고, 무릎에 부담이 덜 가도록 자세도 신경 쓴다. 서른을 훌쩍 넘은 나는 이제 달릴 때 무릎을 위로 내지르지 않고 호흡과 몸의 상태를 체크하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간다. '슬로 조깅'이라는 말은 나에게 패배감 대신 합리화 할 수 있는 근거를 주었다. 지난 설 연휴에 유난히 날씨가 좋아 5킬로를 뛰다가 걷고, 다시 뛰었다. 10년 전에는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암밴드를 팔에 맨 채로 유선 이어폰을 들으며 달렸지만 지금은 폰은 집에 두고 스마트 워치를 차고 에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미사호수공원을 달린다. 오늘의 BGM은 'Red Hot chilli peppers'의 <by the way>. 5킬로를 채운 뒤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집에 들어왔다.
하루키는 책에서 걷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제 힘들면 걷는다. 대신 책에서 쓰인대로 즐거운 순간에 끊고, 다음 러닝을 이어간다. 10년을 뛰고 5년을 쉬었다. 뛰다가 걸어도 된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꾸준히 달려볼까 한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