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동양 철학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맹자의 순자가 이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이념적인 대립을 하였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다.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춘추 전국 시대의 중국에서 이런 지옥과 같은 민초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접근법을 찾는 과정에서 규율과 관리를 주장한 순자와 도덕과 인간의 선한 본성을 강화하는 교육에서 방법을 찾는 과정이 맹자와 순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에 서양에서도 관심을 가져왔는데 계몽주의 시대에 활동한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주창한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 상태의 고대 인간의 사회의 모습과 로크가 주장한 모두가 공유하고 공평한 사회를 유지했던 사회에 문명과 문화, 그리고 권력의 개입이 일어 나면서 인류의 불평등이 시작되었다는 사상의 대립은 서구 사회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와 교육에 대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굉장한 영향을 미쳐왔다.
이런 사상의 발전의 방향에 있어서 특히 홉스의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의 사상은 제 1차 세계 대전을 시작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 대한 연구가 인류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지식의 기반이 되어 왔고, 이는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상호간의 체제 수호를 위한, 특히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한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개념과 결합하면서 절대 불변의 진리와 같이 믿어져 왔다. 그런 가운데 2019년 다보스 포럼에서의 발표를 통해 명연설가로 등극한 네델란드의 젊은 저널리스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를 통해 공멸과 연대의 기로에 선 인류에게 "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기적인가?"라고 질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천성적으로 선한 존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선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선한 / 착한 존재라는 의미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협동과 접촉/ 소통에 더욱 관심이 많다는 것으로 정희 한다. 비행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하여 고립된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야만적이고 규칙이 없는 삶으로 변모해가는 이야기를 그렸던 윌링머 골딩의 “파리대왕” – 개인적으로 책으로 못보고 영화 원작과 리메이크 작품으로로만 보았다 –에 대한 실제 사례의 탐사로 시작하여 2차 세계 대전 이후 조사된 보고서에서 적군을 향해 사격을 하지 못하는 병사들에 대한 이야기 (통계적으로 사격을 통해 사실된 병사의 수는 전쟁 중 사망 또는 부상자의 수에 미미하다는 통계를 장교 시절 교육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문명의 탄생과 그에 따른 차별과 폭력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모아온 다양한 이야기와 사료들 그리고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전달되며, 인간 본성이 폭력적인 침팬치 보다 보노보 (피그미 침팬지로 불린다)에 오히려 비슷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나간다. 다른 한편으로 네안데르타르인과 호모 사피엔스간의 경쟁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승리 할 수 있었던 원인도 사피엔스가 보다 군집적인 동물이고, 접촉과 큰 무리를 지어 상호 협조하는 형태였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준다.
이후 저자는 상당히 논란이 될 수 있는 다른 연구자들의 사례와 연구들을 공겨하면서 그들의 연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비교적 자세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부정해내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거의 모든 사회 심리학 책과 협상책에서 인용되었던 스텐리 밀그램의 “전기 고문 유도 실험” (2000년대에 엘라이 로스 감독과 함께 영국의 BBC가 이 실험을 제현하였고, 결과가 동일하거나 오히려 더 높아졌다는 사실을 증명해내기도 했다.”)부터 <루시퍼 이펙트>라는 책을 통해 2000년대 초반 베스트 셀러 작가에 올랐고, 1971년 실행되어 논란을 일으켰던 스탠포드 대학 감옥 실험, 로버스 동물원에서 진행되었던 경쟁하는 그룹간의 폭력성 실험, 키티 제노비스의 살인 사건을 통해 제기되었던 <방관자 이론>과 같이 한동안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지금도 수 없이 많은 심리학 책과 경영/ 사회학 책에서 다루어지는 실험들에 대해 해당 실험들이 정말로 인간의 사악한 본연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인지를 검증해 나간다. 과연 이스터섬의 사람들을 모아이를 만들고자 하는 망상에 빠려 섬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문명을 스스로 파괴했는가?라는 질문 역시 흥미롭게 읽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일까? 이스터섬의 전쟁과 학살에 대한 직간접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고, 스탠포드 대학 감옥 실험가 로버스 동물원에서 일어난 일들은 실험을 진행하는 진행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결과가 외곡 되었으며,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은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권위에 굴복하였다가 보다, 해당 연구와 자신이 행하는 행동이 차후 좋은 결과에 사용될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인간이 원시 시대 형태의 사회에 살고 있다면 자만과 겸손을 미덕으로 삼고, 남들과 항상 공동체 생황을 하는것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 역시 도출되어 진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이 사악하다고 믿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역사를 통해 인간이 정착과 계급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제와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렇게 놓고 사회를 보고 사회의 움직임을 보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끊임없이 반목하고 질시하고, 대립하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넘쳐나는 정보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고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대중과 떨어진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계파에 파묻혀 대립하고 상대방을 공격 할 수 있는 프레임 만들기에 여념이 없으며, 반대하는 쪽은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말을 통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대결 구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여기에 점차 커져만 가는 부자와 보통 사람들간의 소득의 격차와 삶의 질의 문제는 세상이 불 공평하다는 생각과 함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부자들의 탈세 및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감까지 가지고 온다.
저자는 이런 모든 문제들이 결국은 인간이 인간간의 접촉의 횟수를 늘리고 진정한 민주주의 – 즉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를 통해서 어느정도의 선까지 해결이 가능하며, 이미 퇴색하고 실패한 거대한 사회적 실험으로 불리는 공산주의 역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의 환경에서 다시금 조명 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공유 경제라는 새로운 경제의 모델 속에서 진정한 공유의 개념이 공산주의의 시발점임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공유를 통하여 인간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세상의 모습에 대해 여러 실험적인 사회 구조적인 개혁들에 대하여 설명한다.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방대한 자료 조사와 그의 조사를 도와준 수 없이 많은 연구자들, 그리고 그들의 결과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사 받지 못해 왔던 현실들을 마주하며 과연 다가오는 새 시대에 인간이 과연 협력과 협조를 통해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대한 어느정도 긍정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