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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딩 Oct 20. 2021

아마추어 피아노 콩쿨에 도전하다

사회초년생의 피아노콩쿨 도전기

'빛이 시작하기 전의 어둠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중학교 때 예고 입시를 그만둔 이후로 취미로 혼자 피아노를 치다가, 근 십 년이 지나서야 여유가 생겨 레슨을 받았다. 그렇게 십 년 만에 새로 배운 곡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그 곡을 배우면서 선생님이 하신 저 멘트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테크닉적으로는 까다로운 게 없어서 무난하게 지나갔지만 저런 말을 들으며 '노래'한다는 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잠깐 피아노를 배운 것 외엔 특별한 것 없는 자연대 4년제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저런 상상력을 발휘해 특정한 아웃풋을 냈던 저 경험은 23살의 내가 혼자 11개국의 유럽을 여행했던 것과 맞먹는 시야의 넓어짐이었다.


 때마침 포아에서 주최하는 아마추어 피아노 콩쿠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제일 애매한, 초보도 아니고 프로도 아닌 실력에 그 세계에 잠깐이라도 발을 담가보았기에 두려움만 가득한 채 고민만 하다 몇 개월을 흘려보냈다. 결국엔 잃을게 뭐가 있냐는 지인의 말에 자연스레 대회에 나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학원을 등록했다.

의욕과다인 것처럼 책을 한가득 들고 와선 아무런 의사도 내비치지 않았던 그때의 아이러니함이란

그냥 다 좋아

첫 수업에 대회에 나갈 곡을 선생님과 고르기로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악보 책을 다 가지고 갔다

'지금 무거운 걸 따질쏘냐, 내 인생의 곡이 될지도 모르는데'


아예 모르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내 의견을 표출하기가 괜히 꺼려져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선생님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기로 했다. 곡을 고를 때 내 의사가 반영될 포인트는 한 가지였다. 

내 수준의 20% 정도만 더 도전적인 곡을 고르자,였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달리 선생님은 최대한 내 의사와 성향을 반영해주려고 하셨고 그 와중에 내가 너무 주관 없이 다 좋다고 하다 보니 곡을 정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테크니컬 한 거 좋아하세요 아니면 조금 더 서정적인 느낌이 좋으세요?'

'다 좋아요, 그냥 골라주세요'


'베토벤 느낌이 좋으세요 아니면 모차르트 느낌을 더 좋아하세요?'

'둘 다 좋아해서 못 고르겠는데요'


이 부분에서 확실히 나는 더 이상 입시 피아노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입시 피아노는 생업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에 내 의사보다는 선생님의 의견에 맞춰져 있어 지금까지 내 의견을 반영할 일이 거의 없었던 것이었다. 거기다 '대회'라는 타이틀이 붙으니 입시 느낌으로 몰아붙이려고 했으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 더 나의 취향에 더 집중해도 되겠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대회긴 하지만 어차피 아마추어인건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태도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거기다 정말로 다 좋아서 못 고르는 것도 조금 포함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에 나의 대회 곡은 정해지지 못했고 일단 내가 배워보고 싶었던 곡을 먼저 쳐가면서 천천히 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된 두 곡은, 


1. 베토벤 '템페스트'

방향성은 베토벤으로 가기로 했어서 그중에서 가장 배우고 싶던 템페스트 1악장을 레슨 받기로 했다. 원래도 칠 수 있는 곡이기 때문에 테크닉적으로는 문제 될 것이 많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노래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결정했다. 그러나 노래하는 법을 배우면 테크닉적으로도 많이 바뀔 것 같긴 하다.


2. 쇼팽 에튀드 '혁명'

'흑건'이후로 새로운 에튀드를 배우고 싶은 욕심이 늘 있어서 내 수준에서 조금이라도 쉽게 칠 수 있는 곡인 '혁명'을 추천해 주셨다. 오랜만에 새로운 곡이라니, 아직 흑건이 내 것인 느낌이 안 들어서 더 배울까 아니면 새로운 곡을 배울까 많이 고민했었는데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서 과감하게 새로운 곡을 택했다. 이 곡은 정말 테크닉, 또 테크닉이 우선적이기 때문에 레슨보다는 혼자서 많이 쳐봐야 할 것 같다.


 새로운 곡을 배우는 게 그렇게 오래 고민할 일이 된 내 상황이 조금 서글펐다. 나는 정말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데, 왜 내가 칠 곡 조차 제대로 고르지 못할까. 물론 내가 정말 다 좋아해서 고르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제도적인 것에 갇혀 외부의 기준에 맞추려고만 하고 내 성향에 대해서 알아가거나 그것을 드러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내 배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라도 내 의사반영의 필요성을 느꼈으니 다행이라고도 느꼈다. 아마 이번 레슨은 목표가 있으니 전에 배운것과는 또 다른 배움이 있을거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다음 레슨이 기다려진다. 나는 또 어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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