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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코크 Jul 16. 2020

아둥바둥 흙수저 탈출기 (2)

두번째 자격지심, 영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20살 때, 대한민국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열풍이 불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는 국내에 번역 출간 되자 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나 또한 수능 이후 빨간색 표지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20살이 되기 전부터 재테크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복무했던 군에서는 상병 때까지는 책을 쉽게 읽기 힘들었고 병장이 되어서야 책을 편하게 읽게 되었는데, 군 제대를 몇 달 앞두고 <세이노의 부자아빠의 진실 게임>이라는 책을 읽게 된다.

  



동아일보 이건 기자가 세이노라는 필명을 가진 자수성가한 부자를 인터뷰 한 책이었는데, 세이노라는 사람이 너무 궁금해졌고, 말년 휴가 중, 다음카페 '세이노의 가르침'에 가입을 한다. 그 카페에서는 자수성가를 한 '세이노' 선생님이 여러 주제에 대해 글을 썼었는데 주로 돈, 사업, 재테크, 영업, 교육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었던 20대 초반의 청년에게 '세이노' 선생님은 내가 온라인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부자였기에 그의 칼럼을 모두 읽고 또 읽었다.

세이노 선생님의 칼럼을 열심히 읽은 덕분에 훗날 공부와 직장생활 그리고 재테크를 하는데 있어서 마인드 셋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단 한번도 그 분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살아가며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마다 메일을 보내 조언을 구했고 지금까지 그 분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라 생각하고 세이노 선생님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참고로, 해당 카페의 관리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지금은 카페 관리가 되고 있지 않으나 세이노 선생님의 글은 아직도 그대로 읽을 수 있고 누군가가 안드로이드 앱으로 개발을 해놔서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에서 "세이노의 가르침"으로 검색)




발사이즈 토익점수


세이노 선생님과 책으로 첫 만남의 여운을 간직한 채 복학을 하였다.


복학 직후 학과에서는 단체로 모의 토익 시험을 보았는데 난 성적표를 받아들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토익은 990점 만점짜리 4지 선다형 시험이니 찍어도 250점은 나올 텐데 내 점수는 250을 겨우 넘기고, 내 발 사이즈를 갓 넘긴 점수였다. (200점대였다는 말이다.)  


지방 사립대에서도 그 정도 점수면 최하 등급이었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영어점수로 시작되었지만 복학생 마인드로 공부는 열심히 했다.

그러나 수능영어 40점에 토익 발 사이즈 점수를 받던 실력이 하루아침에 좋아질 리 있겠는가? 2학년부터 시작된 영어 원서 수업은 그야 말로 고역이었는데 일주일 내내 단어를 미리 찾고 뜻을 적어놔서 해석을 하지 못하는 기 현상이 일어났다.  


하루는 마케팅 원서 수업 중 교수님이 나를 지목하며 어떤 문장을 해석을 시켰다.

더듬더듬 한 문장도 해석을 제대로 못하자 교수님은 "OO아, 영어 공부 좀 하자"라고 한마디 하셨고 뒷자리에 앉았던 친구 녀석은 "니 영어공부 좀 해야겠다"라며 추임새를 넣어댔다.


20살의 락페스티벌 때 충격에 비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쪽 팔림이었다.


영어공부의 시작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득했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영어 원서에 열심히 사전찾아서 뜻을 옮겨봤자 해석도 되지 않았다.


일년 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갈 계획을 세우고 영어회화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리 저리 수소문 끝에 사설 원어민 영어수업을 하는 곳을 찾아가게 되었다. 간판도 없는 한 오피스텔에서 진행 된 아일랜드 출신의 원어민과 처음 만난 4명의 수강생들과 함께한 영어 수업.


첫 시간은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모두들 왕 초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하이, 마이 네임 이즈 철수," 정도는 할 수 있는 듯 했다. 드디어 내 차례...

Hi, My name is ....까지는 했는데 다음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보다못한 원어민 강사가 묻는다 "두 유 해브 잉글리쉬 네임? (너 영어이름 있니?)"

무슨 말인 줄 못 알아 들었지만 "네임Name"은 알아듣고 "No노!"라고 대답했더니 뭐라고 말한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왓 어바웃 제이What about Jay('제이'가 어때)?"라고 묻는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다른 수강생 3명도 모두 날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차마 "이게 무슨 말이에요?" 라고 물을 수가 없었다.


못알아 듣는다고 말하자니 쪽팔려서 그냥 "예스Yes!"라고 해버렸다. 그 다음부터 내 이름은 "Jay 제이"가 되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이름이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공부는 1학기, 여름방학, 2학기 내내 계속 되었고 여름방학이 끝날 때까지 영어 실력이 느는 것은 전혀 못 느꼈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었으나 토익수업, 회화수업 등 닥치는 대로 영어 수업을 들으며 공부 했다. 그 와중에 틈틈이 알바와 운동을 했었기에 여름방학 기간 내내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정도였다.


열심히 공부해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아 답답했다.  그래도 영어공부를 한지 10개월쯤 되던 그 해 겨울, 수업 중 가까워진  캐나다인 강사와 종강기념 맥주 파티를 했고 그제서야 '내가 외국인랑 맥주도 다 마셔보는 구나'라고 내심 뿌듯해졌다.


이후 계획한대로 필리핀 어학연수 3개월 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고 호주에서는 철저히 혼자 다닌 덕에 영어 실력을 많이 늘릴 수 있었다.


호주에 가면서 챙겨간 영어 원서 <Tuesday with Morrie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내가 처음으로 완독한 영어 원서가 되었고 원서 완독의 경험은 이후 영어공부에 큰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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