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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코크 Apr 09. 2021

아둥바둥 흙수저 탈출기 (4) - 20대 방황을 끝내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나라에 가는게 아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사람이 살면서 돈을 벌 기회는 3번이 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당신은 그 기회를 잡지 못했으니 나보고 그 기회가 오면 잡으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4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멍에가 답답하게 느껴지셨을 것 같다. 그러니 아들 넌 잘 먹고 잘 살도록 기회를 잡아보거라... 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



그 말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20대의 혈기 왕성한 기운 때문이었는지,

나의 20대 중반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영어를 배우겠다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서 외국인 노동자처럼 살다가, 필리핀에는 또 다른 기회가 있을까 싶어 국제학교에서 일을 해보기도 하고, 영어도 배웠으니 취업을 하자는 생각에 다시 공부를 하다가 아무래도 해외에 기회가 있겠다는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필리핀에 가서 생각지도 않던 식당 운영도 해보게 되었다. 누군가 제안을 하거나 기회를 주면 거절하지 않고 덤비다 보니 경험을 가장한 방황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식당 운영은 잘 되지 않았는데 난 이 참에 요리를 배워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에 한국에 돌아와서 목포의 한 일식당에서 일을 우기도 했다.


한 달에 두 번 쉬고 하루 12시간을 일해야 하는 일식당 일은 너무 힘들었고 몸도 많이 상했다. 어쩌다 회칼에 손가락을 베이는 날이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고급 일식당이다 보니 형편이 제법 넉넉한 손님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2~3년 동안 경험과 방황 사이를 오가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다시 필리핀에 돌아가서 식당을 하는 것이 맞을까?


몸이 힘드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고 고민 끝에 세이노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난 가진 것 없는 흙수저 출신이고 필리핀에서 이런 걸 하다 와서 지금 요리를 배우는 데 다시 필리핀에 가는 걸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의 취지로 메일을 보냈는데 세이노 선생님은 딱 한 줄의 답변을 주셨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나라에 가는 게 아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어쨌든 가지 말란 소리였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단 소식을 듣게 되어서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몇 년이 지나서야 세이노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기회를 찾으려면 자본을 가지고 사업을 일으켜야 하는데 가난한 자가 가난한 나라에 가봐야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기껏해야 한국인 사장 밑에서 허드렛일이나 할 테니 가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짐작을 한다. 아메리칸드림은 있어도 필리핀 드림은 없지 않은가?)



늦깎이 편입생이 되다


식당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깨닫고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공부를 하기로 했다.

다니던 학교는 지방 사립대. 늦었더라도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 편입 학원에 등록을 하면서 원래 다니던 대학은 자퇴를 해버렸다.


편입 시험을 치기엔 시간이 좀 부족했지만 운이 좋겠도 1차 편입 영어 시험에 몇 군데 합격을 했으나 면접은 다 망쳐 버렸고 1군데에 겨우 합격을 해서 수도권 모 처에서 제2의 캠퍼스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미 나이는 27살,

신입사원이 되었어야 할 나이에 난 다시 대학 3학년 편입생이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서울 생활은 너무 새로웠다. (정확히 하자면 행정구역 상 경기도지만, 편의상 서울 생활이라고 하겠다)


 


초라한 중고 자전거


편입 후 생활은 나의 첫 서울 문물을 경험하게 된 생활이었기에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찌질하기도 했다.


그중 기억나는 것이 바로 등교길 자전거 사건.


같은 편입 동기생에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고 같은 지역 출신으로 친해진 M과는 많은 추억을 쌓았는데 우리는 중고 자전거를 한 대씩 구입해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가곤 했다. 자취방에서 학교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 돈도 아깝고 운동도 되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의동에 다 와 가는데 검은색 벤츠 우리 옆에서 멈추더니 짙게 선팅된 창문을 열고 같은 과 친구가 우릴 불렀다.


"형!"


우리 과 과 대표였는데 벤츠를 타는 줄은 몰랐는데 그때 갑자기 우리의 중고 자전거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고 그 친구는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벤츠 사건 이후로 자전거가 꼴도 보기 싫었지만 그래도 잘 타고 다녔고 그때 같이 쪽팔림을 나눴던 친구 M은 훗날 주식투자로 돈을 제법 벌었고 이제 멋들어진 수입차를 타고 다닌다. ㅎㅎㅎ


(5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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