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의 맞벌이 가정의 남편이자, 서울 사는 부산 남자인 나는 원래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작년에도 예고편 조차 보지 않았고 그저 페미스러운 영화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가 해를 넘겨 우연히... 쉬이 잠들지 못한 금요일 밤에 홀로 이 영화를 봤다.
나의 아내는 서울 여자이고, 맞벌이 엄마로서 늘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매일 아침 아이를 깨우는 힘겨운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나의 어머니는 극 중 부산 시어머니처럼 꽉 막힌 분도 아니고, 나의 아내도 빙의를 하는 정신적인 질병은 없었다만 어디 육아를 하면서 갈등을 가져보지 못한 부부가 있으랴?
영화를 보는 내내, 출산휴가 3개월 만에 복직을 해야 했던 아내 생각이 많이 났다. 그 3개월 동안 홀로 집에서 아이를 볼 때 내 아내는 어땠을까?
출산 직후 우울증을 겪어 보지 못한 여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이를 낳고 남편은 출근하고 혼자서 말도 못 하는 아이와 집안에서 지지고 볶고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우울감이 밀려올 것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세수하고 양치질할 시간도 없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잘 때 입었던 늘어진 티셔츠를 그대로 입은 채 하루를 시작하는 그 마음.
화장을 하고 구두 신고 출근하고 선 동료들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실 시간에... 카페인 생각이 간절히 나는 피곤한 아침. 모유수유를 위해 커피 한잔 마저도 꾹 참고 풀곳 없는 스트레스를 헤아리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더 힘들지 않았을까? (그땐 이런 생각을 미처 못했던 것 같다. 아니 못했다.)
난 아내에게 늘, 직장생활 힘들면 그만둬라, 나 혼자 벌면 된다. 당신은 당신 하고 싶은 거 하고 실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최근까지도 그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내 얘기가 좀 무심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아내에겐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때로는 프로젝트를 잘 추진하여 상사에게 칭찬도 받고 때로는 동료들과 기분 좋게 한잔할 수 있고 때로는 승진의 기쁨도 누리는 그런 소속감을 주는 직장생활이 더 필요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 속의 김지영은 어릴 때 아들을 중시 여기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결혼을 한 남자의 가정도 그러한 것 같다. 남녀 불평등의 문제는 김지영을 계속해서 힘들게 한다.
김지영의 내면 아이의 상처는 성의 불평등으로 인한 희생인 것이다. 그로 인해 스스로도 모른 채 고통받고 힘들어하다가 서서히 극복해간다.
이 영화를 보다 보니 얼마 전 읽은 책 '오은영의 화해'가 떠올랐다. 아 책에서는 "매일 밤 나에게 용서하세요. 상처의 시작은 '나'때문이 아니었어요."라며 스스로와 먼저 화해하고 용서할 것을 권했는데 영화 속 김지영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평일 오전,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하서 공원에서 바람 쐬고 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를 본 직장인 무리는 불편한 험담을 한다.
'나도 저렇게 팔자 좋게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편하게 살고 싶다'라고...
영화 속 김지영은험담 하는 직장인 무리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자리를 피하지만, 나중에는 카페에서 맘충이라고 욕하는 새파란 직장인 남성에게 다가가 '날 아느냐? 나에게 맘충이라고 욕할 권리가 있느냐?라고 조근조근 따진다.
드디어 자신의 상처와 화해를 시작한 것 같다. 영화 속 착한 남편(공유)의 도움과 지지가 없었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르는 변화다.
그런데 현실 속 김지영은 어떨까?
아마도 현실에는 영화 속 남편(공유)처럼 착하거나 배려심 많은 남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본인의 상처와 우울감이 상처인지, 우울감인지 인지조차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과 설정은 다소 극단적이다. 이런 극단적 환경에 처한 사람은 많지 않아도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의 메시지를 이영화는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