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나는 초능력자니까]

새벽 공기는 늘 나를 움직인다

by 민돌새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새벽 감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새벽만 되면 경험도 한 적 없는 여러 가지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버섯처럼 퐁퐁 자라나, 나에게 어서 종이 위에 펼쳐보라고 가슴을 흔들었다.


가정통신문을 한 곳에 엮어 놓은 것 같은 갱지 노트는 거친 질감과 묘한 향이 중독성이 강했다.

당시 그림 그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 (그 향을 너무 좋아해 하루 종일 킁킁대는 친구도 있었다)


내게도 문구점에서 3천 원에 구매한 갱지 노트가 있었는데, 약 100장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두께가 일반 소설책 정도 되었다.

4살 터울인 언니가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을 좋아했던 터라, 그대로 보고 배워 노트에 자연스럽게 만화와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 시절에는 정말 매일같이 놀이터에서 놀았다. 동네 친구들 대여섯 명이 모여 얼음땡, 술래잡기와 같은 놀이를 많이 했다.

노을을 먹어 그림자가 길어지면, 놀이터에서 놀던 또래들이 하나둘씩 학원에 가버렸다.


그러면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너는 학원 안 가?"라고 묻는 악의 없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 집은 언니를 겨우 학원에 보내 줄 수 있는 형편이었고, 내게 학원을 가지 않는 친구는 두 살 어린 남동생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또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보니 주로 학교 수업 시간과(특히 수학 시간) 저녁 7시부터 새벽 1~4시가 나의 만화 연재 시간이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책상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종이를 가까이 보고 있노라면, 만화 주인공이 살고 있는 초가집 마당의 풀냄새가 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달빛을 받은 주인공의 머리카락이 어떻게 빛이 나는지 선명히 머릿속에서 보였다.




이상하게도 새벽에만 그랬다.


집중력은 무려 날이 밝아 새가 지저귀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혹시 초능력이 아닌가 이제 와서야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보다 못한 엄마가 새벽에 뭘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서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했다. 잠을 자야지 왜 밤을 새 가며 그리냐고 물어서 '너무 재미있어서 사실 밤새운 줄 몰랐다'라고 했다. 그래도 일찍 잠을 자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시길래, 그날 밤에는 엄마를 그렸다.


다음 날, 정성껏 그린 그림을 드렸다. 엄마가 많이 기뻐하셨다.

그 후로는 친구들의 생일이 되면 그림을 그려 선물하곤 했다.


친구들도 얼핏 엄마가 지었던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게 참 보람찼다.




지금도 본가에는 몇 권의 노트가 남아있다. 이제는 내용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해서 펼쳐보지 못하는 나의 만화들, 친구들이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해 주면 제일 먼저 보여주던 그림, 그 당시 인생작이라고 생각했던 그림까지 모두들 나와 약 20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몇 권은 대청소할 때 펴보았다가 창피함을 견디지 못하고 북북 찢어 버리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때의 새벽에 느꼈던 모든 감각들을 기억한다. 살아오며 느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감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몇 주 전, 미팅이 있어 클라이언트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사 디자인팀 민돌새입니다."




그렇게 그림을 좋아하던 나는 제품 디자이너가 되었다.


주구장창 만화만 그리던 내가 제품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단다.





신기한 것이 있다면, 디자인을 하면서도 어렸을 적의 '새벽 감성'은 남아있다는 것.


한 번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와 푹 빠지면 몇 시간이고 야근을 하고, 퇴근 후 재택근무로 밤을 지새웠다.

놀랍게도 나는 밤을 새우고 출근한 적이 꽤나 있다.



누군가는 야근 수당도 나오지 않는데 누구 좋으라고 일을 하냐는 말을 했다. 근로자가 수당 없이 일하지 말라. 더없이 동의하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좋았다. 누구 좋으라고 했냐면, 내가 좋으려고 그랬다.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해진 하늘이 더욱 깊은 심연의 빛을 띨 때,

그 시각을 조금 더 지나, 날이 밝아 오며 오묘한 빛을 띠자 일찍 일어난 몇몇 새들이 지저귀는 시각까지. 그때만 느낄 수 있는 묘한 공기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온전히 그것에 집중해야만 탄생하는 뽀송뽀송한 아이디어들.



그것들이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한다.




최근에는 그 감각에 절여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안에 파고들어 숨기도 하고, 맡고 맡다가 어지러워지기도 하고, 헤엄치다 휩쓸리기도 하면서.




아쉽게도 나의 현재라고 말할 수 있는 직장인의 삶이란 그 정도의 여유가 없을뿐더러, 다음 날 출근을 해야하는데 무언가에 집중해서 날을 꼴딱 새운다는 것은 우리 집 고양이가 두 발로 벌떡 일어나 프렌치토스트를 구워 먹는 일과 같다.



하지만 욕망은 쉽사리 잊히지가 않더라. 그래서 허덕이기 전에 결심을 해버렸다.

꾸준히 남아 나를 괴롭힐 욕망이라면, 하루빨리 해소해 버리자고.




머지않아 나는 '△△사 사원 민돌새'를 그만두고 '민돌새' 세 글자로 돌아간다.




마지막 출근길과 퇴근길이 어떤 느낌일지 잘 모르겠다. 마냥 후련하지도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아쉽지도 않을 것 같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뜻밖의 사건을 타고 더 좋은 방향으로 살아갈 기회일수도 있다. 그러나, 별 다른 계획 없이 욕망만으로 선택한 결과가 주는 역경 속에서 후회하며 눈물을 뚝뚝 흘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때의 내가 잘 헤쳐나가겠지.

사소한 것에 걱정도 많고 소심한 나지만, 직장을 다니다 보면 스스로를 믿는 구석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뭐,

나는 초능력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