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군단
성스러운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대온실의 유리 돔은, 이제 두 개의 왕국이 충돌하는 거대한 전장이 되었다. 한쪽은 억압된 분노와 뒤틀린 한(恨)으로 이루어진 죽음의 군단. 다른 한쪽은 그들의 존엄을 되찾고 안식을 주려는, 살아있는 땅의 의지였다. 공간의 물리 법칙이 무너지고, 순수한 의지와 원념이 맞부딪치는 소리 없는 전쟁터. 유리 돔 천장은 마치 거대한 캔버스처럼, 푸른 정기와 검붉은 한기가 뒤섞여 폭발하는 불꽃으로 가득 찼다.
“크르르르…!”
푸른 정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군(山君)이, 땅을 뒤흔드는 포효와 함께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그것은 단순한 영체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이 땅의 산맥이 품고 있는 수천 년의 무게와 인내가, 살아있는 분노가 되어 맹수들의 원혼을 향해 돌진했다. 가장 먼저 앞을 막아선 것은, 녹슨 철사줄에 갈기가 엉겨 붙은 아프리카 사자의 원혼이었다. 본래 백수의 왕이었을 존재는, 이제 저주의 꼭두각시가 되어 산군을 향해 증오 서린 이빨을 드러냈다.
두 왕의 격돌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산군의 푸른 발톱이 사자의 검붉은 한기를 찢어발겼고, 사자의 저주받은 이빨은 산의 순수한 정기를 더럽히려 파고들었다. 충돌의 여파로 대온실 바닥의 흙이 패이고, 열대 식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썩어 문드러졌다. 서화는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 산군과 연결된 그녀의 정신으로, 땅의 아픔과 맹수의 슬픔이 동시에 흘러들어와 영혼을 쥐어짰다.
“지금입니다!”
서화의 외침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었다. 그녀는 산군과 정신을 연결하여, 혼돈의 전장 속에서 적들의 가장 약한 고리를 읽어내고 있었다.
“장서린 박사님!”
“읽고 있어요! 시베리아 호랑이, 7시 방향! 약점은 목덜미, 쇠창살의 낙인! 저주 에너지의 80%가 그곳에 집중되어 있어요!”
장서린의 태블릿은 혼돈의 전장 속에서, 각 원혼의 ‘기록’이 가장 고통스럽게 응축된 부위를 붉은 점으로 정확히 표시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과학은, 이제 영적인 세계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가장 날카로운 메스가 되어 있었다.
탕-!
최민준의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경면주사를 바른 총알은, 붉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정확히 호랑이 원혼의 목덜미에 박힌 보이지 않는 낙인을 꿰뚫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격이 아니었다. 한평생 약자를 위해 총을 잡아온 형사의 신념이 담긴, 악업을 끊어내는 심판의 일격이었다.
“크아아아…!”
호랑이의 비명은, 고통이 아닌 해방의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그를 속박하던 쇠창살의 기록이 끊어지는 순간, 원혼의 몸을 휘감던 검붉은 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잠시나마, 원혼은 생전의 위엄 있는 시베리아의 제왕으로 돌아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듯했다. 그리고는 한 줌의 빛이 되어 고요히 흩어졌다.
하지만 전세는 쉽게 기울지 않았다. 뼈를 두른 남자, 스스로를 짐승들의 왕이라 칭하는 자는 미친 듯이 뼈 피리를 불어댔다. 그의 음률에 따라, 원혼들은 더욱 교활하고 잔인하게 움직였다. 늑대들은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 산군의 뒤를 노렸고, 거대한 악어의 원혼은 피의 연못 속으로 잠수하여 장서린의 발밑을 노렸다.
“어리석은 것들! 너희가 이해하는가! 이 아이들이 겪은 고통을! 너희 인간들이 가한 배신을! 저들의 고향을 빼앗고, 자유를 빼앗고, 마지막에는 존엄마저 빼앗은 것이 바로 너희 인간들이다!”
남자가 광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이 아이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증오라는 이름의 순수한 힘을 주어, 너희 오만한 인간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너희가 행하는 것은 해방이 아니다! 그들의 마지막 분노마저 빼앗는, 두 번째 죽음일 뿐이다!”
그의 외침에, 원혼들의 분노가 더욱 거세졌다. 그 순간, 전장의 중심을 가르는 거대한 황금빛 섬광이 터져 나왔다.
한지운이었다.
그는 더 이상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몸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혹은 한 줄기 바람처럼, 분노하는 영혼들 사이를 유영했다. 그의 손에 들린 사인검은 적을 ‘베는’ 것이 아니었다. 검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원혼들의 ‘기록’이 그의 눈에 폭포수처럼 흘러들어왔다.
아프리카의 뜨거운 초원을 무리와 함께 달리던 기억.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홀로 사냥하던 고독한 기억. 밀림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자부심의 기억. 그리고… 좁은 우리에 갇혀, 고향의 냄새를 그리워하다 병들어 죽어가던 마지막 순간의 처절한 기록까지.
“내가… 기억하겠다.”
지운의 목소리는, 그들의 영혼에 직접 울리는 진혼곡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왕의 위엄과 기록자의 연민이 함께 담겨 있었다.
“너희의 삶을, 너희의 존엄을. 그리고 너희의 슬픔을. 이 땅의 기록자로서, 내가 모두 기억하겠다.”
그의 검 끝이, 미친 듯이 날뛰던 하이에나의 원혼에 닿았다. 그 순간, 하이에나의 붉은 안광이 사라지고, 그 눈에 생전의 슬픈 눈동자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고요히, 빛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왕이, 자신의 상처 입은 백성들을 하나하나 위로하고 잠재우는, 장엄하고 슬픈 의식이었다.
“안 돼… 나의 아이들이… 나의 군대가…! 나의 복수가!”
뼈를 두른 남자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군대는 지운의 진혼곡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증오의 왕국이, 왕의 진정한 위로 앞에서 힘을 잃고 있었다.
마침내, 전장에는 산산이 부서진 뼈 탑과, 피의 연못,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몇몇 원혼들뿐이었다. 서화가 부른 산군은 힘이 다한 듯 모습이 희미해졌고, 최민준과 장서린도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서 있었다.
“이대로… 끝나게 둘 수는 없다…. 나의 왕국이… 이렇게….”
남자는 결심한 듯, 자신의 가슴을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손톱으로 깊게 찢었다. 검붉다 못해 썩은 냄새가 나는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그 피를, 손에 든 뼈 피리에 흠뻑 적셨다.
“나의 아이들아… 마지막으로… 너희의 모든 슬픔과 분노를… 너희의 모든 고통을… 이 아비에게 다오!”
그가 피리를 부는 순간, 남아있던 모든 원혼들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검은 연기가 되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피의 연못이 끓어오르며 역류했고, 뼈 탑이 무너져 내리며 그 파편들마저 자석처럼 남자에게로 모여들었다.
“저놈…! 스스로 저주의 그릇이 될 생각이야!”
서화가 경악하며 외쳤다.
남자의 비쩍 마른 몸이,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짐승의 뼈들이 그의 살을 뚫고 튀어나와 끔찍한 갑옷처럼 몸을 감쌌고, 수백 마리 원혼의 분노가 그의 등 뒤에서 검은 날개처럼 펼쳐졌다. 그의 눈은 완전히 붉게 물들었고, 입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닌, 수백 개의 짐승 소리가 뒤섞인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니었다. 수백 마리 짐승들의 한이 응축된, 걸어 다니는 저주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이제야… 진정한 왕이 되었다.”
괴물이 된 남자가, 한지운을 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수십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것처럼 울렸다.
“자, 가짜 왕이여. 너의 마지막을 연주해주마.”
대온실의 유리가, 그의 포효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며 밤하늘에 흩뿌려졌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대온실의 유리가 산산조각 나며 흩뿌려지는 순간, 괴물로 변한 남자의 포효가 창경궁의 밤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더 이상 한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호랑이의 성난 울음, 코끼리의 비통한 절규, 늑대들의 처절한 하울링. 수백 마리 짐승들의 모든 고통과 분노가 하나로 응축된, 저주 그 자체의 소리였다.
크아아아아아아-!
음파의 형태를 띤 순수한 ‘한(恨)’이, 충격파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최민준과 장서린은 저도 모르게 귀를 막고 비틀거렸다.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수백 개의 비명이 뇌의 가장 깊은 곳을 직접 할퀴는 듯한 정신 공격이었다. 서화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며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지만, 그녀가 힘겹게 불러냈던 산군의 형체는 그 포효 한 방에 희미한 연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땅의 정기가, 응축된 원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 것이다.
“이건… 차원이 달라….”
최민준이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이전의 원혼들이 날카로운 칼이었다면, 지금 눈앞의 존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해일과도 같았다. 비교조차 무의미했다.
괴물은 땅을 박차고 한지운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움직임은 이전에 보았던 그 어떤 맹수보다도 빠르고 육중했다. 코뿔소의 돌진력, 치타의 민첩함, 곰의 파괴력이 하나의 육체에 깃들어 있었다. 그의 몸을 감싼 뼈 갑옷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바닥의 콘크리트를 긁어냈고, 등 뒤의 검은 날개는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여 순간적으로 진공 상태를 만들었다.
콰앙-!
한지운은 사인검을 들어 괴물의 뼈 창 같은 팔을 막아냈다. 검과 뼈가 부딪치는 순간, 쇠와 쇠가 격돌하는 소리와 함께 황금빛과 검붉은 빛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충격의 여파로, 두 사람이 서 있던 지반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방사형으로 내려앉았다. 지운의 발이 땅속으로 반쯤 파묻혔다. 힘에서부터,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보아라, 가짜 왕이여! 이것이 바로 버림받은 자들의 힘이다! 너희 인간들이 외면한 고통의 무게다!”
괴물이 수십 개의 목소리가 겹쳐진 소리로 외치며, 지운을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다. 쉴 새 없이 뻗어 나오는 뼈 창과 발톱, 사방에서 음속으로 덮쳐오는 검은 날개의 공격에 지운은 방어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검술은 완벽했지만, 상대는 상식과 법칙을 무시하는 재앙 그 자체였다.
“이대로는 안 돼요!”
장서린이 소리쳤다. 그녀의 태블릿 화면은, 이전처럼 명확한 ‘약점’을 표시하지 못했다. 괴물의 몸 전체가, 오차 없이 완벽하게 응축된 하나의 거대한 저주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화면은 온통 붉은색 경고로 도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해요. 저 모든 저주를 통제하는 단 하나의 ‘핵’이 있어요. 짐승들의 원혼과는 이질적인 파동… 그래, 저주에 잠식되지 않은 유일한 존재… 바로 저 남자의 원래 영혼입니다! 저 모든 증오 속에서, 아직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단 하나의 점!”
그녀가 괴물의 가슴팍, 검은 뼈 갑옷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만, 폭풍 속 등대처럼 아주 미약하지만 인간의 파형이 관측되고 있었다.
“저놈의 심장을 노려야 해!”
최민준이 외치며 리볼버를 겨누었지만, 괴물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빨랐고, 그를 둘러싼 검은 기운의 막은 총알이 닿기도 전에 녹여버릴 기세였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그때, 서화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품에서 작은 은방울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마지막 남은 모든 영력을 쥐어짜 내 방울을 흔들자, 물리적인 소리가 아닌, 영혼을 직접 어루만지는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딸랑-
그 소리는 괴물의 포효를 뚫고, 그의 안에 갇힌 짐승들의 영혼에게 닿았다. 그것은 싸움을 부추기는 소리가 아니었다. 고향의 푸른 초원을 떠올리게 하는 바람 소리이자, 어미의 따뜻한 품을 그립게 하는 자장가였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순수한 치유의 파동이었다.
“크윽… 크아아…?”
괴물의 움직임이, 아주 찰나였지만 움찔하며 멈칫했다. 그의 몸을 이루고 있던 짐승들의 원혼이, 서화의 방울 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내면에서부터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순간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그 안에서 수백 개의 슬픈 눈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지금이야!”
최민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괴물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키며 소리쳤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네놈이 왕이면, 나는 저승사자다! 네놈이 외면한 인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
탕! 탕!
그의 총알은 괴물의 어깨 갑옷에 부딪혀 부질없이 튕겨 나갔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강한 의지는 괴물의 분노를 그에게로 돌리기에는 충분했다.
“네놈부터… 찢어주마…!”
그리고 한지운은,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그 찰나의 순간을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더 이상 괴물의 공격을 막아내지 않았다. 그는 괴물의 품으로, 저주의 심장부로 스스로 뛰어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사인검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눈부신 황금빛을 태양처럼 토해내기 시작했다.
“네놈의 왕국은, 증오 위에 세워졌다.”
지운의 목소리가, 괴물의 영혼에 직접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의 백성들은, 증오 속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기억 속에 산다.”
그의 검은, 괴물의 육신을 베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마리의 억울한 영혼들을 남자의 증오로부터 묶어놓은, 저주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검이었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
지운의 사인검이, 마침내 장서린이 찾아낸 핵, 괴물의 가슴팍 가장 깊은 곳을 꿰뚫었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검이 꽂힌 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황금빛 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파괴의 빛이 아닌, 모든 것을 정화하고 치유하는 ‘기록’의 빛이었다.
“크아아… 아아… 안 돼… 나의 아이들아… 가지 마라….”
괴물의 몸을 이루고 있던 뼈 갑옷이, 먼지처럼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등 뒤의 검은 날개는, 수백 마리의 빛나는 나비가 되어 밤하늘로 흩어졌다. 짐승들의 영혼은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침내 증오의 속박에서 풀려나, 지운이 열어준 ‘기억’의 길을 따라 평온한 안식을 찾아 떠나고 있었다. 사자는 아프리카의 석양을 보았고, 북극곰은 차가운 얼음의 감촉을 느꼈다.
마침내, 모든 빛이 사라졌을 때.
그 자리에는, 모든 것을 잃고 앙상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의… 왕국이….”
그가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순간, 그의 몸 또한 발끝부터 서서히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 영혼의 한을 짊어진 대가였다.
“너희… 인간들… 절대로… 용서….”
그의 마지막 저주는, 끝맺지 못한 채 밤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고요함이 찾아왔다.
세 번째 저주는, 마침내 끝났다. 폐허가 된 대온실 터 위로,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