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시간표
월요일 아침,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주 미세하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사소한 변화였지만, 나 자신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의 흔들림 속에서, 나는 주말에 만났던 작은 망둑어의 몸부림을 떠올렸다. 손바닥 위에서 파득이던 그 희미한 온기와 생명의 저항감. 그것은 지난 몇 년간 내가 모니터 속에서 마주했던 그 어떤 데이터보다도 명확하고 강렬한 실체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끝에는 여전히 낚싯줄 끝으로 전해져 오던 ‘투둑’ 하는 감각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다시 ‘만선조구’의 문을 열었다. 바닷속에 수장시킨 채비를 보충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황 사장에게 나의 첫 ‘조과’를 알려주고 싶다는 유치한 마음이 더 컸다. 가게에 들어서자, 그는 여전히 카운터에 앉아 낡은 릴을 분해해 기름칠을 하고 있었다.
“어, 왔어?”
그가 무심하게 고개를 들었다.
“네, 사장님. 저번에 주신 걸로 한 마리 잡았습니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을 담아 말했다. 그의 눈이 살짝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능글맞은 웃음이 번졌다.
“오, 그래? 벌써 손맛을 봤나? 뭐 잡았는데? 돔이라도 한 마리 했어?”
“아뇨… 망둑어 한 마리요.”
내 대답에 그는 ‘풉’ 하고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다시 릴의 부품을 닦는 데 집중하며 툭 던졌다.
“그래도 잡긴 잡았네. 꽝 친 것보단 낫지. 근데, 물때는 보고 갔냐?”
“물때요…?”
처음 듣는 단어였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기름 묻은 손으로 가게 벽면을 가리켰다. 벽에는 숫자와 한자, 그리고 이상한 기호들이 빼곡하게 적힌 달력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물때표였다.
“낚시꾼이 물때도 모르고 바다에 나가는 건, 엔진 꺼진 차에 기름만 붓는 꼴이야. 고기들이 바보인 줄 알아? 아무 때나 입을 열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는 물때표의 복잡한 숫자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봐봐. 물이 가장 많이 들고 나는 ‘사리’ 때가 있고, 물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조금’ 때가 있어. 고기들도 똑같아. 물이 흐르고 조류가 살아나야 먹이 활동을 시작한다고. 멈춰있는 물에서는 쟤들도 입 꼭 닫고 바위 밑에 숨어 있어. 자네가 간 날은 운 좋게 물이 좀 흐르는 시간이었나 보지. 그게 아니었다면 망둑어 할아버지도 못 봤을걸.”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저 아무 때나 내가 원할 때 바다에 가서, 아무 곳에나 낚싯대를 던졌다. 나의 첫 성공은 실력이 아니라 순전한 우연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복잡한 기호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만조’, ‘간조’, ‘7물’, ‘13물’. 그것은 마치 해독 불가능한 암호처럼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이 움직이는 규칙이자 시간표였다.
나는 끊어진 채비 몇 개와 함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때표 책자를 하나 샀다. 가게를 나서며 황 사장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엔 저 표 보고,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가봐. 그럼 망둑어 말고 다른 놈 얼굴이라도 볼지 모르니까.”
그 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지금껏 모든 일이 나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있다고 믿었다. 내가 시간을 쏟고, 내가 더 애를 쓰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하지만 바다는 달랐다. 바다에는 바다의 시간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새벽 일찍 나가 온종일 낚싯대를 던져도, 물이 움직이지 않는 시간에는 입질 한번 받기 어려웠다. 중요한 것은 나의 열심이 아니라, 흐름을 읽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였다.
문득 회사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늘 우리의 시간표에 맞춰 클라이언트를 재촉했다. 우리가 기획안을 보냈으니, 그들은 바로 피드백을 줘야 한다는 조급함. 어쩌면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물때’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내부 보고와 결재,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힌 그들만의 복잡한 조류가. 나는 그저 내 낚싯대만 바라봤을 뿐, 정작 고기가 헤엄치는 물속은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날, 회사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클라이언트와의 협업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의 작은 깨달음을 시험이라도 하듯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가 보낸 기획안에 대해 클라이언트는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팀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팀장님, 다시 한번 메일 보내볼까요? 혹시 못 보셨을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제가 한번 전화 드려보겠습니다.”
모두가 조급해했다. 나 역시 불안했다. 멈춰있는 상황. 그것은 마치 입질 없는 낚시처럼 사람의 피를 말렸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멈춰있는 바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조금’ 때.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움직이지 않는 시간.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팀장님, 혹시 며칠만 더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계속 연락드리는 건 오히려 독촉처럼 느껴져서 반감만 사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내부적으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신 걸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팀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김 부장은 의외라는 듯 나를 쳐다봤다. 늘 수동적으로 지시만 따르던 막내 대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더? 그러다 영영 연락 없으면 어떡해?”
“그때 다시 저희가 적극적으로 연락드려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준비를 하면서, 저쪽의 ‘시간’을 좀 존중해 주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시간’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김 부장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스마트폰의 물때표 앱을 켰다. 이번 주말, 토요일 오후는 ‘사리’였다. 바다가 가장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시간. 나는 왠지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멈춰있는 프로젝트의 시간과는 다른, 명확한 흐름과 규칙을 가진 바다의 시간표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것만 같았다.
기다리는 일주일은 길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클라이언트로부터의 답신은 여전히 없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메일함을 초조하게 들락거리는 대신, 나는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했다. 클라이언트가 피드백을 줬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자료를 미리 만들었고, 다음 단계에 필요한 시장 조사 자료를 좀 더 보충했다. 그것은 ‘조금’의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멈춰있는 바다에서 낚시꾼이 낡은 채비를 정비하고 다음 ‘사리’를 준비하듯, 나 역시 나의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마침내 클라이언트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부 검토가 길어졌습니다. 보내주신 기획안,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다음 주 초 미팅에 앞서, 저희가 궁금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한 보충 자료를 미리 받아볼 수 있을까요?]
메일을 확인한 팀원들의 얼굴에 안도와 함께 당혹감이 스쳤다.
“미팅 전에 자료를 또 달라고? 지금부터 만들면 주말 내내 야근해야겠는데.”
한 동료의 푸념에 모두가 동의할 때, 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팀장님, 제가 지난 며칠간 준비해 둔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일주일간 정리해 두었던 파일들을 첨부해 즉시 답신을 보냈다. 팀원들의 놀란 시선 속에서 김 부장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박대리, 그냥 감으로 기다리자고 한 게 아니었구만. 준비성이 좋았어. 덕분에 주말에 다들 편하게 쉬겠네.”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모니터 한편에 띄워놓은 물때표 앱을 몰래 닫았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마음속에 남는 울림이 너무도 선명했다. 이전의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 멈춰버린 상황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초조해하거나, 혹은 무작정 클라이언트를 닦달하며 관계를 망쳤을 것이다. 나의 시간표에 세상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겠지.
하지만 바다는 다른 리듬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조금’의 시간은, 그저 허비되는 공백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 ‘사리’의 거대한 흐름을 맞이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의 시간이었다. 낚시꾼이 그 시간에 낚싯줄을 점검하고 매듭을 새로 묶듯, 나 역시 멈춰있는 프로젝트의 시간 속에서 다음 흐름을 대비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멈춰있는 시간을 그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다가올 흐름에 어떻게 올라탈 것인지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진짜 ‘흐름을 읽는 법’이라는 것을, 바다는 내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나는 시간에 맞춰 방파제에 섰다. 지난주와 같은 장소였지만,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바다는 눈에 띄게 불어나 있었고, 잿빛 파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파제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쏟아냈다. ‘사리’. 황 사장님의 말대로, 바다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거대한 생명력 앞에서 나는 경외감과 함께 미미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지난주보다 훨씬 능숙하게 채비를 묶고 갯지렁이를 꿰었다. 그리고 힘차게 낚싯대를 휘둘렀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채비는 만족스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하지만 봉돌이 물에 닿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툭’ 하고 바닥에 안착하는 감각이 느껴지기가 무섭게, 낚싯줄이 옆으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류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거셌던 것이다.
“어, 어…?”
낚싯줄은 팽팽하게 휘어지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또 흘렀다. 봉돌이 바닥을 긁는 ‘투둑’ 하는 감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거대한 강물에 채비를 던져놓은 것처럼, 속수책으로 떠내려갈 뿐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릴을 감아 채비를 회수했다. 미끼는 너덜너덜해져 있거나 아예 사라져 있었다.
몇 번을 다시 던져도 상황은 똑같았다. 나의 채비는 바닥에 머무르지 못하고, 맹렬한 조류에 휩쓸려 옆 사람의 낚싯줄 근처까지 흘러가기 일쑤였다. 옆자리 낚시꾼의 따가운 눈총에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지루함과는 다른 종류의,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흐름을 읽고 때를 맞춰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거센 흐름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내 옆에서 낚시하던 노인이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제법 씨알이 굵은 우럭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고기를 꿰미에 꿰고는, 내 쪽을 힐끗 보며 말했다.
“총각, 그렇게 가벼운 걸로 하믄 고기는커녕 바닥 구경도 못 혀. 물살이 장난이 아닌디.”
그는 자신의 채비를 보여주었다. 내 것보다 두 배는 더 크고 무거워 보이는 봉돌이 달려 있었다.
“흐름이 세면, 더 무겁게 가라앉아야 버티는 법이여. 거슬러 싸우려고 하지 말고, 무게로 지그시 눌러줘야지.”
나는 황급히 내 태클박스를 뒤졌다. 다행히 황 사장이 ‘혹시 모르니 넣어두라’며 챙겨준 더 무거운 봉돌 몇 개가 있었다. 나는 가장 무거운 것으로 채비를 교체했다. 다시 던진 채비는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봉돌은 거센 조류를 뚫고 묵직하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낚싯줄은 여전히 옆으로 조금씩 밀렸지만, 이전처럼 속절없이 떠내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낚싯대 끝으로 ‘투둑, 투둑’ 하는, 바닥을 읽는 감각이 돌아왔다. 나는 비로소 거센 흐름 속에서 나의 ‘중심’을 잡은 기분이었다.
얼마를 기다리자, 바닥을 더듬던 낚싯대 끝이 ‘툭!’ 하고 강하게 튕겨 나갔다. 망둑어의 간지러운 입질과는 차원이 다른, 명확하고 단단한 충격. 나는 온 힘을 다해 낚싯대를 챔질했다. 그러자 낚싯대가 부러질 듯 활처럼 휘어졌다. 놈은 조류를 타고 바위틈으로 파고들려 격렬하게 저항했다. 릴을 감는 팔에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흐름의 무게,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무게였다.
몇 분간의 사투가 이어졌다. 놈은 바위틈으로 미친 듯이 파고들었고, 나는 낚싯대가 부러질세라 필사적으로 버텼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놈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마침내 수면 아래에서 거무튀튀한 형체가 어른거렸다. 검붉은 몸체에 억센 지느러미. 제법 튼실한 우럭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다 잡았다는 생각에 힘을 주어 릴을 감는 바로 그 순간, '팅!'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낚싯대의 텐션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끊어진 낚싯줄 끝이 힘없이 바람에 날렸다. 허탈함이 온몸을 덮쳤다. 나는 한참 동안 텅 빈 수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무거운 봉돌로 흐름을 버텨낸 것은, 그저 싸움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는 우럭이라는 대상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놈의 힘이 얼마나 센지, 어떤 채비를 써야 버틸 수 있는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나의 어설픈 매듭과 약한 목줄은 놈의 마지막 저항 한 번에 허무하게 터져나갔다.
흐름을 버텨낼 ‘무게’를 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흐름 속에서 만날 상대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철저한 ‘전략’과 ‘기술’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