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13화

빙하기의 도래

by 돌부처

월요일 오전 아홉 시, 회의실의 공기는 내가 알던 그 어떤 바다보다도 차갑고 무거웠다. 주말 동안 나와 김현승이 나누었던 뜨거운 열정과 충만감은,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팀원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고, 김 부장조차 평소의 여유를 잃은 채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회의실 상석, 그 낯선 공기의 진원지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차수진 팀장. 그녀는 서른 후반쯤으로 보였고, 칼처럼 다린 흰 셔츠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단발머리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했다. 그녀의 앞에는 노트북 한 대만 놓여 있었고, 그 외에는 어떤 불필요한 물건도 없었다. 그녀는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아무 말 없이, 그저 무감정한 눈빛으로 노트북 화면의 데이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간 됐으니 시작하죠.”


정각 아홉 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그녀는 자기소개도, 서두도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두 분이 제출한 프로젝트 초기 기획안, 잘 봤습니다. 초기 시장 진입 속도와 타겟 설정, 둘 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사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주목하기 시작한 거겠죠.”


그녀의 칭찬에는 어떤 온기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라, 마치 부검을 앞둔 의사가 시신의 상태를 읊는 듯한 냉정한 분석에 가까웠다.


“하지만, 과정이 너무 주먹구구식입니다.”


그녀는 스크린에 김현승이 작성했던 타임라인을 띄웠다.


“김현승 대리님. 속도는 좋았지만, 각 단계별 리스크 관리 방안과 구체적인 KPI 설정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의 돌격은 운이 좋으면 성공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좌초됩니다. 모든 과정은 데이터로 기록되고 관리되어야 합니다.”


그녀는 곧바로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이번에는 내가 작성했던 고객 분석 자료였다.


“박주원 대리님. 소수 고객의 심층 인터뷰를 통한 ‘감각적인’ 접근,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건 에세이가 아닙니다. 개인의 감상이나 직관이 비즈니스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량적인 데이터뿐입니다.”


그녀의 말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논리로 무장되어 있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나와 김현승은 마치 벌거벗겨진 채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고, 마침내 하나로 합쳐냈던 우리의 ‘낚시 철학’은, 그녀의 세계에서는 그저 아마추어의 치기 어린 놀이일 뿐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소개했다. 수십 개의 항목으로 쪼개진 엑셀 시트,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고해야 하는 업무 일지, 그리고 모든 것을 숫자로 계량화하는 성과 측정 시스템. 그것은 더 이상 낚시가 아니었다. 거대한 그물을 던져 바다 밑바닥까지 훑어버리는 저인망 어선, 혹은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정해진 사료만으로 물고기를 키워내는 양식장과도 같았다. 그곳에는 물결의 감각도, 살아있는 생명의 저항도,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변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투입과 산출, 데이터와 효율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김현승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그의 가장 큰 무기였던 ‘속도’는 이제 무의미한 보고서 작성에 발목이 잡힐 터였다. 나의 무기였던 ‘깊이’ 역시,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감’으로 치부되어 버렸다. 우리의 낚싯대는 강제로 빼앗겼다.


회의가 끝나고, 팀원들은 말없이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이전의 활기와 열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무실에는 키보드 소리만이 묘비처럼 박혀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홀로 남아 그녀가 던져주고 간 복잡한 양식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김현승이 내 자리로 다가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책상 위에 캔커피 하나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할 겁니까, 우리는.”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나는 대답 대신, 모니터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 한편에는 주말에 다녀왔던 방파제의 사진이 떠 있었다.


“저인망 어선이 휩쓸고 간 바다에는, 당분간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그 불빛은 더 이상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갇혀버린, 거대하고 차가운 양식장의 불빛처럼 느껴졌다.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이 차가운 바다에서, 나와 그는 과연 무엇을 낚을 수 있을까. 아니, 낚싯대를 던지는 것조차 허락될 수 있을까.




빙하기는 생각보다 혹독했다. 차수진 팀장이 가져온 시스템은 사무실의 모든 온도를 앗아갔다. 우리의 아침은 더 이상 커피 향과 함께하는 아이디어 회의로 시작되지 않았다. 대신, 각자의 업무 진행률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기입하는 온라인 시트를 채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모든 업무는 티켓단위로 쪼개졌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티켓의 상태를 ‘진행 중’, ‘검토 중’, ‘완료’로 바꾸는 기계가 되었다. 창의성, 열정, 직관 같은 단어들은 우리의 언어에서 사라졌다. 오직 ‘정량적 목표’, ‘KPI 달성률’, ‘예상 소요 시간’만이 남았다.


김현승은 덫에 걸린 야수처럼 보였다. 그의 가장 큰 무기였던 속도와 동물적인 감각은, 촘촘하게 짜인 시스템의 그물 속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는 무언가를 ‘실행’하는 시간보다, 그것을 ‘보고’하기 위해 문서를 작성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이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미라로 만드는 과정 같아요.”


어느 날 저녁, 그는 내 자리로 와 캔커피를 내려놓으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 밑은 거뭇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달리려고 하는데,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수십 개는 달아놓은 기분입니다. 이러다 달리기는커녕 걷는 법도 잊어버리겠어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차수진 팀장의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주장했던 ‘감각적인’ 접근법을 숫자로 증명해 보려 애썼다. 소수의 고객에게서 얻은 심층적인 피드백을 어떻게든 정량적인 데이터로 변환해 보고서에 끼워 넣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생선을 억지로 박제하는 것과 같은 공허한 작업일 뿐이었다. 나의 ‘깊이’는, 숫자로 환원되는 순간 그 생명력을 잃었다.


우리의 낚싯대는 그렇게 부러졌다. 우리는 더 이상 야생의 바다를 탐사하는 낚시꾼이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사료를 던져주는 양식장의 관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주 주말, 나는 도망치듯 바다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목적도, 어떤 기대도 없었다. 나는 그저 숨을 쉬고 싶었다. 내가 향한 곳은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아주 깊고 조용한 저수지였다. 그곳에는 붕어낚시를 하는 노인들 몇몇이, 마치 풍경의 일부인 양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갔던 그날을 떠올리며 가장 단순한 찌낚시 채비를 꾸렸다. 그리고 아무런 기교 없이, 그저 찌를 물 위에 띄워놓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찌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초조하지 않았다. 나는 물고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게서 빼앗겼던 나의 시간을 되찾고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낚싯대를 접으려 할 때였다. 내 옆에서 낚시하던 한 노인이, 아주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올리는 것을 보았다. 손가락만 한 피라미였다. 노인은 실망하는 기색 없이, 그 작은 피라미를 다시 낚싯바늘에 꿰어 더 깊은 곳으로 던져 넣었다.


“어르신, 그 작은 걸로 뭘 잡으시려고요?”


호기심에 내가 묻자, 노인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놈 가져가도 아무것도 못 해. 진짜는 이놈 냄새 맡고 오는 그놈을 잡아야지.”


그는 말을 이었다.


“저수지에는 아주 영리하고 오래 묵은 쏘가리 놈들이 있어. 웬만한 미끼는 거들떠보지도 않지. 양식장에서 주는 사료 맛에 길들여진 놈들하고는 달라. 이놈들은 오직 살아있는 진짜 먹이만 탐한다고.”

“하루 종일 이렇게 기다리세요? 그렇게까지 해서 잡을 가치가 있는 놈입니까?”


나는 그의 지난한 기다림이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노인은 찌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나직이 대답했다.


“가치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낚시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 쉬운 놈들 백 마리 잡는 것보다, 이런 영악한 놈 한 마리랑 머리 싸움하는 게 진짜 재미지. 저놈들은 그물질하는 배가 한번 지나가면 며칠은 돌 틈에서 나오지도 않아. 제아무리 좋은 떡밥을 뿌려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진짜’라고 믿는 것만 물거든. 성질이 아주 까다로운 놈들이야. 그래서 이렇게 하루 종일 피라미 한 마리를 기다리는 거야. 저 까다로운 놈을 유혹할,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섬광이 내리쳤다.


차수진 팀장의 시스템은 거대한 그물과 같았다. 양식장의 물고기처럼, 정해진 패턴에 따라 움직이는 대다수의 데이터를 잡아내는 데는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물은, 너무 영리해서 정해진 길로 다니지 않는, 야생의 쏘가리 같은 데이터는 결코 잡아낼 수 없었다. 노인의 말처럼, 그녀의 그물질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가장 예민한 고객들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내가 처음 문제라고 느꼈던 ‘20대 초반 여성 고객의 미세한 이탈률 하락’. 그것은 그녀의 시스템에서는 통계적으로 무시해도 좋을 ‘소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 서비스의 진짜 문제점을 알려주는 가장 영리하고 까다로운 ‘쏘가리’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가장 중요한 신호.


나는 그날, 빈손으로 저수지를 떠났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새로운 싸움의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월요일 아침, 나는 김현승을 탕비실로 불렀다.


“김현승 대리님. 우리가 틀렸습니다. 우리는 저인망 어선에 올라타서, 그 방식에 순응할지 저항할지만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럼 어떡하자는 겁니까? 저 시스템을 이길 방법은 없어요.”


나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이길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저인망 어선이 훑고 지나간 그 바다 밑바닥에, 그물에 걸리지 않고 살아남은 가장 영리한 물고기를 잡으러 가면 됩니다.”


나는 내가 주말 내내 정리한 가설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미세하게 이탈하는 그 고객층이야말로, 우리 서비스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까다롭고 중요한 고객이라는 나의 직관.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한, 차수진 팀장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법.


김현승은 한참 동안 내 노트를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아주 오랜만에, 빙하기 이전의 그 뜨거운 흥분과 호기심이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재밌네요, 이거.”


그가 말했다.


“저인망 어선 옆에서, 쪽배 띄우고 월척 낚는다는 소리잖아요, 지금.”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그것은 반역의 시작이었다. 우리의 낚싯대는 부러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다른 종류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더 깊고 고요한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반역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의 풍경은 지난주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차수진 팀장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모니터의 데이터를 훑었고, 팀원들은 각자의 책상에 파묻혀 기계적으로 티켓을 처리하고 있었다. 나와 김현승 역시 그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인 척, 묵묵히 각자에게 할당된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우리의 수면 아래에서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격렬한 조류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비밀 작전 기지는 탕비실이었다. 점심시간, 모두가 식당으로 빠져나간 텅 빈 탕비실에서 우리는 각자의 노트북을 펼쳤다.


“자, 이제 우리만의 낚시를 시작해 보죠.”


김현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제가 차수진 팀장이 요구하는 모든 정량 데이터를 최대한 빨리 처리해서, 그녀의 시선을 붙잡아 두겠습니다. 저는 저인망 어선이 최대한 요란하게 엔진을 돌리는 역할을 맡는 거죠. 그동안, 박대리님은 쪽배를 타고 조용히 그물 밑으로 잠수하는 겁니다.”


그가 말한 ‘잠수’란, 내가 주장했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물고기들’, 즉 미세하게 이탈하는 핵심 고객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의미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 고객들에게 접촉하려면, 그들의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스템상, ‘통계적 유의미성이 없는’ 소수 고객의 데이터를 열람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요청하는 순간, 바로 차 팀장에게 보고가 올라갈 겁니다.”


우리의 반역은 시작과 동시에 거대한 빙하에 가로막힌 셈이었다. 차수진의 시스템은 우리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었다. 김현승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럼 어떡하죠? 시스템을 해킹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직접 그물을 던질 수 없다면, 이미 그물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됩니다.”




그날 오후, 나는 이대리의 자리에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차수진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끙끙거리며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밀며, 지난번 프로젝트 때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이대리님. 혹시… 지난 프로젝트 때 우리가 확보했던 베타 테스터들 명단, 아직 가지고 있습니까?”


내 질문에 이대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 아마 제 개인 PC에 저장되어 있을 겁니다. 근데 그건 왜…”

“그 명단에서, 20대 초반 여성 고객 리스트만 제게 따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 공식적인 업무 요청은 아닙니다.”


이대리는 잠시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진솔하게 말했다.


“차 팀장님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방식만으로는 우리가 놓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걸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이대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고민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다. 그것은 위험한 부탁이었다.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 역시 문책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나는 그를 더 이상 압박하지 않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왔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내 메신저가 조용히 울렸다. 이대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조용히 확인만 하시고, 바로 삭제 부탁드립니다.]


메시지 아래에는 작은 엑셀 파일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열었다. 그 안에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수십 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곧장 김현승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시 탕비실에 마주 앉은 우리는, 노트북 화면 속 명단을 보며 숨을 죽였다.


“빙하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겼습니다.”


김현승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제 이 균열을 어떻게 파고들어가야 할까요?”


나는 대답 대신, 저수지에서 만났던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이놈들은 오직 살아있는 진짜 먹이만 탐한다고.’


“그물을 던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한 명, 한 명에게, 세상에서 가장 정성스럽게 꿴 ‘생미끼’를 직접 던져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낚시는,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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