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20화

갯지렁이를 꿰는 법

by 돌부처

우리의 ‘하이브리드 엔진’은 성공적이었다.


한 달 후, 작전실의 메인 모니터에 떠오른 최종 숫자는 ‘7.1%’였다. 우리는 차수진 팀장이 제시했던 목표치를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그 숫자를 확인한 순간, 나와 김현승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우리는 거대한 빙하의 항로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날 오후, 전사 임원 회의에서 우리의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격상되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총괄 PM이었던 차수진 팀장에게 쏟아졌다. 그녀는 단상 위에서, 특유의 차가운 목소리로 성공의 요인을 분석했다. 그곳에 나와 김현승의 이름은 없었다. 그녀는 우리를 ‘유능한 항해사’라고 칭했을 뿐, 누구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고,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우리의 손을 떠났다.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는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법이다. 우리가 몇 주간 밤을 새워 만든 프로토타입과 가설은, 이제 각 전문 부서로 쪼개져 분업화된 공정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의 치열했던 항해는, 더 큰 함대의 출항을 위한 짧은 예인선 역할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속도감을 따라잡지 못한 것은 김현승이었다. 그는 허탈한 얼굴로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건 완전히 도둑질 아닙니까? 우리가 밤새워 낚은 고기를, 자기가 잡은 척 채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덤덤했다. 이미 낚시는 끝났기 때문이다. 낚시꾼에게 중요한 것은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포인트를 찾아내고, 입질을 읽고, 마침내 놈을 뭍으로 끌어내는 그 과정 자체에 있었다. 쿨러 안의 조과는 그 과정에 대한 증명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그 모든 것을 얻었다.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끝나고 몇 주간, 나와 김현승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축하의 의미로, 우리는 주말에 다시 한번 동반 출조를 떠났다. 이번에는 우리가 발견한 ‘하이브리드 채비’를 실제 낚시에서 구현해보자는 들뜬 마음이었다.


“자, 보시죠. 이게 바로 박주원-김현승표 하이브리드 채비입니다.”


김현승이 웃으며 채비를 들어 보였다. 아래에는 갯지렁이를 꿴 우럭 바늘을, 위에는 크릴을 꿴 학꽁치 바늘을 단, 우리의 논리가 그대로 담긴 2단 채비였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달랐다. 복잡한 조류 속에서, 두 개의 다른 미끼가 달린 채비는 끊임없이 서로 엉키고 꼬였다.


우리는 그날, 낚시하는 시간보다 엉킨 줄을 푸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결국 우리는 빈 쿨러와 함께, 지친 몸을 이끌고 뭍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의 낚시는 완벽한 실패였다. 우리는 서로 멋쩍게 웃으며 헤어졌다.




시간은 흘러 연말이 되었다. 사무실은 한 해를 마감하는 분주함과 다가올 인사에 대한 술렁임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사 발표일. 오전 10시, 사내 인트라넷에 팝업창 하나가 떴다.


‘2025년 정기 승진자 명단 공지’.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스크롤을 내리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마침내, 익숙한 이름 하나를 발견했다.


[기획 1팀 과장 박주원]


바로 그 아래에는 [기획 1팀 과장 김현승]이라는 이름도 나란히 적혀 있었다. 사무실 곳곳에서 축하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료들이 내 자리로 몰려와 등을 두드려주었고, 김현승 역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것은 차수진의 방식이었다. 그녀는 공(功)은 자신이 가져갔지만, 그에 합당한 보상은 숫자로 정확하게 돌려주었다. 우리의 이름은 지웠지만, 우리의 가치는 인정한 것이다.


그날 저녁, 김 부장은 우리 두 사람을 조용히 불렀다. 연말 정기 인사가 아닌, 프로젝트 성과에 따른 특별 진급이었기에 떠들썩하게 축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기회를 잡지 못한 다른 동료들을 배려한, 그만의 방식이었다. 그는 단골인 듯한 허름한 고깃집의 구석 자리에서, 말없이 우리 두 사람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대리 때는 자기 낚싯대만 잘 챙기면 됐지만, 과장은 달라. 이제 자기 배에 다른 선원들을 태워야 해. 그 사람들 낚싯줄이 엉키지 않게 풀어주고, 어디로 던져야 할지 가르쳐주기도 해야 한다고. 훨씬 더 머리 아프고 귀찮은 일이 많아질 거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다음 날, 내 자리에는 ‘과장 박주원’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작은 명패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신입사원 두 명이 새로운 팀원으로 배정되었다. 그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최경호입니다!”

“이지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과장님! 신규 프로젝트 TF에서 활약 대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과장님 밑에서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저희는 이제 어떤 것부터 시작하면 될까요?”


나는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눈을 감고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 몇 년간의 공허한 시간이 쌓여 비로소 지난 몇 달간 온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을 수 있었던 그 ‘감각’의 세계를, 나는 과연 이들에게 언어로 설명하고, 시스템으로 전수할 수 있을까.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명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과장’이라는 두 글자의 무게가, 지난번 낚았던 그 어떤 우럭보다도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 앞에서, 나는 과연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의 깨달음은 오직 나에게만 유효한, 지극히 개인적인 주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김현승과 함께 야심 차게 만들었던 하이브리드 채비가 바다 앞에서 속절없이 엉켜버렸던 그날의 실패가 떠올랐다. 이론은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던가.


수많은 질문들이 엉킨 낚싯줄처럼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이제, 이 배에 함께 올라탄 두 명의 새로운 선원을 책임져야 했다.


최경호 사원은 의욕이 넘치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청년이었고, 이지아 사원은 말수는 적었지만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날카롭게 관찰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처음 ‘만선조구’의 문을 열었던 과거의 나를 보았다.




첫 번째 팀 회의.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막막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 우리 팀에 온 걸 환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은,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낚시꾼과 같아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닷속, 즉 고객의 마음을 읽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건져 올리는 일을 할 겁니다.”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낚시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설명했다. ‘감각’, ‘흐름’, ‘기다림’. 내가 지난 몇 달간 온몸으로 배웠던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내 설명이 끝나자, 최경호 사원이 의욕적으로 손을 들고 질문했다.


“과장님! 말씀해주신 방향성, 정말 인상 깊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저희가 바로 시작해야 할 구체적인 업무 매뉴얼과, 참고해야 할 데이터 리스트를 공유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매뉴얼. 데이터 리스트. 나는 그런 것을 준비하지 않았다. 아니, 준비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은 감각의 언어였지, 체계화된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경호 씨. 좋은 질문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정해진 틀에 갇힐 필요는 없어요. 우선, 지난 프로젝트의 사용자 피드백 원본 자료들을 한번 쭉 훑어보세요. 숫자로 요약된 보고서 말고, 그들의 날것 그대로의 목소리를요. 거기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을 겁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했지만, 두 신입사원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존경심이 아닌, 미묘한 당혹감이었다. 그들은 길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나는 안개를 가리키며 ‘저 너머에 무언가 있다’고 말한 셈이었다.


그 주 내내,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내 ‘감각’을 전수하려 애썼고, 그들은 내 ‘감각’을 이해할 수 있는 ‘매뉴얼’을 요구했다. 최경호 사원은 사용자 피드백을 긍정/부정으로 나눠 숫자로 계량화한 엑셀 시트를 만들어왔고, 이지아 사원은 “그래서 이 감정들을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과 연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냉정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리더란, 내가 보는 것을 다른 사람도 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을 전혀 알지 못했다.




주말이 되고, 나는 도망치듯 바다로 향했다. 리더십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모든 복잡한 문제들을 잠시 잊고, 오직 명확한 입질의 감각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내가 찾은 곳은 지난번 루어 낚시의 ‘헛입질’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던, 나만의 비밀스러운 내항이었다. 나는 자신 있었다. 이곳의 물때와 지형, 그리고 고기들의 습성을 이제는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바다는, 나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기술과 지식을 총동원했다. 물색을 읽고, 조류의 흐름에 맞춰 캐스팅하고, 수십 가지의 다른 루어로 다양한 액션을 연출했다. 하지만 바다는 굳게 입을 닫은 채, 어떤 신호도 보내오지 않았다. 예민한 안테나는 물속의 소음만을 끊임없이 전달해왔고,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토독’ 하는 생명의 감각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해가 지고, 차가운 어둠이 내렸다. 나는 완전히 실패했다. 나의 감각, 나의 안테나는 이 예측 불가능한 바다 앞에서 완벽하게 무용지물이 되었다. 낚시는 내게 아무런 위안도, 어떤 깨달음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실에서 느꼈던 무력감을 더 깊고 차갑게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텅 빈 쿨러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구석, 낡은 원투낚싯대 옆에 세워둔 나의 가장 비싼 루어 낚싯대.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신입사원들을 위한 업무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펼쳐놓았던 텅 빈 노트.


나는 그 두 개의 물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신입사원들에게 갯지렁이 꿰는 법도 알려주지 않은 채, 헛입질의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작 나 자신은, 그토록 자신했던 바다에서조차 완벽하게 길을 잃고 말았다.


가르친다는 것, 그리고 이끈다는 것.

그것은 내가 낚아 올렸던 그 어떤 고기보다도 더 무겁고, 더 깊은 곳에 숨어있는 미지의 대상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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