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23화

최고의 미끼

by 돌부처


‘다락방의 창문’.


그것은 우리 팀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지도(데이터)를 든 최경호와 나침반(감성)을 든 이지아. 나는 두 사람의 손에 들린 것이 전혀 다른 도구가 아님을, 결국 하나의 항해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어야 했다.




첫 번째 공식 팀 회의. 나는 화이트보드에 ‘창문’이라는 두 글자만 적어놓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자, 이제 우리 팀의 첫 번째 미끼를 만들어 봅시다. 우리가 만들 ‘데이터 백업/연동’ 기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예상대로, 두 사람은 각자의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던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관성입니다.”


최경호가 먼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깔끔한 UI 시안을 그렸다. 커다란 ‘내보내기’ 버튼 하나.


“사용자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클릭 한 번으로, 자신의 모든 기록이 안전하게 백업된다는 명확한 신뢰를 줘야 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기능. 그게 핵심입니다.”


그의 설계는 완벽하게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차가운 버튼에서, 이지아가 말했던 ‘잘 정리된 도서관’의 서늘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차갑잖아요.”


이지아가 조용히 반박했다.


“이건 단순히 데이터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에요. 사용자의 시간과 추억을, 다른 공간으로 안전하게 이사시켜 주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딱딱한 버튼보다는, ‘나의 다락방, 새로운 곳으로 옮겨줄게’ 하고 말을 거는 듯한 따뜻한 문구와, 이삿짐을 싸는 듯한 귀여운 애니메이션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아이디어는 따뜻했지만, 최경호의 눈에는 비효율적인 감성의 낭비로 보였을 것이다. 두 사람은 다시 평행선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제지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퇴근길에 ‘만선조구’로 향했다.


“어이구, 초짜. 승진했다더니 얼굴이 더 핼쑥해졌네. 선장 노릇이 쉽지 않지?”


황 사장은 카운터 너머, 벽면을 가득 채운 루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가짜 미끼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한참 동안 그것들을 구경했다.


“사장님. 최고의 미끼는 어떤 겁니까?”


내 뜬금없는 질문에, 황 사장은 피식 웃으며 루어 두 개를 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하나는 실제 멸치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사실적인 모양의 루어였다. 다른 하나는 붉은색과 흰색이 섞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기괴한 색 조합의 루어였다.


“자네 같으면 뭘 물겠나?”


“당연히 이 멸치 모양 아닙니까? 진짜 물고기랑 똑같이 생겼는데요.”


“그럴싸하지. 근데 이놈은 물속에 들어가면 그냥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끌려와. 물고기들이 보고 ‘저놈은 가짜다’ 하고 다 도망가 버리지.”


그는 기괴한 색의 루어를 집어 들었다.


“근데 이놈은 생긴 건 이래도, 물속에 들어가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거의 죽어가는 물고기 모습 그대로야. 포식자 놈들 눈에는 ‘이보다 쉬운 먹잇감은 없다’ 하고 환장을 하고 달려들지. 낚시꾼들은 이걸 ‘액션’이 좋다고 해.”


그는 다시 멸치 모양의 루어를 가리켰다.


“물론, 가끔은 아무리 액션이 좋아도, 그날따라 유독 멸치 색깔에만 반응하는 까다로운 놈들도 있어. 이걸 ‘어필(Appeal)’이라고 하지.”


그는 두 개의 루어를 내 손에 올려놓았다.


“최고의 미끼? 그런 건 없어. 그날의 물때와, 대상어의 기분에 따라 최고의 미끼는 계속 바뀌는 거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딱 하나지. 액션(기능)과 어필(매력),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놈이, 결국엔 물고기를 낚아 올린다는 거.”


나는 두 개의 다른 루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하나는 최경호의 ‘직관적인 기능’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지아의 ‘따뜻한 매력’이었다. 나는 왜 이 두 개를 별개의 것으로만 생각했을까.




다음 날 아침, 나는 회의실 책상 위에 두 개의 루어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어젯밤 황 사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었다. 두 신입사원은 처음으로, 낚시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최경호 사원님은 완벽한 ‘액션’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이지아 사원님은 거부할 수 없는 ‘어필’을 제안했죠. 둘 다 훌륭한 미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미끼입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최경호 사원님의 강력한 ‘버튼’을 만들되, 그 버튼을 눌렀을 때 이지아 사원님이 제안한 ‘이삿짐을 싸는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겁니다. 사용자는 가장 효율적인 ‘기능’을 경험하는 동시에, 가장 따뜻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거죠. 우리는 기능과 감성,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 다 잡으면 되니까요.”


내 설명이 끝나자,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닌, 하나의 미끼를 함께 만들어야 할 동료의 눈빛으로.


“그럼… 버튼의 문구는 제가 제안했던 딱딱한 ‘내보내기’가 아니라…”

최경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의 다락방, 이사하기’ 같은 따뜻한 문구로 바꾸고, 애니메이션이 끝나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드세요’ 같은 메시지를 띄워주는 건 어떨까요?”

이지아가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두 개의 다른 낚싯줄이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하나의 매듭으로 묶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들이 완성해 나갈 ‘최고의 미끼’를 상상하며 미소 지었다.




‘최고의 미끼’라는 공동의 목표가 생기자, 팀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경호와 이지아는 더 이상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함께 만들기로 한 그 미끼를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만 몰두했다. 최경호는 가장 가볍고 빠른 ‘액션’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을 탐구했고, 이지아는 사용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가장 매력적인 ‘어필’을 위한 시각적인 요소들을 스케치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 나온 수요일 오후,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결과물을 함께 리뷰했다. 최경호의 깔끔한 버튼과 이지아의 따뜻한 애니메이션은 제법 그럴듯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버튼을 누르자, 문제는 즉시 드러났다.


“애니메이션 로딩 시간이 생각보다 기네요.”


최경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데이터를 백업하는 기능 자체는 1초도 안 걸리는데, 이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3초 동안 사용자는 아무것도 못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건 저희가 추구하는 효율성에 어긋납니다.”


“하지만 저 애니메이션은 사용자의 추억을 소중히 다룬다는, 우리 서비스의 철학을 보여주는 장치예요.”


이지아가 곧바로 반박했다.


“3초의 기다림이 지루함이 아니라, 설렘이 될 수도 있다고요. 모든 걸 속도로만 판단할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의 논쟁은 다시 평행선을 달렸다. 다른 팀원들도 각자의 의견을 내놓으며 회의실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스킵 버튼을 만들자’는 의견과, ‘스킵 버튼이 감성을 해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나는 그들의 논쟁을 지켜보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두 사람 모두 틀리지 않았다. 효율성과 감성.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 ‘최고의 미끼’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미끼를 어떻게 ‘사용’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다.


나는 지난번 황 사장이 알려주었던, ‘액션’이 좋은 루어와 ‘어필’이 좋은 루어를 둘 다 챙겨갔다. 먼저, 사실적인 멸치 모양의 루어를 던졌다. 역시나, 아무리 현란하게 움직여봐도 입질 한번 없었다. 다음으로, 기괴한 색 조합의 루어를 던졌다. 그리고 릴을 감으며, 낚싯대 끝을 짧게 ‘탁, 탁’ 튕겨주었다. 죽어가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흉내 내는 ‘트위칭’ 액션.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툭!’ 하는 입질과 함께 작은 노래미 한 마리가 올라왔다.


‘역시, 액션이 중요한 건가.’


나는 같은 루어를 다시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운용해 보았다. 릴을 아주 천천히, 아무런 움직임도 주지 않고 감아들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입질이 들어왔다. ‘토독, 토독.’ 낚싯줄을 타고 전해져 오는, 아주 예민하고 간지러운 감각. 호기심 많은 작은 복어들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같은 미끼. 하지만 전혀 다른 움직임. 그리고 그에 따라 전혀 다른 물고기가 반응했다. ‘액션’이냐 ‘어필’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미끼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가’였고, 그것을 받아들일 대상어가 ‘어떤 상태인가’였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최고의 미끼’ 하나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정작 그 미끼를 사용할 ‘낚시꾼’, 즉 사용자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어떤 낚시꾼은 성격이 급해 빠른 움직임을 선호할 것이고, 어떤 낚시꾼은 느긋하게 감상하는 것을 즐길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최고의 미끼 하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낚시꾼에게 다양한 ‘운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월요일 아침, 나는 회의실에서 팀원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우리가 속도를 정하는 게 아닙니다. 사용자가 정하게 하는 겁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새로운 UI를 그렸다.


“기본적으로는 이지아 사원님의 따뜻한 애니메이션이 재생됩니다. 하지만 화면 한구석에는, 최경호 사원님이 주장했던 ‘스킵’ 버튼이 작고 예쁜 아이콘으로 존재합니다. 마치 자동차의 ‘스포츠 모드’ 버튼처럼요. 속도를 원하는 사용자는 언제든 그 버튼을 눌러 과정을 건너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다들 스킵 버튼만 누르지 않을까요?”

최경호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실패가 아닙니다. 그 역시 사용자의 명확한 ‘선택’이니까요. 우리는 그 선택의 데이터를 통해, 어떤 사용자가 속도를 원하고, 어떤 사용자가 감성을 원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사용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 선택을 통해 더 깊은 차원의 데이터를 얻게 되는 겁니다.”


내 설명이 끝나자, 회의실에는 이전과 다른 종류의 침묵이 흘렀다. 그것은 대립의 침묵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이들의 깊은 몰입이었다.


최경호와 이지아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빛 속에서, ‘나의 방식’과 ‘너의 방식’이라는 경계가 허물어지고, ‘우리의 사용자’라는 단 하나의 목표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전 22화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2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