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감각을 읽는 시간. 25화

고요 속의 태풍

by 돌부처

작전실의 시간은 멈췄다. 우리의 모든 권한이 정지된 후, 그곳은 더 이상 뜨거운 열정으로 들끓는 탐사 본부가 아니었다.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과도 같았다. 김현승은 창밖을 보며 한숨만 내쉬었고, 최경호와 이지아는 의미 없는 웹서핑으로 시간을 죽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인가. 우리의 항해는 여기서 좌초되는 것인가.


나는 그 침묵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내가 이끈 배였다. 내가 선택한 항로였고, 내가 감수했던 리스크였다. 팀원들은 나를 믿고 따랐을 뿐이다. 모든 책임은 선장인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괜찮을 거야’라는 섣부른 위로는 공허했고, ‘방법을 찾아보자’는 다짐은 무책임하게 들릴 터였다.




주말이 되어도 나는 낚싯대를 챙기지 않았다. 바다는 더 이상 내게 위안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침묵하는 그 거대한 푸른색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낚시는 정직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아니었다. 이곳의 바다는 물고기만 사는 곳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항로를 가로막는 해적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게임 방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텅 빈 작전실에 홀로 앉아, 나는 지난 몇 달간의 ‘항해 일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갔다. 그곳에는 우리가 만났던 모든 파도와, 우리가 발견했던 모든 섬, 그리고 우리가 낚아 올렸던 모든 물고기들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는 차동민 차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김현승이 구축한 방화벽은 완벽에 가까웠다. 외부에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구조. 그렇다면 단서는, 내부에 있었다. 우리 팀 중 누군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흔적을 남긴 것이다.

나는 팀원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장은, 때로는 가장 믿었던 선원을 의심해야만 배를 지킬 수 있는 법이다.


나는 팀원들을 회의실로 불렀다. 그들의 얼굴에는 패배감과 무기력이 가득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프로젝트는 현재 중단된 상태입니다.”


나는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식적인 감사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럼… 뭘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과장님?”


최경호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서류 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2년 전, 마케팅팀 주도로 진행되다 실패로 끝난 ‘피닉스 프로젝트’의 백서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 실패한 프로젝트를 복기할 겁니다.”


내 지시에, 회의실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김현승조차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이럴 때입니까? 남의 팀 실패 사례 분석해서 뭐 하자는 겁니까? 우리 코가 석 자인데요.”

“훌륭한 낚시꾼은 물고기만 아는 게 아닙니다, 김현승 과장님.”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바다를 알아야죠. 과거에 어떤 배가 어디서 좌초됐는지, 어느 물골에 보이지 않는 암초가 있는지를. 우리가 지금 부딪힌 이 암초도, 어쩌면 과거에 누군가 똑같이 부딪혔던 바로 그 암초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지금, 낚시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대한 공부는 할 수 있습니다. 차동민 차장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마케팅팀이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일해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이것은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다음 파도를 대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입니다.”


내 말에는 이전과 다른 종류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것은 감각이나 직관이 아닌, 배의 침몰을 막아야 하는 선장의 절박함이었다. 팀원들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먼지 쌓인 과거의 기록들을 나누어 갖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작전실에는 다시 키보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전의 활기찬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고요하고, 집요한, 심해 탐사와도 같은 작업이었다. 우리는 실패의 기록 속에서, 우리를 공격한 유령의 실체를,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회사의 보이지 않는 해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나는 창밖을 보았다. 사무실은 고요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거대한 태풍의 눈이 형성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낚시를 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 우리가 낚아야 할 대상어는 물고기가 아니라, 어둠 속에 숨어있는 진실이었다.


우리의 작전실은 거대한 도서관이 되었다. 먼지 쌓인 서버 깊숙한 곳에서 건져 올린 ‘피닉스 프로젝트’의 자료들은, 성공 신화에 가려져 있던 회사의 어두운 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수백 개의 회의록, 수천 통의 이메일,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든 것을 실패로 규정한 차가운 결과 보고서까지. 우리는 그 방대한 실패의 기록 속으로 침잠했다.


첫날은 모두가 의욕적이었다. 하지만 이틀, 사흘이 지나자 팀의 분위기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과장님, 이걸 대체 어디까지 봐야 합니까? 봐도 봐도 끝이 없는데요.”


지친 목소리로 불평한 것은 최경호였다. 그의 말대로였다. 자료는 너무나 방대했고, 대부분은 의미 없는 숫자와 형식적인 문장의 나열일 뿐이었다. 살아있는 입질의 감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은 낚시가 아니라, 끝없는 모래밭에서 바늘 하나를 찾아내는 고문에 가까웠다.


“조금만 더 힘내보죠, 최 사원. 분명 이 안에 무언가 있을 겁니다.”


나는 그를 독려했지만, 나 역시 확신이 없었다. 어쩌면 김현승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무의미한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돌파구를 찾은 것은 의외로 김현승이었다. 그는 더 이상 서류를 보지 않았다. 대신, 개발자의 본능으로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상합니다.”


수요일 오후, 그가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피닉스 프로젝트의 핵심 서버 로그입니다. 론칭을 불과 이틀 앞두고, 새벽 세 시에 시스템 전체가 다운됐어요. 공식적인 원인은 ‘외부 해킹 시도에 따른 일시적 과부하’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게 왜 이상하죠?”

“이 로그를 보세요. 외부에서 들어온 공격 트래픽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부의 특정 IP 대역에서 평소의 수백 배에 달하는 데이터 요청이 있었습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서버를 마비시킨 것처럼요.”


그의 말에, 작전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실패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마주했다.


그 작은 균열을 시작으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의 조각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최경호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김현승이 찾아낸 IP 대역을 단서로, 그날 새벽 회사에 남아있던 사람들의 출입 기록과 PC 사용 로그를 샅샅이 뒤졌다. 이지아는 서버가 다운되기 직전과 직후에 오고 간 마케팅팀의 모든 이메일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그녀는 문장의 내용이 아니라, 그 행간에 숨겨진 감정과 뉘앙스의 변화를 쫓았다.


나는 한발 물러서서, 그들이 건져 올리는 작은 조각들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엮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금요일 오후 우리는 하나의 이름 앞에서 멈춰 섰다.


‘차동민.’


모든 조각들이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버가 다운되던 그날 밤, 그는 ‘긴급 보고서 작성’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에 남아 있었다. 서버 다운 직후, 그는 기다렸다는 듯 ‘프로젝트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임원들에게 제출했다. 이지아가 찾아낸 이메일 속에서, 그는 경쟁사의 부정적인 이슈를 교묘하게 피닉스 프로젝트와 연결시키며,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는 물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장 전체에 독을 풀어, 모든 물고기를 죽인 뒤 유유히 떠난 것이다.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피닉스 프로젝트가 좌초된 바로 다음 분기에 차장으로 승진했다.


“……미친놈이군.”


김현승이 나직이 읊조렸다. 우리는 거대한 진실의 무게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우리를 공격한 것은 단순한 사내 정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동료의 배에 구멍을 뚫는 것도 서슴지 않는, 차갑고 잔인한 포식자의 방식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낚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의 어장에 들어온 새로운 상대였고, 그는 자신의 영역을 키우기 위해 우리에게도 똑같은 독을 풀려하고 있었다. 우리의 ‘비밀 커뮤니티’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었을 터.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


이지아가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진실을 알아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년 전의 기록은 이미 공식적으로 종결된 사건이었고, 우리의 추측은 어떤 법적 효력도 없는 심증일 뿐이었다. 오히려, 이 사실을 섣불리 꺼냈다가는 ‘내부 분란 조장’이라는 죄목으로 우리가 역공을 당할 것이 뻔했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내 ‘항해 일지’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그곳에 나는 ‘차동민’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가 사용했던 모든 방식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아는 모든 낚시의 기술들을 나열했다.


“낚시를 할 겁니다.”


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다만, 이번에 우리가 낚아야 할 대상어는 물고기가 아닙니다.”


나는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패배감이 아닌, 차가운 분노와 결의가 서려 있었다.


“우리는 상어를 잡으러 갈 겁니다. 그리고 상어를 잡으려면, 더 크고 튼튼한 낚싯줄과, 상어의 이빨도 견뎌낼 강철 목줄이 필요하겠죠.”


우리의 고요했던 심해 탐사는 끝났다. 이제부터는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상어 떼와의, 거칠고 위험한 싸움이 시작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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