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문

by 돌부처

사흘째였다.


어머니의 전화가 오지 않은 지. 아니, 정확히는 서하진이 부재중 전화와 빗발치는 문자들을 모조리 무시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스마트폰 화면 위로 빽빽하게 떠오른 이름. ‘엄마’라는 지극히 평범한 두 글자가, 지금의 하진에게는 굿판에서 피워 올린 향냄새처럼 질기고 독했다.


[큰일 났다. 어서 전화받아라.]

[이모다. 하진아, 연락 좀 다오.]

[서하진! 당장 전화 안 해?]


가문 어른들의 성화가 담긴 메시지들을 무표정하게 삭제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가문’과 ‘장녀’라는 단어를 제물처럼 앞세웠고, 그 뒤에 따라올 희생과 책임을 당연시했다. 하진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쳐 서울에 제 작은 월세방을 얻었다. 신 따위는 없는 도시, 오직 욕망과 돈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이 삭막한 콘크리트 정글에서 그녀는 완벽한 타인이 되고 싶었다.


“후우....”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불면의 밤이 남긴 뻑뻑한 눈을 억지로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창밖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도시의 새벽은 죽은 듯 고요하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이 생명처럼 꿈틀거렸다. 일상이라는 얇은 갑옷을 챙겨 입을 시간이었다.


화장대 앞에 앉은 하진은 거울 속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물여덟. 콜센터 상담원. 모계로 성을 잇는 서 씨 무당 가문의 7대 장녀. 마지막 이력은 그녀가 이력서 어느 칸에도 적지 못하는 주홍글씨였다. 핏기 없는 얼굴 위에 쿠션 파운데이션을 두드렸다. 다크서클을 컨실러로 덮고, 혈색을 더하기 위해 블러셔를 칠했다. 무당의 딸이 아닌, 평범한 사회인 서하진의 얼굴을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자, 세상에 보내는 위장이었다.


‘나는 당신들과 달라.’


화장을 마친 얼굴은 그럭저럭 생기가 돌아 보였다. 하지만 하진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두껍게 분을 칠해도, 살갗 아래를 흐르는 피의 기척까지 숨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아주 가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섬광 같은 감각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느껴지는 시선, 스쳐 가는 사람에게서 묻어나는 축축한 슬픔,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죽은 자의 목소리. 그녀는 스물여덟 해 동안 그 모든 것을 ‘착각’이라 여기며 필사적으로 억눌러왔다.


어머니, 서미령은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한 무당. 신과 거래하고, 귀신을 달래고, 도깨비를 묶는 사람. 하진에게 어머니는 이해와 경외의 대상이자, 벗어나고 싶은 굴레 그 자체였다. 그런 어머니가 굿판 도중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흘 전 새벽의 일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 낡은 빌라의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른 새벽의 공기는 차고 습했다. 하진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이런 공기 속에서는 ‘그것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 인간의 양기가 가득한 곳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는 잡스러운 것들이 쉽게 들러붙지 못했다.


만원 지하철은 거대한 피난처였다. 쇠 비린내와 사람들의 눅눅한 체취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하진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눈을 감았다. 시끄러운 아이돌 음악이 고막을 때렸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 그러나 눈을 감자, 사흘 전 이모에게서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이 다시금 머릿속을 헤집었다.


네 어미가... 마지막 굿판에서 사라졌다. 신단에 피만 흥건하고, 아무것도 없어. 백면 도깨비 그놈이야. 그놈이 네 어미를 물어갔다!


백면도깨비.


그 이름이 떠오르는 순간,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가문의 비기에 수없이 등장하는 이름. 서 씨 가문의 궁극적 원수이자, 대대로 장녀들의 피를 노려온 존재. 하진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미신일 뿐이다. 어머니는 그저 잠시 어디론가 떠난 것뿐이다.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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